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사(公林寺)에서
푸른 하늘 아래 바람도 없이 고즈넉하다. 시간이 멈춘 듯, 산은 드문드문 흰 뼈를 드러내고 자락에 자리 한 몇 채 절집이 고요하다. 신앙이 닿아 있는 세계는 저 너머여서 시간과 무관하다. 가을 햇살과 바람, 풀과 나무들이 한가롭다. 포장된 도로와 회색건물을 벗어나 트인 하늘에 비스듬히 높은 산, 붉은 흙과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들이 상쾌하다.
시간 밖에 있는 신이 시간 안으로 들어와 인간들과 함께 거하며 진리를 설파하고 다시 시간 밖으로 돌아간다. 영원히 계시니 시간을 떠나 있음이다. 신이 머물던 곳, 신을 섬기는 곳은 이 땅, 시간 속에 남아 있어 낡아가고 전쟁에 불타기도 한다. 임진란엔지 한국동란 때인지 피해를 입었지만 오랜 세월 지난 후 한 스님의 헌신적인 수고로 다시 필요한 여러 건물들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땅에 있어도 영원과 이어진 곳이니 사유(私有) 아니니 공(公)이겠지…. 절 마당을 돌아가니 오래된 비석 하나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서있다. 문장마다 깊은 뜻 담았겠지만 세월 흐르고 무지한 후손은 읽어내기 어렵다.
경내에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이다. 절 이름에 수풀 림(林)이 들어 있는 걸 헤아리면 초기에는 더 많은 나무들이 있었음직하다. 둘이 붙어 하나 된 나무도 있고 어떤 나무는 구백아흔 살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게 삼십 여년 전이니 이제는 넉넉히 천 년이 넘은 나무임에 분명하다. 천 년을 넘은 존재 앞에서 인간은 왜소하고 겸손해진다. 살아온 세월을 열 배 해도 이르지 못하는 고려 때부터 이 땅을 지켜온 나무다. 개나리 진달래 어우러지고 천둥치며 비 쏟아내고, 온 산 붉게 물들고 하얗게 눈 쌓이는 광경들을 천 번도 넘게 겪어온 게다. 긴 세월 세속의 물결이 이 곳 마당까지 넘실거리던 때도 있었을 게고, 국난에 모든 이들 근심에 싸인 풍경도 보았을 게다. 볼 것, 못 볼 것, 즐거운 일 궂은 일 거치며 한결같은 자세로 버텨왔을 터다.
비석 옆, 지방자치단체가 해놓았을 설명엔 공림사(公林寺)가 공림사(空林寺)로 되어있다. 아차, 하고 한눈파는 순간에 실수했나 보다. 텅 빈 듯 느껴지는 이 시절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곳곳에 자리한 은행나무 아래 계절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와 수북이 싸인 금 잎들이 찬란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때 묻지 않고 수려하다. 누가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한들 저렇게 순수하고 고울 수 있으랴. 고운 그들도 세월과 함께 추레해지고 흙으로 돌아가 마침내 또 다른 후손의 밑거름이 되리라.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으니 서로 다른 게 아닐 게다. 찬란한 금빛이나 텅 빈 허공이나 한 가지리라.
너른 산에 나무가 있으면 바위도 있어야지. 절 배경이 되어준 낙영산(落影山) 자체가 바위산이다. 맹금류 등[背]에 드문드문 난 흰 깃털처럼 나무 하나 허락하지 않는 꼿꼿한 자세로 가파른 암벽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산 기운이 자락까지 온 것인지 경내 곳곳에 커다란 바위가 터 잡았고 사이좋게 나무들과 언덕이며 마당가를 나누고 있다.
경내를 벗어나 거대한 바위 하나 압도하고 서있어 다가가 바라보니 개구리 형상이다. 절 사람들도 비슷하게 보았는지 둘레를 파놓아 못처럼 물이 고였다. 개구리를 아무리 미물(微物)이라 해도 사람 수십 명 합친 덩치니 거물(巨物)이다. 많은 이들이 찾아보는 명물이 되고 조금 더 나아가면 다급한 이들이 석대와(石大蛙)에게 소원을 빌지도 모르겠다.
절이 얼마나 너른지는 모른다. 절을 사(寺)라 하니 땅[土]이 조금[寸] 있으면 족할 듯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여러 집[殿]을 지어야 하고 수도할 곳이 필요하고 기거할 곳도 있어야 하니 점점 커져간다. 여러 면으로 은덕을 입은 이들이 희사도 해서 세월과 함께 늘어나기도 하리라. 종교마다 빠뜨리지 않고 강조하는 게 청빈이다. 구도자들이 청빈하고 시설도 간략한 것이 좋지 않을까. 지난날 종교가 강성했던 곳에 대규모 시설물들이 전해져 온다. 그 웅장 거대함과 어느 정도 비례해서 그곳에 속한 구도자들이 힘을 가지면 지역민의 원성도 커져간다. 기독교와 불교의 구도자들이 탁발(托鉢)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재물의 유혹에 대한 강한 경고였으리라.
나무들이 잎들을 떨구고 가벼워지듯이, 얽매이지 않음이 자유로움이듯이, 그런 의미의 공(公) 혹은 비석 옆 설명처럼 공(空)의 정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부름 받은 길을 가는 구도적 신앙인으로 개인의 무능에 기댄바 크지만 청빈을 지키며 초심(初心)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피안(彼岸)의 향기가 머무는 땅에만 머물 순 없다. 개구리바위를 지나니 잎이 시든 연(蓮) 못이 있다. 진흙탕 속에서 핀다는 연꽃, 물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슬처럼 토해내는 연잎…,
고요와 적막 속에 자신을 돌아본 이들이 이제 흙먼지 가득한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슬처럼 영롱한 언행을 보여줄 각오로, 스스로는 가난해지고 타인들을 살찌울 결심으로 살아가리라. 은행나무의 금빛보다 진한 단풍나무 붉은 잎들의 단단(丹丹)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배웅을 받으며 총총히 공림사(公林寺)를 떠난다.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멸해가는 노엽(老葉)들 (0) | 2019.01.07 |
---|---|
굽은 선 곧은 선 (0) | 2019.01.04 |
비, 단풍 그리고 낙엽 (0) | 2018.10.29 |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을 보며 (0) | 2018.09.21 |
월드컵을 보면서 (0) | 2018.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