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전 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유명한 김진명 작가가 썼다. 그가 소설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태민, 주인공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박사가 되어 탄탄한 길을 걸으리라 짐작하지만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물리학 공부를 마치고 스탠퍼드대로 옮겨 국제정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로히드마틴사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지만 인정을 받고 곧 무기중개상으로 독립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무기구매를 심리치료라고 믿는 그는 이회장이라는 인물과 동업을 한다. 500억을 벌어 해외에 나가 삶을 즐기겠다는 인생목표를 정하고 사업을 펼치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중국으로 도피를 한다.
베이징에서 킬리만자로로 불리는 소설가 전준우를 만난다. 그 소설가는 문자에 관심이 많았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그는 이태민에게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큰 약점이 담겨있다는 USB를 이태민에게 맡긴다. 그는 곧 공자숭모회 회원에게 살해당하지만 그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호기심을 느낀 태민이 자료를 열어보니 미완성 소설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 소설에는 서맥족에 속하는 두 마을 사람들이 전원 살해되는 사건이 실려 있다. 다섯 가량의 일당에게 예리한 검으로 살해당한 흔적을 보며 태수 안망은 사건을 수사 추리해 해결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피해 입은 마을에 갔던 마발은 피투성이가 되어 늦게 겨우 돌아와 아무 말도 못하고 공중에 무슨 글자를 쓰다가 죽는다. 그들은 국상 을파소에게 찾아가 사건을 설명한다. 두 사건이 서맥족과 무당이 관련되었음을 알아내고 장만현에 서맥족의 마을을 만들고 유사한 상황을 재현한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풍장(風葬)이었다. 살해당한 시간을 역산하여 소년과 관련이 있음을, 마발이 마지막에 쓰려던 글자는 활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풍장을 지내는 이들이 장례에 사용하는 조(弔)자와 다른 이들이 사용하는 조(吊)의 두 글자를 주목한다.
태수는 조(吊)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조(弔)를 쓰는 이들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한다. 그의 논리는 조(吊)는 인구가 더 많고 옷감이 더 발달한 곳에서 사용될 것이고 조(弔)는 문화가 뒤진 풍장의 관습이 있는 곳에서 쓰일 것인데, 문자의 사용이 조(弔)가 더 먼저였을 것인바 조(吊)자를 사용하는 이들이 한자(漢字)의 모든 기원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본 것이다. 서맥족 마을을 만들고 풍장을 지내고 조(弔)를 사용하는 유사한 조건을 만들자 다시 무당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상황은 설정된 것이어서 범인 중 일부가 잡힌다. 잡고 보니 마을에서 가장 명망 있고 존경받는 예의에 밝은 유생 석정의 짓임이 드러난다.
태민은 재기를 노리며 무기중개를 재개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릴 기회를 맞지만 전준우의 소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한나라가 문진대회를 개최해 주변나라들의 유학자들을 초청하여 연학전(戀學殿)을 보여주고 사마천의 사기를 한 질씩 선물하고 한자를 만든 창힐을 내세워 문화적 자산들을 가지고 압도하려 한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참여한 유일한 여인인 이지는 문진대회의 장원이 흉노족에서 나올 것을 귀띔하고 그것은 사실로 밝혀진다. 수많은 글자가 새겨진 곳에도 없는 논 답(畓)자를 기둥에 적어두므로 여인은 수많은 유학들 앞에서 모든 글자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밝히고 집 가(家)를 들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
전준우의 소설은 그곳에서 미완으로 끝이 난다. 태민은 의혹을 가지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서책을 찾아 진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는 동이(東夷)를 만나고 그것이 고구려로 이어지는 부족임을 확인한다. 공자와 사마천, 그들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바로 잡히지 않았음을 찾아내 한자도 더 정확히는 은자(殷字)라는 걸 밝힌다.
무기중개의 일로 미국을 방문한 태민은 스탠포드에 들러 비교언어학교수를 만나 한글이 한자의 발음기호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듣는다. 중국의 지성 임어당은 한자(漢字)가 동이족이 만든 언어임을 고백한다. 태민은 중국의 고고학대회에 초청받아 자신의 탐구결과를 밝힌다. 반응들이 다양하지만 자신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만족한다.
저자 김진명은 이 소설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인가. 북한과 남한의 한자교육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부실하다. 민족문화의 계승이란 면에서도 심각하다. 우리의 위대성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내 소중한 것을 내팽개치고 있는 현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추구뿐 아니라 임어당의 고백이나 한자와 한글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의 논리에 수긍이 되는 면이 적지 않다. 개인의 두뇌개발, 경쟁력향상,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 것에 대한 연구, 특히 한자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되찾자는 것이다.
작가 김진명은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이 우리 고대사의 빈약한 부분들을 메꿀 수 있기를 바란다.
글자는 문화의 바탕이다. 국수적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나서는 심정으로 해당 전문가들의 심층 연구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