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옥상에서 있었던 일
A시에 있는 B초등학교 합창반은 어린이날 있을 동요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합창단원들은 점심시간 음악실에 모여 일찍 연습을 마치고 바로 위 옥상에 올라가 놀았다. 스물다섯 전후로 보이는 두 청년이 옥상에 나타나 한쪽 구석에 앉을 때까지 아이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해이, 랏쓰 해브 핏자!”
“캄 히어, 캄 히어.”
어색한 영어로 부르는 그들 주위에 아이들은 호기심을 느끼며 모여들었다.
“해브, 이트 투게더.”
“얘들아, 먹자. 먹고 얼른 내려가자.”
“그런데, 누구세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 청년들의 애매한 표정에 누군가 크게 말했다.
“후 아 유?”
질문을 알아들은 그들은 둘이 서로 마주보더니 한참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C국에서 돈을 벌기위해 한국에 온 노동자들이다. 넉 달이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을 납치해 시선을 끌어 사회에 그 문제를 알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어찌 해야 할지 그들도 난감할 뿐이다. 예상으로는 이쯤 되면 경찰이 오고 사람들이 까맣게 모여들고 신문과 방송 기자들이 와서 서로 문답을 하고…, 긴장과 혼란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두 청년은 뭔가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그만 가자,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아이들이 일어나 내려가려 하자 청년이 황급히 일어나 출구를 막아섰다.
“유, 머스트 비 히어, 캔트 고우.”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 안 돼요?”
“아, 와이 캔트 위 고우?”
그들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입구만 막고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났다. 아이 중 하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두세 군데 자리가 비어있다.
“아직 안 들어온 사람 누구야?”
“합창반 아이들이예요. 옥상에서 놀다가 이제 곧 들어올 거예요.”
“선생님, 조금 전에 제게 전화가 왔는데요, 어떤 아저씨들이 못 내려가게 한대요, 우리 가볼까요?”
“네가 전화해봐, 아직도 거기 있는지.”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요….”
“반장, 합창반이 있는 다른 반에 가보고 와라.”
“예에…,”
학급이 소란스럽고 술렁거린다. 몇 아이들은 옥상으로 가보자고 한다. 다른 교실에 갔던 반장은 그 반 아이들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얘들아, 잠깐만, 내가 교무실에 갔다 올게….”
다시 옥상이다. 청년들은 출구를 막고 있고 아이들은 조금 물러나 있다. “나, 화장실 가야 해요,”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아이 원트 고우 투 토일렛”
“노,노,노. 낫. 오우버 데어, 오우버 데어.”
“빅 완, 유노 빅 완? 빅 완 낫 데어.”
두 청년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듯하다. 자기들끼리 빠르게 말을 주고 받더니 그 아이에게 갔다 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도요.” “나도요.” “나도요.” “나도요.” “나도요.” …….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돼요?”
“쉬 캔 고우, 와이 캔트 아이 고우?”
“애니완 캔 고우, 와이 캔트 위 고우?”
한 청년이 주머니칼을 꺼내 쳐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씻 따운, 씻 따운. 낫 캄 니어.”
“올 폰 히어, 올 폰 풋 온 히어.”
청년은 앞에 있는 아이의 전화를 빼앗아 바닥에 놓았다.
“퀵클리 폰 히어, 퀵클리, 도운트 폰, 퀵클리 풋 히어.”
모아 놓은 전화기 중에서 벨이 울린다. 아이들이 눈으로 확인을 하고 한 아이가 받으려 하면서 청년의 눈치를 살핀다. 청년은 눈짓으로 받으라 한다.
“엄마, ……, 못 가게 해, 칼 가지고 있어,……, 일곱 명, 끊지 마,…”
청년이 다가와 전화를 빼앗는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전화기에서는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들은 모두 급히 교무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방송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모든 어린이들은 운동장으로 나가 모이기 바랍니다.”
또 다시 같은 방송이 되풀이되고 아이들 뛰어나가는 소리 요란하고 체육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곳에 정돈시키러 나간다.
교장 선생님은 안절부절 불안한 표정으로 선생님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떤 선생님이 이 일을 맡아 해결하겠습니까?”
“먼저 신고를 해야지요, 제가 중심이 되어 처리해 보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이다. 전화를 거는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해쓱한 듯도 하다.
“여보세요? 경찰서지요? ……, B초등학굔데요, 납치사건이 발생했어요.
……, 몰라요, ……, 모르구요,……, 모릅니다, ……, 그런 것 같아요, 하여튼 빨리 와 주세요.”
