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아, 그리스

변두리1 2020. 5. 11. 15:39

, 그리스

 

역사여행가를 자처하는 권삼윤의 꿈꾸는 여유, 그리스를 읽었다. 그리스를 여러 번 다녀오고 그리스에 빠져 책을 쓴 모양이다. 신화의 나라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 철학자들의 고향이자 올림픽의 발상지, 오디세우스의 나라,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른다. 인구 천만정도에 한반도의 삼분의 이 쯤 되는 면적이고 우리와 일인당 국민소득이 엇비슷한 수준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웬만한 교양을 갖춘 이라면 그리스를 모르지는 않으리라.

지중해라는 천혜의 자연에 쟁쟁한 철학자들을 조상으로 가진 나라, 밀려드는 세계의 관광객만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릴 게다. 지리적으로 불편한 지역 올림피아에서 천 년 가까이 올림픽 제전을 이어온 나라다. 도쿄 올림픽을 제대로 개최하기 어려울 거라는 풍문이 돈다. 40년 마다 어려움이 온다며 1940년 도쿄올림픽이 2차 대전으로 무산되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반공진영에서 불침해 반쪽 올림픽이 되었던 것을 언급하며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 한다.

올림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초심을 잃고 지나치게 상업성을 띤다는데 있지 않나 싶다. 천년을 이어진 고대 올림픽은 우승자에게 월계관밖에 수여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는데, 오늘날은 각국이 국력의 각축장이자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더없는 광고의 장으로 인식하는 것만 같다. 고대에는 아예 참여자들이 알몸으로 모두가 평등한 처지에서 기량을 겨루었다면 오늘날은 선수들을 향한 투자부터가 같지 않고 온갖 최신 기술과 과학이 총동원되어 본래의 낭만과 여유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철학이 삶이요 문화였던 나라, 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대화와 토론이 살아있던 고장, 그런 그리스조차도 소크라테스를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그릇된 종교로 이끈다고 죽게 했으니 자유를 누린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철학의 물줄기가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니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를 건너뛰기는 어려우리라. 그들로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꽃피고 민주주의가 얼마간 성장했으니 온 인류가 그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예술과 문학의 그들의 신화에 기댄 바 적지 않다. 테세우스가 생각난다. 미노스의 요구로 청년 남녀를 제물로 바친 그리스, 왕자 테세우스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자원해 미노아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처치하고 귀환한다. 미노스의 과욕은 공주룰 잃고 나라도 기운다. 포세이돈과의 신의도 없어지고 왕비가 이상해져 모든 것이 뒤틀어져 버렸다. 비극이 인간을 정화하고 깨달음을 준다니 신의를 버리고 과욕을 부리려는 이들에게 영원한 경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카잔차키스가 만들어낸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를 잊을 수 없다. 인습과 도덕 그리고 지식의 틀에 억매이지 않는 순수한 본성의 사람이 조르바가 아닌가. 카잔차키스의 다듬지 않은 돌과 나무로 만든 비석과 십자가, ‘나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의미의 그 다운 비문이 한 모금 시원한 생수처럼 청량하다.

헬레나로 인해 벌어진 세기의 전투에서 10년을 끌다 트로이 전략으로 승리하고도 아가멤논은 부인과 사촌에게 살해당하고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노여움으로 쉽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지중해를 맴도는 20년간의 유랑을 거치며, 퀴클롭스와 싸이렌을 비롯한 숱한 위협을 겪고 아내 페넬로페가 많은 구혼자에게 시달리는 이타카 고향집에 이른다.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나 부인조차 남편을 인식하지 못한다. 미리 만나 계획을 짠 아들의 진행으로 페넬로페를 차지할 시합이 열리고 오딧세우스는 무도한 구혼자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한다. 활을 당겨 화살로 도끼의 과녁을 통과하는 시험을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자 오딧세우스가 나서 성공시키고 그동안 페넬로페를 괴롭혀온 구혼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치한다.

찬란한 문화를 일궈 인류의 자존심을 살려준 이들이 그리스인들이다. 그들의 숨결과 꿈이 배어있는 언덕과 분지와 그곳에 흔적으로 남은 건축물과 조각들과 서있기도 하고 깨어져 뒹굴기도 하는 돌기둥들,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지중해, 그 옛날도 불어왔을 바람과 뿌렸을 비를 뜨고 졌을 해 달 별들을 그곳에서 대해보는 것이 여행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엮어 간 삶의 흔적을 그 시대와 그들은 가고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들이 남긴 문화와 유적들을 마주하며 더듬어 볼 수 있음이 인간의 특권이다. 분망한 삶속에서 자신을 돌아봄이 어려우니 일상을 멈추고 시간을 떼어내고 공간을 이동하여 그들의 흔적을 보며 자신을 탐색한다. 한 세기 전만해도 특별한 상류층이나 할 수 있었던 호사가 이제는 마음에 각오만 있으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오히려 나라밖을 별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생각한다. 오늘의 만연하는 각종 전염병과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가 많은 이들의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잦은 여행과 풍요로운 물질적 생활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활수준이 상승하고 있고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일시적인 착각은 아닌지, 시대를 거슬러 어렵고 힘들었다고 회고하는 수십 년 전의 삶이 조금 떨어져서 보면 더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일지 모른다. 그래도 벼르고 별러 평생에 한 번 가볼 만한 곳이 지중해 근방의 그리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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