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저도 잘 모릅니다.(밧세바가 본 다윗)

변두리1 2014. 7. 1. 08:48

저도 잘 모릅니다.(밧세바가 본 다윗)

 

  나는 밧세바, 한때 우직한 전사(戰士)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지만 이제는 온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내입니다. 내 삶의 변화가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뜻과 무관하게 결정된 바가 적지 않습니다. 내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나에게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나 자신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분명히 잘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내 삶의 결정적 순간을 돌아보고 그 순간 지금의 남편 다윗에게 느꼈던 나의 감정을 털어 놓아 보렵니다.

 

  올 봄이었습니다. 남편은 군대의 지휘관으로 몇 달 동안 전쟁을 대비해 훈련과 준비를 마치고 암몬과의 전쟁에 출전했습니다. 결혼한지는 이 년이 꽉 차가고 있었지만 아이는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나른한 봄날에 달거리가 끝나고 몸과 마음이 찌뿌드드해서 저녁때가 다되어 뜰 안에서 온수목욕을 했습니다. 막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새 옷으로 갈아입기를 마칠 때 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특별히 찾아올 사람은 없지만 친정집 사람인가 해서 나가 보았더니 뜻밖에도 왕궁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남편과 관계된 일인가 싶어 안으로 들였더니 내 신상에 관한 것을 물었습니다. 어느 지파인가 부친은 누구인가 결혼은 했나 남편은 누구인가 아이가 있는지 나이는 몇인가 등을 묻고는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갔습니다. 조금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고 무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나서 한 시간 쯤 지나서 이번에는 건장한 사람들 셋이 들이 닥쳐서 아무 설명도 없이 왕궁의 연(輦)에 태워서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내가 내려진 곳은 잘 꾸며진 침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데려 왔습니다” 했고 오십 정도의 남자는 “수고했다 나가 있어라” 고 했습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나를 다루었고 나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여의 격정의 순간이 지나자 다시 그들이 나타나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나는 왕궁에 불리어 갔고 얼마 후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임신 사실을 왕에게 말했을 때 그는 당황해 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내가 염려와 두려움을 털어 놓았을 때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남편은 돌아올 것이고 임신 사실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은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왕은 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한없이 슬프고 미안했습니다. 슬픔이 너무 커서 며칠을 눈물로 살았습니다.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고 있는데 나는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고 죽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과 무관한 임신의 두려움이 약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는 중에도 다윗은 암암리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절차에 어떤 어려움도 없이 정중하고 엄숙하게 남편을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장례가 끝나고 현실을 보게 되었을 때 왕궁에서 다윗이 보낸 사람들이 왔습니다. 아내를 삼겠으니 왕궁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왕명을 거스르기는 어려웠지만 친가와 시가 사람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알려주며 입궁할 것을 권하면서도 내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왕궁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래도 차선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궁에서의 생활에 익숙해갈 즈음 하루는 나단 선지자라는 분이 왕을 단독으로 면담한다고 했습니다. 둘은 왕의 집무실에서 긴 시간 함께 했습니다. 때로는 나직한 목소리가, 한 때는 격한 음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번에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모두가 초긴장으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선지자가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을 떠나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침묵과 긴장 속에 왕의 긴 통곡이 끝나고 왕은 얼굴에 눈물자국도 닦지 않은 채 비통한 모습으로 대기하던 모든 이들을 집무실로 불러 들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문도 모르고 쭈뼛쭈뼛 서 있었는데 왕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이 천하에 몹쓸 죄인이라며 자신의 죄와 허물을 우리 앞에 자백했습니다. 그 자백에 가장 놀라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나 밧세바였습니다. 왕의 자백에 따르면 왕으로 인한 나의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내 남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나에게 가도록 했지만 전쟁과 병사들 생각에 혼자만 편할 수 없다며 집에 오지 않았고 술을 먹여 취하게 해도 변함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저려 왔습니다. 더 큰 충격은 그 계획이 실패하자 요압 사령관에게 지시하여 남편을 적군이 가장 강하고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에 배치하고 아군의 군사를 적게 주어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나 때문에 남편이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거대한 죄악을 회개하라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찾아와 책망을 하고 간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고 화내지 않고 만인 앞에 자백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은 왕의 순수함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들에게 용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왕이 그토록 모든 것을 드러내고 체면을 떠나 참회하는데 우리가 감출 것도 없고 회개하지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한동안 모두는 왕의 집무실에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깨끗이 함을 받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그 자백과 참회의 기간이 끝나고 내 충격도 약화되어져 갈 때 왕은 나에게 당시의 심정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장수들의 불만도 감당할 수 없고 나의 생명도 위험할 수밖에 없어 둘 중에 선택을 해야 했을 때 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다른 길이 없었노라고 했습니다. 내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것은 지금도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한편은 불쌍하고 서글프고 다른 면으로는 다행스럽고 감사합니다. 다윗을 향해서도 미움과 서운함과 두려움이 들다가도 고마움과 따듯함과 순수함과 존경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조금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월과 함께 애정과 연민이 쌓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