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을 자주 생각한다. 말년의 아버지 나이 가까이를 살아가고 있다. 대단한 듯 했던 가문도 별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최근에야 얻었다. 부모님이 겪었을 불안과 좌절이 어렴풋이 느껴져 온다. 아무리 모두가 어려운 시대라 하지만 전문적 지식이나 비빌 언덕 하나 없었던 그분들, 아이들은 커가고 당장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한 스물다섯 해의 세월들. 구슬을 만들고 자리를 짜던 모습, 동네 분들과 논일을 하고 시장을 돌며 닭과 개 등을 사서 되팔던 기억들, 경로당에서 친구 분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시다가 기분이 좋으면 술 한 잔 하고 집에 오시곤 했다.
이제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 모습이 겹쳐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전문성이 있다고 해도 세상과 적당한 거리가 필수적인데다 다른 이들과 가치관이 대립되는 면이 많다. 같은 환경에 다른 해석이라고나 할 수 있으려나. 부모님이 원하지 않으신 고통과 불편이요 그것을 벗어나려고 많은 애를 쓰셨다면 나는 스스로 택한 것이요 벗어나려 노력을 하기보다 의미를 부여하고 그냥 불편하게 산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하겠다. 그분들이 자녀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마음 아파하셨다면 나는 아이들이 꽤 나이가 들어 그 면에서는 한 발자국 벗어나 있다. 오늘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단언하건대, 초등학교 앞에서 작은 문구점을 하거나 주민이 많지 않은 동네에서 작은 헌책방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성격이나 기질로 보아 마음은 편하고 경제적으로는 여유 없는 삶을 살 것이다. 난 늘 바닥의식을 가지고 산다.
바닥은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 단단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다. 다른 이들의 눈길을 끌지 못해도 최후의 보루요 버팀목이다. 풀꽃과 벌레들의 땅이요 물이 흐르고 본체에서 떨어진 존재들이 뒹구는 곳이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듯이 꺼지지 않는 곳이 바닥이었다. 어쩌면 바닥은 하늘과 통하는지도 모른다. 광막(廣漠)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듯하지 않은가.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했다. 그때의 사람들이 힘 있고 잘살고 많이 배운 이들은 아닐 것이다. 내가 느끼는 바닥을 사는 이들의 의식은 높은 곳을 향한 경계와 의심 그리고 동류를 향한 강한 연민과 동료의식이 아닌가 싶다.
땅 아래의 공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관념은 성스러움과 두려움이었다. 그 세계는 죽은 이들의 공간이요 현실 너머의 영역이었다. 이승을 떠나면 그곳으로 모셨고, 땅 속의 존재들은 우리에게 힘[地力]을 공급하고 생명의 씨앗들을 받아 계절이 바뀌면 다시 풍성하게 돌려주어 이 땅의 생명들로 살게 해 주었다. 먹거리의 저장도 생명을 심는 것을 흉내 내 그들의 도움으로 싱싱하게 지켜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서구의 문명을 따라가느라 아무런 생각 없이 바닥을 파 지하를 소유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고요하고 성스러웠던 영들의 공간 지하가 쇠로된 거대한 용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사고파는 시장으로 변하여 수많은 인파가 오고가는 소란한 번화가로 변하고 말았다. 안식처를 빼앗긴 그 세력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지키고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안전할까. 지상 일층 아래의 바닥 밑으로 지하 1, 2, 3,…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닥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바닥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웃들도 신기루에 홀리듯 바닥을 살면서도 바닥이 아닌 듯 착각하고 있다. 환각을 자아내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나 자신도 바닥에 있으면서 이층이나 삼층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바닥 아닌 바닥에서 벗어나 진짜 바닥에 발대고 앉아 풀꽃을 감상하며 벌레도 보고 물 흐르는 소리 들으며 내가 먼저 차분해져서 바닥의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누려보아야겠다.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바닥에는 높은 곳에서는 누릴 수 없는 그곳만의 풍요와 즐거움이 반드시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