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따라가는 즐거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극심한 경쟁사회가 되었을까. 외부와의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야 항상 치열했을 테고 내부적으로도 더 나은 것을 차지하기 위한 소소한 다툼은 늘 있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혈연중심의 농경문화 속에서 경쟁은 자제되고 협동이 권장되었으리라. 구성원들이 거의 변하지 않는 채로 매일처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농경사회이고 특성상 수시로 공동 작업이 필요하므로 지나친 경쟁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공동 작업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서서히 나타났으리라. 근대사회에서 산업화는 도시화를 수반하므로 촌락 중심에서 도시 중심의 생활로 옮겨가고 문화의 주도권이 급격히 도시로 넘어 갔다. 교통 통신의 발달과 아파트 문화로 상징되는 도시문화는 연대에서 개별화로, 협동에서 경쟁으로 나아가고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 혹은 내 가정 중심의 편리함을 맛보게 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소외를 불러 왔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집단보다는 개인을 상대하기가 수월하므로 특정집단에 의한 의도적인 개인화도 일어났음직하다.
인간의 존재와 함께 늘 있어 왔을 개인의 능력차는 경쟁의 또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었으리라. 나이가 능력으로 인식되다가 어느 순간 노인들이 체력과 지력에서 젊은이들에게 밀려나게 된다. 그것이 자연계와 역사의 순리요 법칙임에 누가 거스를 수 있나. 그 과정에서 마음도 상하고 번민도 많지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분야나 취미생활에서 누구나 스스로의 위치가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은 항상 위협적이다. 돌이켜 보면 예전 어느 순간에 나도 선배들에게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세월과 함께 적당한 위치가 주어지고 정리가 된다. 예전에는 진입하는 입장이어서 밀려나는 처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로 밀려나는 형편이니 예전에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상하고 오기가 솟는다. 아직은 밀려날 수 없다는 저항감도 있다. 영어와 한자와 탁구 등을 오랜 세월 해 왔다. 그러나 그 영역에 재능이 있는 이들이 등장하면 예상보다 빠른 시일에 나를 추월하여 앞서 가는 그들의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된다. 그럴 때는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기가 막힌다. 내가 달려왔던 속도보다 비교도 안 되는 광속(光速)으로 그들은 치고 나간다. 너희가 치고 나가야 세상이 발전하지. 그래, 내가 따라 잡을 수 없는 곳까지 멀리멀리 가거라. 그들이 저만큼 앞서 가면 편해지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내 앞에 가까이 있을 때가 문제지 아주 멀리 가버리면 포기하고 인정하게 된다.
뒤따라가는 유익함도 있다. 앞서 가는 이들은 시행착오의 가능성도 있고 상의할 상대도 없다. 모두가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 잡으려 한다. 조금만 뒤쳐져 가도 관심권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워진다. 앞선 이가 있으면 적어도 그 지점까지는 시행착오의 걱정 없이 갈 수 있다. 따라 잡을 존재가 눈앞에 있으니 도전할 마음이 생기고 쫓기는 것보다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에 전념할 수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방향도 분명하지 않은 길을 혼자 고민하며 가는 것 보다 한 발 늦더라도 여유 있게 휘파람불며 따라가다 보면 힘도 비축되고 여유도 생기리라. 그 힘으로 기회가 되면 간격을 좁힐 수 있고 때로는 추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굳이 앞서 갈 이유는 없다.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 또한 뒤 따라 가면서 앞선 이를 격려할 수 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외치는 삭막한 경쟁시대에 실력을 가지고도 한걸음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다. 힘이 부쳐서 상대를 앞세우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조바심치며 안달해하지 않는다면 여러 면에서 힘이 덜 드는, 뒤따라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고 함께 사는 일이며 명예를 주고 실리를 얻는 일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다만 조금 일찍 비켜 주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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