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굽은 선 곧은 선

변두리1 2019. 1. 4. 13:05

굽은 선 곧은 선

 

   문 열고 나서니 눈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어중간한 도시의 변두리, 2,3층 주택들로 만들어진 하늘선이 각박하다. 부윰하게 동녘부터 밝아올 새 날 하늘이 공간이 트인 곳으로 얼굴을 내민다. 도시의 건축이 그러하듯 날카로운 직선이 주를 이룬다. 슬라브 구조의 한일자 형태의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브이(V)모양의 공간사이로 하늘이 들어온다.

   내 어릴 적 아침 풍경은 달랐다. 마당에 내려서면 건너편 산과 언덕이 보이고 언덕에 오르면 냇물과 논들이 펼쳐졌다. 눈앞에 바짝 대들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고 낮게 펼쳐진 곡선에서 오는 푸근함이 넉넉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뚜렷해지는 선과 색이 눈을 시원케 하고 깨어나는 거리가 내 삶에 활력을 주었다.

   자연의 선은 굽은 선이다. 산과 들, 냇물과 밭두렁, 언덕과 오솔길까지도 구불구불했다. 기계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며 굽은 것이 곧게 펴지기 시작했다. 굽은 것은 비능률의 옛것이 되고, 곧은 것은 힘과 속도의 상징이다. 완만한 단층 초가집이 이층 양옥집이 되고 좁다랗고 굽었던 흙길들이 넓고 곧게 펴진 포장도로로 변해갔다. 냇가는 복개되어 큰 길이 되고 비스듬했던 언덕에는 주택단지가, 아버지의 굽은 등 같았던 앞산은 밀려 평평해지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가지가 만들어졌다.

   자연이 준 굽은 선은 인간에 의해 곧은 선이 되어갔다. 편리함과 효율성, 단순함을 주는 곧은 선을 따라 바퀴들이 질주한다. 기계들은 구불구불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곧고 빠르게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놓인 경부고속도로가 19682월에 착공해 19706월에 준공되었다하니 긴 세월 굽었던 길들이 50여 년 만에 군사작전 하듯 거지반 곧아진 게다.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굽은 선을 닮았던 부드러운 눈길이 환경의 변화와 함께 날카롭고 예리해진 건 아닌가 싶다. 곧은 길을 넓게 내는 것은 차들이 빠르게 다니게 하려 함이다. 속도가 더해지는 곳에는 여유가 사라져간다. 곧은 선이 늘어나는 만큼 인공이 더해지고 자연이 줄어든다.

   십구 세기 후반에서 이십 세기 초반에 걸쳐 살다 간 건축가 가우디는 자연의 선은 곡선이라며 곡선을 살린 건축을 했다. 그의 건축물들이 있는 한 도시는 그가 떠난 지 90여 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이 밀려든다. 굽은 선을 보고 굽은 것에서 위로를 받으려 함이다.

   곧은 것은 강하고 급하다. 걸리어 멈출 곳이 없고 숨을 데가 없다. 우리의 삶은 빠르게 속도와 함께 곧아져왔다. 자연스레 생겨난 강의 흐름은 곧은 선이 아니다. 천천히 가는 게 멀리 가는 방법이란다. 이제는 빠르기를 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느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생겨난다. 굽은 길을 만들고 굽은 것들에 대한 추억을 회상해 낸다.

   오랫동안 뒤쳐진 삶을 살아온 이들은 곧게 뻗은 속도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곧은 길을 만들고 그리로 달려가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온힘을 다해 곧은 길을 만들고 그 위를 달리며 한동안 성취감과 만족을 맛본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속도에 회의를 느끼고 예전의 느림과 여유를 그리워한다.

   달려온 시간들과 곧은 길을 보면서 잃어버린 굽은 길과 추억들을 생각한다. 이미 도달해 있는 빠른 세상에서 바라보는 느리고 굽었던 과거의 매력을 잊을 수 없어 몇 몇 곳에 추억의 굽은 마을들을 만들어 놓는다.

   우리의 몸에서 장의 길이는 소장이 7m, 대장이 1.5m 남짓이라고 한다. 곧게 내려가면 십분의 일이 될까 말까한 거리를 왜 열 배의 길이로 굽이치며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섭취한 영양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해서다. 곧은 선으로 빠르게만 간다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도 많으리라. 누구나 자신이 가진 삶의 목표까지 빠르고 곧게 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본인을 위해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쁨과 즐거움,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목표달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산의 정상에 오른다면 산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름 난 세계의 관광지 공항을 최단시간에 방문하고 곧바로 왔다고 해서 그곳들을 여행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때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치며 시행착오와 고생을 하면서 추억이 쌓이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생겨난다. 불균형에서 개인의 특징이 나타나듯이 고생과 실수에서 삶의 무늬가 생기는 것 아닐까.

   이른 아침 동터오는 도시 변두리의 하늘 선을 보면서 하루의 삶을 생각한다. 오늘 내 앞에 펼쳐질 하루는 곧은 선일까 굽은 선일까. 결과를 따진다면 곧기를 바라지만 굽은 하루가 열린다 해도 원망스럽지 않으리라.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부지런한 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인다. 어디선가 청소차 소리가 들려오고 곧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한 블록을 넘어 내게로 전해진다.

오늘 하루, 곧은 선과 굽은 선의 교차를 내 삶에서 몇 번이나 겪으려나, 기대에 찬 마음으로 찬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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