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고등어 뼈에 대한 상상

변두리1 2016. 4. 30. 21:38

고등어 뼈에 대한 상상

 

 

   고등어 등뼈가 식탁 위 접시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날렵한 몸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겠지만 이제는 할 일이 없는 쓰레기가 되어 마지막 처리를 기다린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자유를 누리던 그대의 명석한 머리는 어디에 두고 처참한 몰골로 푸른 바다 아닌, 희고 좁은 접시 위에 조용히 누워있는가.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 내 집 식탁 위 접시에서 뼈를 드러내고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한 때는 저 뼈가 커가고 굵어지는 것이 힘이 상징이요 활동범위를 말해주는 것이었을 게다. 온몸을 지탱하는 근본 뼈대로 주위의 평가기준이기도 했으리라. 저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먹이를 먹었을까. 그 뼈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삶의 목표였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뼈가 자라고 몸의 여러 기관과 기능들이 향상되면서 미래를 향한 꿈에 부풀고 솟구치는 힘을 감당하기 어려워 무턱대고 푸르고 거친 바다를 헤엄쳐 다니기도 했을 게다.

   그러던 어느 날 겪었을 시련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었을 것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뜻밖에 부딪혔을 위기의 순간들. 세상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온전히 안전하거나 주인공이 아니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그에게도 위기와 고통과 호불호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생각하지 못했던 운명의 날을 맞았으리라. 물살에 몸을 맡기고 여유를 즐기던 한 때, 물이 줄어들고 움직임이 힘겨워지며 많은 동료들과 함께 물 밖으로 끌려나오는 아찔함을 느꼈으리라. 모두가 처음 겪는 혼란 속에, 바다가 아닌 선박 속 좁아진 곳에서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흘러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미 자유로운 바다 속이 아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부딪히고 불편함을 느꼈으리라. 알 수 없는 곳에서 멈추고, 또 다른 곳으로 실려 가는 피곤한 여정,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순간, 어느 곳에선가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바다 속을 헤엄친 거리보다 바다 밖에서 이동한 거리가 더 멀 수도 있다. 죽어서 타인에 의해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어 의식 없는 여행이 계속되고, 그 끝에 몇 푼의 돈과 맞바꾸어져 내 아내의 손에 쥐어졌을 것이다. 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추측할 수 있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대가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 지를, 아마도 생선가게 아줌마는 별생각 없이 무겁고 날카로운 칼로 내리쳐, 그대의 중요했던 머리를 몸으로부터 분리했을 것이다. 아내는 그러려니 하고 그대를 집으로 가져와 땅에서 거둔 것들과 섞어 불로 부드럽게 하여 가족을 위한 식탁에 올려놓았을 게다.

 

   내 가족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대의 살을 뜯고 찢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대며 그 식사를 즐겼을 것이다. 그대로 인해 삶을 위한 에너지를 얻으면서 그대 생각이나 배려가 조금도 없었을 것이 안타깝다. 가족들이 식탁을 떠날 때 접시위에 남겨진 그대의 척추 뼈, 지난날 바다의 소리와 흔적을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거칠지만 자유로웠던 그 바닷물 속, 세차고 발랄했던 모습을 상상한다. 생명과 자유를 빼앗기고 의지마저 잃은 채, 앙상한 모습으로 접시위에 놓인 그대여, 아마 뼈라도 다시 푸른 바다로 돌아가고 싶으리라. 한 조각만이라도 바다로 보내달라고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리라. 허나 이미 죽은 몸. 어느 것 하나 이 세상에서 ( - 바다나 뭍이나 - ) 쉽게 원하는 대로 되어지는 일 있던가. 하필이면 바다가 없는 이곳이어서 근원으로 돌아가는 섭리마저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자랑스럽던 그대의 등뼈. 때를 잘못 만나 버림받은 쓰레기신세를 면치 못하네. 더 나은 사용처가 있을지 모르나, 언제까지 놓아둘 수 없으니 선택하게나. 쓰레기처리를 원하는가, 땅속에 묻혀 미생물들의 밥이 되었다가 꽃으로 다시 피겠는가. 내가 또 실수를 했군. 그대는 오래전에 스스로 선택할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잊었네. 내 그대의 처지가 되어 무엇을 원할지 헤아려 보니 그래도 쓰레기 취급을 당하기보다 박테리아들의 만찬이 되었다가 풀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원함을 알았네.

   그리하세. 소중했던 그대의 척추 뼈를, 푸른 바다의 추억과 함께 꽃밭에 묻겠네. 한 열흘 세월이 지나면 바다가 아닌 뭍에서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봄기운을 느끼며 꽃잎으로 다시 피어날 걸세. 답답해도 조금만 참게나. 겪어보지 못한 어둡고 후덥지근한 땅속 삶을 견뎌야 하네. 잠깐일세. 다 자네를 위한 일이요, 영광을 위한 고통이니 참아내게. 얼마 지나지 않아 햇볕 따스한 꽃밭에서 찬란하고 황홀한 모습으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그럼 잠깐 동안 헤어졌다 다시 반가이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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