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국 유 사
- 역사의 뜻을 묻다 -
저자 이양호의 삶이 흥미롭다. 정통제도권이라기 보다는 재야학자라는 느낌이다. 고전연구소에서 사사하고 고전대안학교를 설립해 가르치고 통념을 뛰어넘는 고전읽기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재야학자 겸 교육가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럴 때, 고전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가능하고 독자의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다.
그동안 독서계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삼국유사가 여러 권 나왔을 테지만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겉 내용만 읽었을 뿐이지 지은이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연관성 적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삼국유사가 쓰인 당시에는 그 얘기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되었을 게다. 하지만 당시에 그 책을 소유하거나 읽을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대다수가 문자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시기이니 말로는 공감해도 문자화된 글로는 대하기 어려웠으리라.
지은이인 일연스님이 대단하다. 역사와의 관련성이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종교인으로 역사서를 그것도 주견과 사관이 뚜렷한 상징의 언어로 써내려가기가 쉬웠을까. 남들이 하지 않고 인정받기도 어려운 일을, 오히려 공인된 곳에서 행한 결과가 마음에 영 들지 않아 개인이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평생의 숙제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무신정권이 일어난 지 40년가량 지나 출생하여 60이 넘도록 그들의 만행과 몽골의 침략과 수탈과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 했다. 그는 국가란 무엇이며, 역사란 또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평생 떨쳐내지 못하고 어미닭이 알을 품듯 궁굴리며 살았으리라.
일연이 태어나기 60여 년 전에 나온 책, 삼국사기를 그가 안 보았을 리가 없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전문 학자들이 저술한 50권으로 된 분량이 많은 그 책을 읽고 나서 허탈했으리라. 내용이야 맞고 격식도 있었겠지만 이건 아니라고 느꼈을 게다. 그걸 읽고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한탄하고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모아 상징성 짙은 역사책을 쓰려 했을 것이다.
자신의 책을 누가 읽어주기를 바랐을까. 지식인들이 깨닫기를 원했겠지만 주류 지식인들이 읽으면 자신이 여러 면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음직도 하다. 사회의 중류층이나 하층민들이 읽고 각성하기를 원했겠지만 그들은 그 책을 소유할만한 여유도 없고 읽어낼 만한 능력이 없었을 게다. 어쩌면 그는 후세 사람들이 읽고 바르게살기라도 원했을지 모른다.
그는 지도층의 잘못을 많이 기록해 놓았다. 충담사의 이야기를 통해 임금과 관리들의 책무를 경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백성들을 가족 돌보듯 하지 않고 군림과 수탈에 여념이 없고 자리빼앗기와 지키기에 골몰하는 그들이 보기 싫었으리라. 백성들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이 유흥과 사치와 성적 방종으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딴 세상살이에 힘으로 어쩌지 못함에 글로라도 한방 먹여주고 싶었을 게다. 지배층의 신선놀음에 백성들이 고통 겪고 있음을 이전 역사를 재료삼아 절규하고 싶었으리라.
화랑과 외척들의 폐해를 여기저기 기록하고 있다. 힘을 가진 이들, 권력자의 주변이 힘에 무감각해져 부패하고 횡포를 부리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 지를 목청껏 외치지만 귀 기울여 듣는 이들은 없었다. 그는 삼국사기를 관통하는 흐름이 자주적이 아니라는데 절망했을 것이다. 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입장에서 쓰고 보아야 하는가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록한 관리들이 제대로 된 국가의식과 정신을 소유하지 못한 게다.
단군뿐 아니라 여러 부족의 시조들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언급된다. 자존감을 가지라는 얘기일 게다.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잊지 말라는 거다. 웅녀이야기를 통하여 먹는 게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먹는 것, 사는 방식,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될 수 있다. 곰이나 호랑이처럼 살아서는 희망이 없다. 적어도 사람답게 살기위해 최소한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종교인이어서 일까. 왕과 지도층의 종교적인 삶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 하지만 종교적인 업적이 많아도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기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삶이 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진흥왕을 기록하면서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힌 것을 일언반구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의 역사관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거다. 싸움으로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파탄내고 땅을 빼앗아 내 것을 삼는 것이 탐욕에서 비롯된 죄짓는 일밖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오히려 이차돈의 순교와 아소카 왕 같은 면을 보이는 진흥왕을 소개한다.
무력한 백성들을 향해서도 정신 차리기를 요청한다. 처용은 역신이 자신의 부인과 놀아나는 장면을 보고 춤을 추며 물러나지만 용왕이 수로부인을 물속으로 납치해 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구지봉에 모여 돌려주지 않으면 잡아구워 먹겠다고 시위 협박을 한다. 용왕도 다수의 힘에 맞서지 못하고 수로를 돌려준다. 성적인 상징도 여기저기 넘쳐흐른다. 성적인 문란이 얼마나 커다란 폐해가 되고 공동체를 부식시키는지 돌아보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방대한 삼국사기보다 삼국유사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