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다. 끌어당겨 열어본다. 지금 일어났는데 차를 태워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이 말은 적어도 내게는 요청이라기보다 명령이다. 앞뒤 사정을 알고 다른 대책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자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아버지는 이 땅에 별로 없으리라. 십 분 후에 가자고 한다.
그제야 시간을 본다. 6시 11분. 몇 시면 어떤가. 자리에 한 시간 더 누워서 빈둥거린들 무슨 유익이 있나. 작은 노력으로 서로 섬길 수 있으면 그것이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지.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일어나서 오늘 한 시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어느 동화책에는 아버지가 신문만 보는 존재로 그려져 있던데, 낡은 차라도 태워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런 때는 세면(洗面)도 필수사항은 아니다. 누가 보는 이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아니다. 한 바퀴 돌아오는데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의견이 분명하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나도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고 주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은 서툴다. 그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무능한 나에게 있다.
구차한 자기변명이지만 어릴 적 우리 집은 남자들의 생활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그러했고 작은 형도 그랬다. 큰 형만 예외였는데 맏이 의식이 작용했음직하고 숱한 고생을 했다. 나도 마음으로는 온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싶은데 몸도 약하고, 전문적인 기술도 없다. 그러면 여기저기 눈치라도 잘 살펴서 남들 심기라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으로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려서는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살아보니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어른들의 말이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것이 노년의 경험과 지혜를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성숙한 이들의 지혜와 충고를 무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데 그것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고 사서 고생하는 것이며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소망을 품고 그들을 향해 무한 책임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 해주려 한다. 그들에게 거는 큰 기대가 때로는 저들을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 본능에 가까운 서로의 부담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까. 지나친 집착을 버리면 한결 홀가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관계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은 시기가 사춘기(思春期)다. 자녀도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지만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인정하고 풀어주어야 부모도 자녀로부터 놓여나고 서로가 행복하다. 자녀를 심리적으로 홀로 세울 때 부모도 자유를 얻는다.
천륜(天倫)을 거스르는 것은 잘못이지만 자연의 때를 따르지 않는 것도 바르지 않다. 어차피 자녀의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자녀 때문에 부모가 과도한 어려움을 감당하거나 부모로 인해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하다.
첫 번째 출생으로 탯줄을 끊고 신체적 독립을 누리듯이, 사춘기에 두 번째 심리적 홀로서기를 감행해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자녀들을 놓아주라고 말한다. 목회자로서 대화하는 이들에게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한다. 부모들의 눈에는 자녀들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성숙한 어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당한 시기가 지나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내지 못해도 자녀들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나가야 조금이라도 빨리 어른다운 삶을 산다.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닭, 소, 토끼, 새들이 그렇고 끈에 묶여있는 강아지들과 염소들이 그러하다. 넓은 산과 들과 벌판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원하는 것들을 먹고 뛰노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가축들만 아니라 그들과는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이 땅의 청소년들도 자유를 누리며 때로는 가정과 공부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친구와 인생과 벗하며 즐겨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른 아침, 덤으로 얻은 시간에, 좁은 땅 많은 인구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이 땅의,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