옥상에서 화장실을 들러 교실에 간 학생이, 운동장에 있다가 한 친구와 함께 교무실로 왔다. 모여 있던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간략한 설명을 듣고 있다. 교감선생님의 전화기가 울린다.
“예,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요? ……, 가능한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자극하지 말라고요? ……,두 명이고, 일곱 명이요.”
“들으셨지요, 시간을 끌면서 그들을 자극하지 말고 요구사항을 들어주래요. 곧 경찰이 도착할 거랍니다.”
다시 옥상. 이미 교감 선생님과 한 아이의 휴대전화를 통하여 양측의 연락이 되고 있다. 범인은 성능 좋은 마이크를 요청했다. 학교 측은 가장 좋은 마이크를 옥상으로 올려 보냈다.
학교로 접근하는 경찰차를 보고 범인 중 하나가 마이크를 들고 소리친다.
“폴리스, 노 스쿨, 이프 폴리스 엔터 스쿨, 칠드런 낫 세이프.”
교감 선생님은 경찰에 연락하고 경찰차는 교문밖에 멈춰 선다. 어떻게 알았는지 각 신문사와 방송사의 취재차량과 기자들이 밀려오고, 학교와 범인의 방송을 들은 주민들이 학교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
“아이들은 안전한가? 당신들의 목적이 무엇이요?”
스피커를 통한 경찰서장의 외침에 아무 대답이 없다. 주변에서 몇몇이 범인들이 한국말을 못해 영어로 대화를 진행한다는 말을 한다. 경찰서장의 얼굴에 순간 긴장과 당황의 빛이 스쳐간다.
“아엠 폴리스, 아 칠드런 세이프? 홧스 유어 포프스?”
“칠드런 아 세이프. 아우어 꼴 이즈 투 겟 아우어 마니 후럼 컴퍼니. 위 디든트 겟 애니 마니 훠 훠 먼스.”
“홧스 유어 컴퍼니스 네임? 샌드 미 컴퍼니 앤드 유어 보스 네임 앤드 폰 넘버, 오케이?”
“아이 돈 노우 유어 폰 넘버, 콜 아웃 라우들리 유어 폰넘버.”
경찰서장이 스피커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큰 소리로 외치자 모여든 이들은 킥킥대기도 하고 그 번호를 받아적는 이들도 있다.
“아이 샌트 네임 앤드 폰넘버, 쌀브 더 프라블럼 퀵클리, 댄 위 윌 샌드 칠드런 세이플리.”
“기브 어스 투 아우어스 후럼 나우, 위 윌 쌀브 유어 프라블럼.”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이들이 생겨나자 범인 중 한 명은 아예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갔다 오는 게 일이다. 신문과 방송 관계자들은 실시간 보도를 위해 드론을 띄우고 옥상에 있다 빠져나온 아이의 인터뷰에 바쁘다. 한데 모아둔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요란하다. 번호를 알아낸 기자들의 전화다. 제 것임을 확인한 아이는 발신자 문자를 보고 소리친다.
“프레스, 뉴스페이퍼, 두 유 원트 겟 잇.”
“예스, 패스 잇 미.”
“왓 두 유 원트 미?”
한 동안의 통화를 거쳐 기자들은 기사를 작성하고 그 정보로 범인들의 나라에 있는 가족들과도 통화를 했다. 한 방송사는 선거 유세차량 같은 설비에 해외가족과의 화상통화 장면을 띄워 놓았다. 그 화면은 옥상에서만 잘 보일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양편으로 분할되어 해외가정과 범인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비치고 가끔 방송으로도 송출된다.
“마이 썬, 왓 아유 두잉 나우? 잇츠 낫 굿, 위 원트 유 리브 라이틀리, 릴리스 올 더 칠드런 앤 컴백 홈.”
“하니, 아임 유어 와이프, 샌드 더 칠드런 투 데어 홈, 아일 웨이트 유, 컴백 아우어 홈. 플리즈, 릴리즈 올 더 칠드런 세이플리, 아이 백 유.”
화상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본 범인들은 더 신경질을 냈다. 자신들의 일이 국내외로 알려지고 문제가 되는 것이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범인들의 회사 사장은 사건을 보고 받고 겁이 났던지 자취를 감춰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경찰이 약속한 두 시간이 다 되어가고 아이들도 겁을 먹고 지쳐가고 있었다. 범인들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교장 선생님은 남은 전교생을 하교시켰다. 그 일은 교문만 개방한 꼴이 되어 주민과 신문방송인들이 운동장까지 들어왔다. 학교와 친구들이 궁금한 아이들은 다시 가족들과 함께 학교로 모여 들었다. 화면은 지친 옥상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모두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의 약속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경찰서장은 나타나지 않고 사장을 찾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메시지가 관계자를 통해 전달되었다.
