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매력적인 내 친구
“장군, 지금 제 정신이오?”
“왕이시여, 황송하옵니다.”
“적군의 전사, 거인이 40여 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를 조롱하며 싸움을 걸어도 용사는커녕 장수 중에 싸우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는데 아이를 데려다 뭘 하겠다는 거요? 이제는 장군도 사리분별을 못한단 말이오?”
“황송하옵니다만, 왕이시여 이 아이가 물러서질 않습니다.”
“아무리 상금을 높이고, 왕의 사위를 삼고, 집안의 세금을 면제한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더니, 그래 40일 만에 나선 지원자가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어린 아이란 말이오? 적군의 전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거인의 용사요.”
“왕이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저 녀석을 이기겠습니다.”
아이는 왕 앞에서 당당했다.
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장군, 장군은 이 아이가 저 거인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이 아이가 저 거인에게 패해 목숨을 잃으면 우리 용사들과 장군들의 체면은 무엇이 되겠소?”
나는 이 모든 장면을 보고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적과의 대치로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터에 양치기의 평상복을 입고 장군을 따라 온 아이.
남루한 차림 속에 기품이 보이며, 허술해 보이나 단단함이 느껴지고, 편안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로 왕과 장군이 날 선 대화를 이어가도 표정변화가 없었다.
아버지는 후계자 수업을 위해 왕세자인 나를 이 전장에 데려 왔을 것인데, 참전은 내가 원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블레셋의 골리앗이다. 내가 너희 신을 모욕한다. 그를 위한 용사가 있으면, 출전해 나와 겨루어 진 편이 이긴 편의 종이 되자.”
그는 2m 90cm 가량의 거인 골리앗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에도 이스라엘 진영은 두려움에 떨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그 수치스러운 함성을 들으며 대치한 40일.
“에이, 듣기 싫어, 누가 저 녀석과 못 싸우나?”
“우리는 병사라 그렇다 해도 장군들은 다 뭐하나?”
우리에게는 치욕의 기간이었다. 우리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작전회의는 늘 왕의 화난 목소리와 한숨과 탄식소리뿐이었고, 모두가 어쩔 줄 모르고 전전긍긍했었다. 회의가 끝나고 아버지께 여러 번 나가 싸우고 싶다고 했지만 ‘왕이 될 몸을 가볍게 다루지 말라’며 만류하셨다.
아버지는 한 참모와 짧은 밀담을 나누신 후, 다시 아이와 대화를 나누셨다.
“얘야, 전쟁은 놀이가 아니야. 지면 정말로 죽는 거야.”
“전 지지 않아요, 죽는 건 저 녀석 이예요.”
“어떻게 이긴다는 거냐?”
“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울 거고, 저 녀석은 하나님을 모욕했어요.”
“얘야, 전쟁은 믿음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야. 실력이 있어야 해!”
“양을 칠 때, 양 새끼들을 잡아가는 사자나 곰들과 싸워서 언제나 제가 이겼어요. 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 당연히 제가 이겨요.”
“용기는 가상하다만 너를 내보낼 수는 없구나, 돌아가거라.”
“허락해주세요, 전 싸우면 반드시 이겨요.”
아버지는 한동안 뭔가를 고민하시는 듯 했다.
“꼭 나가서 싸우고 싶으냐?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
“네, 그리고 전 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가 싸워라. 그 대신 내 갑옷과 칼을 가져가라.”
그 소년은 양치기 옷 위에 왕의 갑옷을 입었다. 질질 땅에 끌렸다. 칼을 들어 휘둘러보더니 무거운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갑옷을 입고는 뛰기는커녕 걷기에도 불편하고, 칼은 자유로이 휘두를 수 없습니다. 편한 상태로 싸우고 오겠습니다.”
그 순간, 내 갑옷과 칼을 내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왕의 대답도 듣기 전에 적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아이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죽을 것을 알면서, 그것도 비무장으로 싸우러 보냅니까?”
