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한 사색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일에 그 사람의 관점이 영향을 끼친다. 나는 목회자 시각에서 바라봄이 자연스럽다. 미리 밝히건대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 아닐 수 있다. 교육과 경험으로 형성된 가치관의 차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내 견해를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을 누구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내 판단과 양심에 따라 당국의 결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로인한 결과와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2003년 사스와 2012년 메르스를 겪었다. 이번 코로나19는 이전의 질병보다 유별나다. 전염성이 훨씬 강하고 무증상 감염이 있어 더욱 당황스럽고 대처가 어렵다. 전 세계적 유행으로 올림픽을 연기시키고 사회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제를 얼어붙게 한다. 2019년 발생한 관상세균성질병의 영어식 표현인 코비드19(Covid19, corona virus disease)가 공식명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편의상 ‘코로나19’로 부른단다. 코로나(corona)가 왕관, 화관 같은 것인데 바이러스의 생김새가 관모양이라 중국에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코로나19는 생활을 크게 바꾸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함께 모이는 것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귀한 존재가 되게 했다. 운동경기가 열리지 않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어디서나 거리를 두어 앉게 하고 종교집회도 어렵게 한다. 나라들은 출입국을 금지했다. 이런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반화되었다.
여기부터 목회자적 시선이다. 질병뿐 아니라 재앙을 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이 재앙은 물리치거나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노가 풀리기를 참고 견디는 게다. 재앙을 통해 전하려하시는 뜻을 빠르게 깨달아 합당한 행동을 하므로 그분이 재앙을 거두어 주시길 빌 뿐이다.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취하는 우리의 행동을 보면 그 뜻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재앙이 신천지를 통해 확산되었고 종교집회가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러면 종교집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흘렀거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과도하게 감정적이었나. 하나님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달라고 너무 떼쓰듯 기도하지는 않았나. 아니면 큰 교회 중심으로 신앙행태가 기울어졌었나.
비행기 운항이 줄어들고 국내의 대중교통량도 적어졌단다. 그동안 수출입과 숱한 세계여행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던 것인가. 자기 땅에서 나는 것으로 식재료를 삼고 제 고장에서 살기를 원하셨나. 하긴 잦은 이동에 따른 공해가 적지 않았을 게다. 시골이나 오지도 없이 자동차가 오가는 큰 길을 뚫어 수천 년 내려온 자연이 훼손된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필요보다 경제적 과욕으로 파헤쳐진 곳이 한둘이 아닐 게다. 도로가 좁을 만큼 끊임없이 달려가는 차들을 보며 할 일이 그만큼 많아진 것인가 생각한다. 차가 있으니, 남들이 다 가니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 부담으로 나서는 것은 아닌가.
식당을 비롯한 음식점들이 커다란 타격을 받는 듯하다. 집에서 먹어도 되는 것을 과도하게 밖에서 해결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예전에 집에서 접대했던 일들을 언제부턴가 바깥 식당에다 맡기곤 했다. 거리를 다녀보면 식당이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의아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한다. 겨울방학이래로 5월인 현재도 학교는 닫혀있고 온라인 개학이라는 겪어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정상적인 학교모습을 언제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떤 대학들은 아예 한 학기를 온라인으로 하기로 결정했단다. 그동안 너무 많이 가르치고 배웠던 것은 아닐까. 지속적인 학습과 연구로 인류가 너무 나간 것인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지 오래고 우주를 향한 기술은 태양계 너머로 우주선이 가고 있다고 한다. 수천 킬로를 날아가 상대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만들어지고 유전자를 해독할 뿐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제 철 과일과 채소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제는 일 년 내내 언제나 원하는 먹을거리를 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 수천 년 내려온 산과 나무를 며칠이면 베어내고 깎아내 평지를 만든다.
하나님의 영역이라 여기던 많은 부분을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언어를 혼란케 하셔서 그 일을 중단시켰다. 인간이 만능이 아님을 코로나19로 깨닫게 하시려는 것인가. 세균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쉽게 상대할 수 없다. 그런대도 수십만이 감염되고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고 자부했는데 별 것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질병정복을 위한 부단한 노력에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고 인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인간의 본래 위치가 어디인가. 원시상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가. 재물이라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도 감당치 못할 속도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성장과 개발이라는 착각으로 미래 세대의 것을 앞당겨 과도하게 소모하지는 않았나. 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코로나19는 아닌지 깊은 사색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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