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처절한 정원

변두리1 2016. 11. 6. 22:02

처절한 정원

 

   프랑스 작가 미셸 깽이 쓴 20009월에 출간한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 프랑스에서 1년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짧은 은유적 소설이 큰 환호를 받은 것은 왜 일까. 그 바탕에 199910월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프랑스의 요직을 차지했던 그의 죄를 폭로하고 긴 세월의 노력으로 그를 법정에 세운다. 2년여 동안 1,59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그를 시효를 정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여 정의를 보여준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릿광대 연기를 하는 아버지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서든 자신을 부르면 달려가서 그 짓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어릿광대짓을 한다. 그러면서도 보수는 받지 않는다. 자신의 경비를 써가면서 굳이 가족들을 동반해서 낡은 다니아 파나르를 타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버지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다리라는 영화를 허름한 극장에서 보고 삼촌인 가스똥에게 감동적인 사연을 듣고 나서였다. 그때 본 영화도 그 이야기와 또 그들의 삶과 연관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삼촌은 심각한 고민 없이 독일에 항거하기위해 레지스탕스에 지원을 한다. 그들이 맡은 첫 임무는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역에 대한 독일의 통치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별다른 생각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독일편에서는 수사가 시작되고 프랑스 헌병이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을 이긴 축구팀 선수였던 나의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팀 내의 다른 두 명을 사건의 용의자로 고발한다. 고발당한 이들은 모두 총살당할 위기를 넘기고 체포되어 열 평 가까운 깊이 파놓은 땅 구덩이에 갇힌다. 독일군은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사흘 후에 그들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린다. 비를 맞으며 그곳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들을 감시하는 이는 절망적인 그들에게 자신의 솜씨로 웃음을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한다. 다시 찾아온 독일군은 공중에 위협사격을 하고 갇힌 네 명에게 먼저 죽게 될 한 명을 스스로 선정하라고 전달하고 사라진다. 아버지와 삼촌은 다른 둘을 제외하고 자신들 중에 하나를 정하려 하지만 감시병은 그것은 독일군을 돕는 것이라며 희생양을 정하지 말고 함께 죽든지 함께 살라고 한다.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독일군들이 다시 찾아와 위협사격을 하고 삽으로 그들에게 흙을 퍼부었다. 갇힌 네 명은 죽음을 예상했지만 독일군들은 범인이 자수를 해서 이미 처형당했고 그들을 꺼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삼촌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범인인데 누가 자수를 한단 말인가. 하여튼 그들은 죽음의 흙구덩이를 벗어나 감시병과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직업이 어릿광대요 이름이 베르나르 비키라는 것을 듣는다. 그들은 화차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어 그곳에서 탈출해 프랑스에 돌아와 탄광에서 일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몰두한다.

   전쟁이 끝나고 그들은 변압기 폭파범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두에 역의 전기공은 한 달 전에 결혼을 했고 그날도 전기공 차림으로 접근하는 두 사람을 변압기 구리를 훔치려는 이들로 알았다. 그는 그들이 가고 나면 변압기를 점검하려 했다. 그가 점검하려는 순간 변압기는 폭발했고 그는 큰 부상을 입고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의 부인은 독일군이 변압기 폭파범 검거에 혈안이 되어있고 인질 네 명이 붙잡혀 범인이 자수하지 않으면 총살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남편의 죽음으로 뜻있는 일을 하고 또 독일군들의 뜻대로 일이 되어가는 것을 막으려 그 부인은 남편이 범인이라고 신고를 했다. 찾아온 독일군 앞에서 남편은 자신이 한 것임을 인정했고 일하던 곳에서 일으킨 사건으로 인식한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사고를 일으켜 자신을 죽게 한 이들을 살리려 자신이 죽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새 신랑은 끌려가 기둥에 묶이고 총에 맞자, 감겨 있던 붕대가 풀리고 화상 입은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고통스런 육체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은 화창한 어느 일요일 그 부인을 찾아가 서로 고마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여인은 삼촌의 아내가 되었다. 그들은 자녀를 두지 않고 행복하게 산다. 삼촌이 내게 이 모든 것을 말해주던 그날 본 영화는 베르나르 비키의 영화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명이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얻은 것임을 알므로, 감시병을 기억하고 전쟁과 독일군이 한 일들이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음을 알리고 자신들을 절망의 늪에서 건진 웃음의 위력을 되새기며 필생의 일로 알고 어릿광대짓을 했던 것이다.

 

   모리스 파퐁의 재판법정에 나는 아버지가 입던 어릿광대의 복장으로 나타나지만 입장을 거절당한다. 다음날부터 어릿광대는 삐에로 분장을 벗고 매일 법정에 나와 재판을 지켜본다. 모리스 파퐁에게 판결이 내려지자 어릿광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의 근대사에 관한 소설들을 몇 권 읽으면서 그 시대에 톱니처럼 돌아가는 거대한 체제속의 한 개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며 친일파들을 조금은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와 양심은 어떤 처지에서도 지켜야 한다.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한 채 현대사가 전개되는 민족정기가 흐려진 우리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처절한 정원에 방치한 채, 어릿광대짓도 하지 못하고 긴 세월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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