갑자기 범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우렁우렁 울리고 있었다.
“올 피플 리브 플레이그라운드 비훠 텐 미니츠, 오어 위 캔낫 킾 칠드런 세이프.”
“왓 캔 유 두 유 앤드 올 더 칠드런 훠 서퍼 앤드 슬리핑?”
경찰이 물었다.
“아이 돈 노우 애니씽, 올 오브 유 잉클루딩 티처 앤드 프린시펄 리브 스쿨 라잇 나우, 이프 낫 아이 우드 허트 애니 칠드런, 올쏘, 크드 화이어 마이 껀 어겐스트 유 올.”
커다란 술렁거림이 일었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해칠 뿐 아니라 발포를 하겠다니 따를 수밖에 없다.
“아엠 폴리스, 기브 어스 텐 미니츠. 위 윌 리브 스쿨, 벗 하우 윌 올 더 칠드런 훠 서퍼 앤드 스리핑? 유 캔트 기브 프로퍼 솔루션, 위 퍼펌 라스트 오퍼레이션.”
잠시 조용하던 범인이 결심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일 기브 압 마이 라이프, 이프 유 엔터 히어, 매니 피플 윌비 킬드. 나우, 올 더 피플 리브 스쿨, 오어 아일 슛 더 껀 애프터 화이브 미니츠.”
경찰의 방송이 나가고 있었다.
“안전을 책임질 수 없으니 모두 학교건물과 운동장에서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아이들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어린이 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도레미 송, 작은 별, 섬 집 아기, 메기의 추억, 고향의 봄, 어버이 은혜… 줄줄이 이어졌다. 한 아이가 부르던 노래는 어느 새 합창이 되고, 작았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화면 속 범인의 가족들도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방송사의 조명은 높이 떠 옥상을 환히 비추고 있다. 누군가 율동을 시작하고 있다. 아이들의 춤은 천진난만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대회를 위해 준비한 외국노래들을 아이들이 부르기 시작했다.
클레멘타인, 메기의 추억, 도레미 송, 작은 별, 즐거운 나의 집을 거듭 불렀고 캐럴과 만화주제가들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이제 인질이 아니었다. 큰 원을 그리면서 범인들의 손을 잡고 옥상을 돌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운동장에 가득했던 주민들도, 선생님과 아이들도, 하나 둘 옥상으로 오르고 있다. 경찰은 이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희한한 방송을 하게 되었다. 납치사건을 보도하다가 주민 화합을 위한 노래잔치 같은 분위기의 방송이 되었다.
범인들은 전혀 도망가려 하지 않고 경찰들이 면밀히 살폈지만 그들은 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주머니칼 외에는 어떤 무기도 없었다. 현실을 잊은 듯한 춤과 노래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합창반 아이들이 노래를 이끌고 있다. 나른하고 기분이 좋아진 이들이 노래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서장입니다. 범인들 회사 사장이 자수해 왔습니다. 또 지역의 한 은행이 건물을 담보로 밀린 임금을 모두 지급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범인은 체포 후 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큰 박수로 사건이 잘 해결된 것을 기뻐했다.
경찰 중 한 명이 범인에게 다가가 방송내용을 알려주었다. 범인이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땡큐 쏘우 마치. 앤드 아임 베리 쏘리 훠 마이 투데이스 비해이비어. 플리즈 훠기브 어스, 아윌낫 훠갯 투데이. 아임 쏘우 무브드 올 오브 유.”
다시 한 번 박수소리와 휘파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들은 서로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며 옥상을 빠져나갔다. 오후 내내 인질이 되었던 아이들도 두 아저씨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가족들과 함께 운동장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범인들은 옥상 한 구석 난간에 몸을 기대고 울고 있다. 경찰 몇 명이 다가가 범인들과 함께 옥상을 빠져나간다. 선거유세차 같은 설비도 사라지고 옥상을 밝게 비추던 조명도 꺼졌다. 캄캄한 운동장과 옥상을 비추면서 텔레비전에서는 긴 현장방송을 이렇게 마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어둠에 잠긴 학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침을 떼고 있었고, 하늘에는 모든 걸 다 보았다는 듯 반달이 빙긋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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