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변두리1 2014. 6. 25. 08:45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장영희는 누구인가.

 

  한국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번역가로서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실천하였다.

 

  1952년 9월 14일 서울에서 영문학자 장왕록(張旺祿)의 딸로 태어났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으나 역경을 딛고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하여 1985년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번역가와 수필가로도 활동하였다. 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추암을 이겨낸 뒤 다시 강단에 섰다가 2008년 간암으로 전이되어 투병하였으나 2009년 5월 9일 사망하였다.

 

  목발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장애와 세 차례의 암투병 속에서도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수필과 일간지의 칼럼 등을 통하여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였다. 수필집으로 《내 생애 단 한번》(2000),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축복》(2006),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 등을 펴냈고, 《살아 있는 갈대》《슬픈 카페의 노래》《이름 없는 너에게》 등을 번역하였으며,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한국호손학회·한국헨리제임스학회·한국마크트웨인학회 편집이사, 신영어영문학회·한국비교문학회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1981년 한국번역문학상, 2002년 올해의 문장상을 받았다. (두산백과)

 

   2.그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그녀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2000년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것들로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면서 한 경험과 투병 후 일상생활로 복귀해서 그리고 연구 년에 미국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머물면서 쓴 글들로 다시 투병 중에 책을 내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받아들임, 타인을 향한 인정과 배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와 삶에의 희망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를 통하여 들려주는 메시지들이 그녀이기 때문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 온다.

  이 책의 제목을 지으면서 겪은 저자의 고민으로 책을 소개해 보려한다. 출판사가 제시한 네 개에, 자유롭지 못한 감호소독자의 제안까지 다섯 개의 제목이 나타난다.

  첫째로 ‘새벽 창가에서’는 연재했던 칼럼의 제목인데 우아하고 고상하며 저자가 온 세상에 전파하고 싶은 이미지이긴 하지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둘째 ‘살아온 날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은 아주 멋진 제목이긴 한데 저자는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기가 싫어서,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고 소소한 삶이 좋아서 제목으로 원치 않는다고 했다.

  셋째 ‘영희야, 뼈만 추리면 산단다.’는 투박한 이미지로 희망을 말하는 어머니의 따듯한 목소리가 배어 있긴 하지만 너무 튀고 엽기적이며 삽화를 그리는 화가의 화풍과 어울리지 않아서 택할 수 없었다고 한다.

  넷째 ‘나는 내게 동의한다.’는 너무 무뚝뚝하고 선언적이며 자신의 글이 전반적으로 투박하고 솔직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너무 수필답지 못하고 내가 내게 동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남들은 이기적이고 잘난 척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어느 글에 썼더니 감호소의 한 독자가 ‘나, 비가 되고 싶다’를 제안하면서 그 이유로 자유를 누리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비효과처럼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봄비처럼 온 세상을 촉촉이 적신다는 의미라고 했는데 참으로 사려 깊고 좋긴 하지만 자신이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그렇게 위대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아서 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큰데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이 기적이어서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고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해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책의 제목을 정했다고 했다.

 

   3.책을 읽고서

 

  저자는 2001년 12월에 쓴 글 ‘열흘간의 고독’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밝힌다. 다니던 미국의 대학병원에서 보험료가 아까워 암 검진을 받아보았는데 검사가 심각하고 초음파검사까지 받아 ‘암이 의심스럽다’는 소견을 받고 조직검사결과를 통보받고서야 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고 했지만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질병에, 솔직히 털어 놓을 수 없는 고통과 갈등. 고백과 함께 몰려올 일과성(一過性)의 관심들과 뭇사람의 화제에 오르내리게 될 끔찍함, 한없이 가볍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숱한 동정과 연민. 그러한 상황에서 누구도 진실을 고백하기 어려우리라. 또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피해를 볼 이들도 없다.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항상 늦는 것,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 무위(無爲)가 재능이라는 것,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을 새처럼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나는 나라고 선언하는 것, 목발과 함께 해야 하는 장애가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겸허히 수용하고, 잘 속는 어리숙함을 인정하는 것들이 고통과 충격을 받아들이는 완충공간이 넓다는 것과 삶에 대한 여유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넉넉하다.

 

  루시 할머니가 보여주는 저자에의 관심, 장애인 아버지의 볼링점수를 평하는 진호의 말, ‘못했지만 잘했어요.’, 저자의 어린 날의 ‘괜찮아’, 극단적인 행동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어머니가 옛적 봉수를 회상하며 하는 말 ‘그때 잡지 말걸 그랬지’. 바다로 다시 던져 넣는 한 마리의 불가사리와 희망을 찾는 장애인 한 사람에게로 향하는 배려와 인정들이 눈물겹다.

 

  다 쓴 논문이 없어져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는 말,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에서 자라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무릎 꿇은 나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가능성 아닌가.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저자의 글에서 싱싱한 희망을 읽는다.

 

   4.책속의 몇 구절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41쪽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109쪽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115-6쪽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연함과 용기, 당당함과 인내의 힘이자 바로 희망의 힘이다. -141-2쪽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나는 이 모든 질문에 선뜻 대답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하는가? 그것조차 모르겠다. -106쪽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쪽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좋은 운명, 나쁜 운명이 모조리 다 깨어나 마구 뒤섞인 혼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흑백을 가리듯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을 가리기는 참 힘들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지는가 하면 나쁜 일은 다시 좋은 일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운명행진곡속에 나는 그래도 참 용감하고 의연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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