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간 자리
중국 곤명에서 한식당 〈한강〉을 운영하기까지 -
글쓴이 안원환은 중국 운남성 곤명에서 한식당 〈한강〉을 운영한다. 그가 60을 넘기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낸 책으로 여겨진다. 그의 이력이 다채롭다. 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 남승무원으로 입사한다. 그 후 국제상사 무역본부와 미 8군 〈투어앤트래벌센터〉를 거쳐 여행사를 운영하기도 하다가 남대문시장에서 자영업을 하기도 한다. IMF를 거치며 중국 곤명에 들어가 식당업을 한다. 그 다양한 삶을 살면서 경험도 인간관계도 다양하다. 그가 겪어온 삶이 그대로 펼쳐진다.
앞부분에는 어린 시절에 살던 곳들과 그곳에 얽힌 체험과 알고 있는 당시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중학생이 되어 펜팔을 통해 글을 잘쓰는 문학소녀와 사귀다가 막상 만난 후에는 오히려 문학소녀의 친구와 한동안 사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 시절의 가치관과 치기가 그대로 드러난 듯하다. 대한항공 승무원시절에도 여승무원과 비행 중에 벌였던 가벼운 애정행각이 손님 눈에 띄어 마음 졸였던 일이 적혀있다. 친지부부들과의 여행 중에도 발리에서 있었던 마사지 사건을 적고 있다. 글쓴이의 의식이 드러난다.
자신의 인간관계와 지인들을 지나치게 실명으로 소개하는 것은 좀 그렇다. 마치 ‘나 이런 이들과 이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이런 수준의 사람이야’라는 자랑처럼 읽힌다. 그의 살아온 삶이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것이지만 모든 이의 삶이 독특한 게 아니던가.
곤명에서 알렉스라는 흑인에게 사기당하는 장면은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알게 한다. 글쓴이도 평소 같으면 절대 그렇게 당할 이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손실액에 비해 잘 되었을 때 이익이 비교할 수 없이 컸다. 그게 사기의 특징이다. 치밀하게 계획된 한탕에 당한 게다. 그런 일당의 먹이로 지목되고 그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해 오랜 기간 공을 들이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아예 그들의 공격대상이 되지 않는 게 최상이다.
곤명에서 처음으로 펼치는 일식당 운영은 처절한 한 편의 희극이다. 일식에 대한 실력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럼에도 열정에 힘입어 손님이 몰리고 옆의 한식당마저도 인수한다. 그 진땀나는 어설픈 기간이 얼마나 힘겨웠을까를 생각한다. 그런 과정들이 식당사업에서 버티고 앞서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게다.
속 썩이던 주방장을 자르니 노동중재위원회에 제소가 되어 법정싸움이 되었다. 어디나 법정다툼은 지루하고 변호사들 잔치가 된다. 글쓴이의 합리적 사고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사실과 다른 것은 그대로 또 문제인 듯하다.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면서도 자본주의적인 면이 적지 않고,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서로의 경쟁이 치열하고 사유재산의 추구가 자유롭고 돈이 있으면 어렵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으니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설프게 일고 있던 내 지식에 혼란이 온다.
나름대로 한식당을 운영하며 곤명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 누군가의 제보로 공안들이 들이닥친다. 한 군데가 잘 나가면 피해를 입는 곳도 생기게 마련이고 사촌이 땅을 사도 내 배가 아프게 마련이니 제보만을 탓할 수는 없다. 저자는 단속 나온 공안들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행정적인 일처리가 확실하지 않아서 당하는 고충도 많다.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받기가 어려우니 편법으로 학생비자를 받고 할 수 없는 돈벌이를 하니 항상 불안하다. 저자는 관계를 맺은 이들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그것은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이 착해서도 아니다. 글쓴이가 사람들을 대하는 진심이 통하는 게다. 마음을 서로 나누고 친구가 될 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고 한 밤중 늦은 시각에도 도움을 주는 게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힘이 통한다는 건, 약자들 편에서는 서러운 일이다. 조선족 손님의 행패를 해결하는 방식이 힘 있는 이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으니 그렇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사는 거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뭔가 항상 피해를 입고 살 것 같다.
사업에서 보여주는 글쓴이의 능력은 대단하다. 감각과 직관, 그리고 합리적 사고와 결단이 탁월하다. 투자규모가 적지 않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그때그때 저지른다. 남들이 보면 무모하달 수 있으나 저자는 치밀한 계산을 거쳐 일을 결단하고 이루어 낸다. 위생관념이나 규모나 품질이 열악한 지역에 그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시설과 규모를 갖추고 대량판매를 염두에 두고 과감히 가격을 낮춘다. 예상은 적중하고 그 지역의 식당문화를 한두 단계씩 올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한국인이 지역적 영토 안에만 머물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가 나아지면서 예전 우리가 아메리카 드림을 가지고 이민을 갔듯이 열악한 지역사람들이 우리 사회로 몰려오고 있다. 먹을 것이 있는 곳에 모여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례해서 먹을 것이 좀 더 풍성하고 더 높은 문화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가기도 하고, 우리의 노력과 기술로 재화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가기도 한다. 꿈을 이루며 서로에게 유익을 주며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게다. 저자의 활력 넘치는 삶을 응원하며 그런 삶의 자세를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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