역사의 쓸모
역사분야의 대표강사로 알려진 최태성이 썼다.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인문학을 문⦁사⦁철이라 하니 역사는 인문학의 중심이다. 역사에서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역사를 잘못 배운 모양이다.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친 것이다. 우리 교육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배운 일이 있었나? 우리들은 가르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가르치는 이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그들도 배운 대로 익숙한 대로 가르친 것이고 우리 교육이 상급학교 진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평가결과가 명확하도록 가르치고 시험을 본 것이다. 결국 시험보기 위해 배운 셈이다. 역사교육 뿐 아니라 다른 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영어를 잘 하는 어떤 이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한없이 확장하고 학습할 수 있는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빠지기 쉬운 함정은 학습자의 눈높이를 잊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분 처지에서는 타당하지만 실력이 현격히 부족한 이는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당장 문제되는 어휘도 모르는데 어떻게 거기서 유래되는 여러 어휘들과 다양한 의미를 따라가며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겠는가? 일차적으로 시험에 나올 것을 배우기에도 벅차고 그 방법에 익숙하니 달리 접근하지 못하고 당시의 인물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없으니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은 게다. 바탕지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사회는 원하기만 하면 바탕지식을 얻기가 수월하기는 하다. 문제는 동기를 얻는 것이다.
책을 읽고 몇 줄이라도 관계된 내용이나 느낌을 기록해 놓으려 하는데 적기를 놓치면 쉽지 않다.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이 있고 기록하는 일이 간단하지도 않으니 몇 주가 훌쩍 지나간다. 감동도 스러지고 내용도 빠져나가 새로 퍼 올리기가 어렵다. 습관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쓸모없음의 쓸모가 마음에 남아 있다. 선택받지 못한 것들, 오히려 그들 가운데 보석이 있다. 때로는 필요한 때에 재능이 미치지 못해 선발되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웬만큼 노력해도 효과가 미미한 경우도 많이 있지 않은가? 마음에 자극과 단단한 결심이 있으면 부족한 재능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들 수 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다. 일연은 젊어서부터 삶의 목표를 정하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들(정사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모은다. 그것들을 모아 긴 세월이 흐르니 오히려 정사보다 더 소중하다. 일연 같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져야 한다. 그가 이룬 많은 일들보다 〈삼국유사〉를 기록해 남긴 일이 많은 이들에게 큰 유익을 주고 그를 알리고 있다. 자신의 방향을 정하여 그곳으로 깊이 들어갈 일이다.
사람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지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은 몸과 마음과 감정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고 한 개인이 맞이하는 선택의 유형도 비슷하다. 인간사의 축적이 역사라 하면 유사한 선택의 순간에 이런저런 선택을 한 예들이 역사에 쌓여있는 것이니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도 짧은 기간의 효과와 오랜 기간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한반도의 한쪽 구석에 위치해 여러 불리함을 넘어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그를 위한 시각적 상징으로서의 황룡사 목조 9층 석탑을 예로 설명한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삶의 목표를 크게 붙여 놓는 식이다. 이목을 모아 의식을 집중해주던 상징, 그들의 목표이자 자부심이기도 했을 게다. 어떤 이는 고대 고인돌도 거주하는 부족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것으로 그보다 약한 부족들의 약탈 의욕을 꺾고 힘의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견해였다.
여러 가지 예측 가능한 결과를 두고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긴 고민을 거쳐 선택을 하는 게다. 그런 선택을 한 이들이 이회영이요, 박상진이요, 장보고, 김육, 안중근 같은 이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누구도 다른 이들의 결정을 강요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그 선택에 따른 후대의 평가를 피할 수도 없다. 자신이 속한 또는 더 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사는가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다.
지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거듭 추구하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다. 다가올 꿈을 향해, 삶의 바른 방향을 따라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더라도 역사의 눈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게다. 먼저 꿈꾸고 소망하며 앞서 가는 이가 있어야 물결이 이루어진다. 역사를 통해 현재의 위치를 바로보고 소리쳐 부르는 미래의 향방을 안다면 가야 할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결정적 순간에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그런 선배들이 우리 역사와 세계사에 여럿 존재한다는 것이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니랴. 시험 보는 쓸모없는 역사에서 벗어나 내 삶과 만나는 흥미로운 역사와 마주해야겠다. 영화, 드라마, 책,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들도 그들을 만나는 길을 보여주는 한 조각 비밀지도가 될 수 있다. 역사에 관한 내 무지를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보고 싶다. 새로운 길, 신비롭고 설레는 마음으로 역사 속 옛 친구들을 찾아가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