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닙니다(다윗을 협박하는 요압)
나는 우울하다.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왕이 근래 들어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왕은 명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이 특징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무너져 간다. 오늘 아침만 해도 출전하는 장병들에게 지난 시절 같으면 전연 하지 않았을 말은 하고 반드시 했을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병들의 마음이 왕의 말로 인하여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왕의 명령을 어겼다. 압살롬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당사자는 왕의 말을 “삼가 누구든지 어린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서 그를 처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압살롬의 생명을 빼앗았다. 상수리나무에 긴 머리가 걸려서 살아있는 그의 심장을 내가 작은 창 세 개로 찌르고 내 부하들 열 명이 그를 에워싸고 쳐 죽였다. 왕이 그 광경을 보았다면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왕은 나에게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왕을 위하는 길이요 왕을 살리는 길임을 확신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누구 앞에서든 같은 상황이 되면 그를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해도 열 번이든 백 번이든 꼭 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적의 대장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고 더구나 그것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이라면 값싼 관용과 용서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 세월 지켜보아온 왕은 명확하고 합리적인 분이었다. 그런 왕에게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이 곧 밧세바와 압살롬이다. 그들을 향한 왕의 처신은 이해나 예측을 할 수 없다. 그것이 결코 왕이 그들에게 약점을 잡혔거나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 혹은 심리적 요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문제에 이르면 모두가 혼란에 빠져서 온통 어려움을 겪는다. 왕에게 완벽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왕의 혼란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그 영향력이 전 국가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러 면에서 압살롬이 제거된 것은 나라 전체로 볼 때에 크게 잘된 일이다. 그의 존재는 왕에게도 왕을 이을 후계자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죽임을 당함으로 반란은 진압되고 싸움은 끝났다.
우리의 승리 소식과 압살롬의 사망소식은 가장 먼저 왕에게 보고되었다. 그러나 왕은 기뻐하는 대신에 탄식과 애곡을 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건 분투와 수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승전한 장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군인들의 노고에 고마워하는 것. 군인들의 보람이며 삶의 의미가 거기에 있는데, 이번은 이기고도 진 것처럼 부끄럽고 민망함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다. 이래서는 군인들의 사기가 살지 않고 앞으로의 전투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의 이 이상한 현상은 이것이 압살롬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왕에게 간언(諫言)해야 한다. 왕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이며 왕의 앞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내 눈치만 보니 또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한편은 이런 일에 왕 앞에 담대히 나서기 위해서는 연륜도 관계도 무시할 수 없으니 이래저래 내가 나서야 한다. 이런 것이 내가 왕에게 밉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왕은 여전히 슬픔에 젖어 있다. 지금쯤은 내가 압살롬을 죽였다고 하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서로 이야기했을 것이고 비밀로 하라고 한 적도 없다. 비밀로 할 이유도 없고 내가 잘하면 잘했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왕 앞에 직언을 했다. 왕께서는 오늘 왕과 왕의 자녀와 부인들의 생명을 구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것은 왕께서 왕을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며 오늘 고생한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깨닫기는 오늘 압살롬이 살고 우리가 다 죽었으면 왕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지금 큰 착각과 잘못을 범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든 장병들은 왕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나라를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이제 장병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지 않으시면 이 밤에 대부분의 장병들이 왕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되면 왕의 생애에 최대의 위기를 만나실 것입니다.
나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정말 싫다. 또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도 혐오(嫌惡)한다. 나는 병사들에게나 왕에게나 같은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같은 말을 하고 남들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기회가 되면 다른 이들에게 들었겠지만 압살롬을 내가 죽였음을 왕에게 직접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한 것 아닌가. 왕도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고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왕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
왕은 내 말에 느낀 것이 있었던지 슬픔 속에서 일어나 성문에 앉아 장병들을 치하하고 격려하며 백성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는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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