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추석 통과하기

변두리1 2014. 8. 30. 22:50

추석 통과하기

 

  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 수원에서 누나네 가족이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기다렸다. 출발이 늦어진다는 전화에 외곽에서 목회하면서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챙기시는 분들을 방문했다. 연세가 들어 목회를 시작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자족하며 사시는 것 같아 보기에 좋다. 돌아오니 누나네가 와 있다. 서른여섯에 혼자되어 두 아들을 키우고 시모와 함께 긴 세월을 신앙 하나로 버티며 살아왔다. 그 신앙도 내가 보기에도 외골수인데다 그래도 전문가라는 나조차 가르치려 하니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으리라. 최근에는 몹쓸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살도 머리털도 많이 빠졌다. 다행히 완치되었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는데 이제는 두 아들 결혼이 걱정이다.

 

  추석날 아침인데 다들 늦게 잠들었으니 일찍 깰 리가 없다. 이것저것 마음만 분주하고 시간은 흘러도 서둘러 준비하는 것 같지 않다. 얘들이 어리면 큰 소리라도 칠 텐데 이제는 내가 눈치 볼 처지가 되었다. 결국 독촉전화를 받고야 출발을 했다. 형님 집에서 어정쩡한 기도를 드리고 늦은 식사를 했다. 형님네는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동생이 목회자니 같이 기도를 한다. 형님도 형님 가정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동생들에 대해 아버지 역할을 하려는 형과, 균형을 잡으려는 형수 사이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드러내 얘기는 못했지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고 재물을 향한 갈증도 늘 있지만, 도울 길이 없어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민망하다.

  조금 늦게 부모님 묘소에 성묘를 갔다. 평소에 이십분 걸리는 길이 차선을 메우고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 마흔다섯에 날 낳으셨다. 어머니와는 여섯 살 차이셨다. 그러니 부모님 젊은 시절 기억은 나에게 없다. 뚜렷한 직업도 전문지식도 재산도 없었던 분들이, 겪으셨을 험한 세월은 내 어릴 적 생각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분들은 좋은 시절 한번 살지 못하고 힘들고 험난한 세월 고생만 하시다 생을 마치셨다. 부모님들 세대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호강스런 세대인가. 생활의 수고가 십분의 일 이상으로 줄어 든 것만 같다. 그분들 생각을 하면 서럽고 슬프고 우리가 사소한 일들을 불평했던 것들이 죄스럽기만 하다.

  한동안 찾아뵙지 못한 이모님을 뵈러 원주엘 갔다. 이것도 일종의 역귀성인지 거의 도로에 정체가 없다. 적어도 네 시간은 예상했는데 두 시간 조금 넘어 도착을 했다. 이제 일흔아홉. 많이 약해지셨다. 평생을 신앙으로 살아 오셨다. 한 때는 많은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교회의 큰 기둥이셨다. 마음대로 안 되는 자녀문제로 눈물의 기도도 많이 하셨고, 하늘에 쌓인 것이 엄청날 텐데 노후의 삶이 힘겨우시다. 사람들과 하나님께 약간은 서운 할만 도한데 늘 자신의 부족을 탓하신다. 찾아오는 이모님의 자녀들과는 시간이 없어 승강기 앞에서 교대하듯, 안부 묻고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해는 지고 반가운 보름달 떠올라 원주에서 청주까지 동행해 준다. 이렇게 오래 달을 실컷 본 것이 얼마만인가. 그 긴 여정을 함께 해줌이 정말 고맙다. 나는 집에 도착해 피곤을 핑계로 달과 헤어져 잠이 들었다.

 

  추석 이튿날은 아내가 처가엘 가자고 한다. 멀지도 않은 수곡동. 가보니 모두 다녀가고 장모님 혼자 계신다. 올해로 여든 두 살이신데 지금도 식당 일하시고 월급 받으신다고 자랑이시다. 그 일터도 막내아들 가게니 크게 눈치 볼 것도 없다. 일 년에 몇 번씩 국내외 여행 다니셔도 다른 이들에게 체력이 크게 밀리시지 않는 눈치다. 젊어서는 막노동을 많이 하셔서 청주의 웬만한 건물은 본인이 다 등짐 져 올렸다 하신다. 평생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하시며, 날마다 성경을 한 시간 넘게 습관들여 읽으신다. 떠나려하니 잡으셔서 아내를 두고 나만 집에 와, 일을 하다 연락하면 다시 가기로 했다. 모녀가 있는 것이 편하지, 내가 있으면 적잖이 신경이 쓰이실 것 같다. 가까이 있어도 함께 오래 대화하지 못했었는데 너 댓 시간 얘기하니 무척 좋았다고 아내는 말했다. 긴 추석 일정이 피곤하다. 사람들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좀 더 건강한 나도 만만치 않다 했더니 아내는 피로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대로 두통약 두 알 먹고서 아내는 힘들게 추석을 넘겨 보냈다.

 

  가정마다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걱정거리 한두 가지 없는 집을 찾기 어렵다. 그것이 사는 것이고 그래야 사람들이 겸손해 지며 믿음의 대상을 찾기도 하는가보다. 우리사회의 현실이 그만큼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때 추석이 있어서 서로가 추스르고 격려하니 새 힘을 얻는다. 가벼운 인사만을 나누는 사이는 만나도 서로에게 힘이 되기 어렵다. 좋은 얘기 자랑은 하지만, 힘든 얘기 흉 될 것은 묻지도 않고 털어 놓을 수도 없다. 가까운 친인척 흉허물 없는 이들이 만나, 격식 없이 얘기하고 털어 놓기만 해도 어려움이 반 이상은 해결이 된다. 명절은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형편을 돌아보는 정기적인 점검의 시기다. 안보면 궁금하고 걱정되어 서로 만나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통과의례의 기간이다. 올 추석도 무사히 통과했다.

                                                                                                                                                          (20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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