“크게 봐야지. 적군을 불사르진 못해도 불쏘시개는 될 거다.”
“저 아이가 저라면 보내시겠습니까?”
“보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저 아이는 적어도 우리 군사들에게 의무감이라도 일깨워 우리 편을 강해지게는 해 줄 것이다. 아이의 가문에 큰 보상을 해 주어야지!”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게 되겠지!”
아이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은 나오라, 내가 상대해 주겠다.”
적진은 잠시의 고요가 지나가고 술렁임과 혀 차는 소리가 바람처럼 일어났다.
방패든 병사를 따라 골리앗이 나오며 소리쳤다.
“아가,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엄마가 찾으신다.”
“너는 칼과 창을 의지하나, 난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스라엘에 장수나 용사가 그렇게 없는가? 아이를 보내 전쟁놀이 하자는 거냐? 차라리 패전을 인정하고 우리의 종이 되라.”
아이는 양치기 차림으로,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고, 골리앗은 태연자약하게 한 걸음씩 다가 왔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가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나섰어야 했다.
달려가던 아이가 팔을 휘두르더니 무엇인가 던지는 듯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비명과 함께 골리앗이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적진에서는 “어어 - ”, 하는 비명이, 우리 편에서는 “와아 - ”하는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편은 달려 나가고 있었고, 적군은 도망가느라 바빴다. 쫓기던 적군은 그대로 후퇴를 했고, 우리는 노획물을 수습하여 진영으로 돌아왔다.
승전기념연이 열렸다. 왕은 이번 싸움에 있어 아이의 비중과 그 대단한 역할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치하했다. 뒤이어 몇몇 장수들이 별로 다르지 않은 말들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
“오늘의 전투는 저 아이 혼자 한 거야.”
“혼자서 블레셋 군사들을 다 물리친 거야.”
“혼자 다 ……,”
나는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왕이 자신이 한 일을 치하할 때에는 수줍어하고 겸연쩍어 하더니 다른 장수들의 거듭되는 칭찬에는 표정 없이 떨떠름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잠시 곧 화제가 다른 것으로 옮겨가자 아이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좇아 일어나 따라갔다.
“나는 왕자 요나단이야. 우리 친구하자.”
“응, 그래. 난 다윗이야.”
위축됨이나 뻐기는 것을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뭐 좀 물어보자.”
“뭘?”
“어떻게 그토록 자신 있게 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나한테도 이길 수 있어?”
“응.”
“왜 싸우러 나갈 때 갑옷을 입지 않았어?”
“입을 필요가 없었어.”
“칼도 그래서 가져가지 않은 거야?”
“응.”
“그렇게 자신만만한 이유가 뭐야?”
“골리앗의 무기가 미치는 거리 밖에서 난 이길 수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물맷돌이 골리앗의 창보다 훨씬 멀리 나가고, 정확해.”
“물맷돌로 골리앗을 맞추지 못하면?”
“그런 일은 없어. 내 물맷돌은 정확하고, 목표물은 크고 느렸으니까.”
“그래도 실수한다면?”
“실수해도 세 번까지 던질 여유가 있었어.”
“물맷돌이 그렇게 정확해?”
“매일 던져서 이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출 수 있어.”
“너 정말 대단하다!”
“별거 아니야.”
그가 싸우러 나갈 때 주고 싶었던 내 갑옷과 칼을 그에게 건네자 몇 번 거절하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난 후에 깊이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현하고 받았다. 그처럼 당당하고 또 기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친구를 만났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만만치 않은 관계로 수없이 만날 것만 같다.
“어디로 갈 거야?”
“내 양들이 있는 들판에.”
“우리 또 만날 수 있겠지?”
“모르지.”
“잘 가.”
“잘 가.”
점점 멀어지던 내 친구가 시야에서 점처럼 작아지다가 마침내 사라졌다.
한 여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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