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
작가 박완서는 우리 민족이 힘겨운 시기를 살아냈다. 1931년에 태어났으니 식민수탈이 극심하던 시대였다. 이차 세계대전을 지나 해방과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시기와 군사정변 그리고 박정희 정권을 거쳐 신군부쿠데타와 문민정부에 이르는 숨 가쁜 시기를 살았다. 어쩌면 시대의 또 다른 증인이요 기록자로 이 땅의 삶을 살도록 운명 지어졌는지 모른다. 이 작품에는 출생부터 한국전쟁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저자로 짐작되는'나'의 아버지는 화자가 아주 어렸을 때, 병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생명을 잃는다. 어머니는 그 일을 겪고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로 소개된 박적골을 떠나길 원한다. 나는 국민학교 입학을 위해 그곳을 떠나지만 원초적 체험과 기억의 바탕이 그곳에 있다.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간 서울은 현저동이었다. 산꼭대기 가난한 달동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동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대문안의 학교에 보내기위해 위장 주소를 사용한다. 학교와 사는 곳이 달라서 산길을 걸어 다녀야 했고 그것은 혼자가 편한 삶의 원인이 되었다. 당시에 어머니의 돈을 조금씩 꺼내 사탕을 사먹곤 했는데 가게의 유리 상자를 깨서 그 식구들이 찾아와 야단을 칠 때에도 어머니는 나에게 돈의 출처는 따져 묻지 않았다.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고 자존을 지켜준 셈이다.
고향의 숙부는 면서기로 취직을 하고 상업학교를 졸업한 오빠는 총독부에 취직을 했다가 반 년 만에 월급이 배나 더 많은 철공소로 옮겼다. 내가 주인집 아이와 다투고 그 싸움이 어른싸움이 되자 어머니는 무리를 해서 집을 샀는데 그것이 현저동 괴불집이다. 전선은 확대되고 전황이 불리해져 가면서 오빠에게 징집장이 나오지만 회사의 도움으로 빠지게 된다. 오빠는 동료의 징집에 항의하다 직장을 사직한다. 나는 숙명고녀로 진학을 하지만 서울 소개령이 내리면서 개성으로 가 호수돈으로 옮긴다. 오빠는 공산사상에 빠져가고 어머니에게 갑자기 만나보게 해 폐결핵을 앓는 아가씨와 서둘러 결혼을 한다. 개성 남산동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호수돈학교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감기로 시작해 꾀병처럼 진행되던 병이 폐침윤으로 판명되고 폐라면 두려워하던 어머니로 인해 학교를 쉬고 박적골로 돌아와 요양을 한다. 그때 자연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해방이 되자 면서기를 했던 숙부로 인해 할아버지의 문패가 패대기쳐지고 그동안 일본세력에 눌려 살던 이들에게 어려움을 겪는다. 개성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다시 소련군이 진주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우리 집은 다시 서울로 온다. 오빠는 공산사상에 젖어 살다가 중학교 선생이 되면서 보도연맹에 가입을 하고 공산당과 멀어진다.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숙명학교로 복학을 하고 졸업과 함께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합격하여 찬란한 대학생활을 기대한다. 학제의 변화로 5월에 졸업을 하고 6월 중순에 입학을 했단다. 대학생활이 보름도 가지 못하고 전쟁이 발발했다. 대단한 학자들의 강의를 듣지도 못하고 학창시절은 끝이 난다. 예상과 달리 전쟁은 현저하게 불리해지고 오빠의 안위가 걱정된다. 집으로 돌아온 오빠는 예전에 알던 공산주의자들과 집에 몰려들었고 동네에서도 경계의 눈초리와 함께 공산당 중에서도 높은 지위로 여기게 된다. 어쩌다 우리는 피난도 못가고 달라진 세상 인공치하를 겪는다. 상황은 달라져 인천상륙작전이 행해지고 서울은 수복된다. 다시 바뀐 세상에서 안심하라며 도망갔던 이들이 그 말을 듣고 남아있던 이들을 의심하고 몰아세우는 혼란과 불신으로 상황이 복잡해진다. 마녀사냥 같은 끔찍한 일들이 한바탕 일어난다.
오빠는 의용군으로 북에 끌려가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장은 다시 밀리는 상황에 방송은 피난을 독촉한다.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와 올케는 피난을 차일피일 미루며 오빠를 기다리다 ‘나’라도 피난을 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절묘한 시기에 거짓말처럼 오빠가 돌아온다. 그러나 오빠는 이전의 오빠가 아니다. 겁 많고 제정신이 아닌 듯한 오빠로 달라져 있다. 모두가 피난을 떠나고 텅 비어버린 서울, 알 수 없는 운명에 두려움이 일지만 뭔가 그것을 증언하고 써야할 것 같은 예감을 떨치지 못한다.
작가 박완서가 겪은 시대적 고통은 분명히 비극이다. 그것을 작가는 선악의 판단을 멀리에 두고 자신과 가족들의 행위도 그저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때로는 비도덕적으로 보이고 반민족적 친일로 보이는 것도 어쩌면 친 공산당처럼 여겨지는 일들을 한 것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바른 증언이고 정확한 자전적 글쓰기의 자세이리라.
글 전편에 흐르는 자연회귀에의 욕망, 시대적 아픔에 대한 인간적 행동과 그 여파를 아쉽고 서글프고 아픈 마음으로 음미하게 된다. 우리의 바로 앞 세대가 겪었던 그 아픔이 한 세대도 차이가 나지 않는 내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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