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잊었단 말인가 나를

변두리1 2014. 7. 17. 16:55

잊었단 말인가 나를

 

  힘이 든다. 어제 무리했나 보다.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했더니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없다. 집에 돌아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눈에 띄는 대로 먹고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한 시간여 밖에 자지 않았는데 멍하니 맑은 정신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잊었단 말인가 나를” 라는 구절이 어설픈 멜로디와 함께 떠오른다. 어딘가 친숙한 리듬 같기는 한데 정확한 정체를 모르겠다. 찬송가 같지는 않고 복음성가인가 아니면 가요였든가.

 

  혼미한 마음을 이끌고 검색을 해본다. 남궁옥분의 “재회”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갑자기 생각이 났을까. 가사와 악보를 찾아본다. 찾은 김에 인쇄하고 싶어서 프린터를 누른다. 친숙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난다. 마법사를 설치하라 사진을 인쇄 하겠는가, 잘 모르니 그냥 이것저것 누르고 인쇄를 클릭하니 뭔가가 끝도 없이 인쇄되어 나온다. 당황스럽다. 악보 한 장 인쇄하려 한 것이 악보는 나오지 않고 모르는 것이 지지직하면서 계속 쏟아져 나온다. 정지를 시켜야겠는데 방법을 모른다.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도 여전히 줄줄이 인쇄되어 나온다. 어쩔 수 없이 종료를 한다.

  잠시 후 다시 켜니 또 인쇄를 해 댄다. 웬만한 것은 실수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인쇄는 아니다. 용지와 잉크가 소모되고 당황스럽다. 뭔가를 뽑고 싶어 인쇄를 누르면 먼저 것이 또 나온다. 난감하다. 할 수 없이 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프린터를 더블클릭해서 모두 취소를 하란다. 알려준 대로 해도 만만하지가 않다. 계속 같은 메시지가 뜨기도 하고 “삭제 중”이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컴퓨터가 원망스럽다.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컴퓨터 가게에 가서 프린터 매뉴얼을 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매뉴얼이 없단다. 해당 제품사이트에 가보면 탑재되어 있단다. 나만 점점 더 시대에 뒤떨어지고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과제물 작성법에 관한 특강을 세 시간여 들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난 내 자신의 결론은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컴퓨터로 하면 십 분도 걸리지 않을 것을 그렇지 않으면 서너 시간 걸려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메일로 온 것을 저장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예닐곱 시간 작업한 것을 다 날려 버렸다. 마음이 허탈하고 딱히 누구에게 라고 할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올랐다. 이 시대적 괴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 녀석을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너무 힘들 것 같다. 이 녀석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필수적 기술처럼 되어있는 현실을 나 혼자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웬만한 것은 메일로 주고받고 필요한 자료를 유에스비 에 담아 준다고 하니 나 혼자만 딴 세상사람 같다.

  시대적 문화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컴퓨터를 무시하고 살았더니 어느새 격리된 세상에서 혼자만 사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인구수 보다 더 많이 보급되었다고 하는 휴대전화 그 중에도 빠르게 진화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로인한 소외감도 적지 않다. 카톡을 한다는데 나는 스마트폰이 아니니 자연히 제외되고 자기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는다. 유용한 어플이 원체 많으니 바꾸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있다고 해서 내 생활이 엄청나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연락하지 않던 이들과 뻔질나게 소식을 주고받을 것 같지도 않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대다수가 사용하니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힘써 노력하면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남녀노소가 다 하는데…. 그들 보다 나을지는 모르지만 남들 하는 만큼은 나도 하겠지. 컴퓨터 사용이 생존의 기술이 되었으니, 막다른 골목의 절박함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 벌어진 격차를 좁혀 가야지. 어쩌면 현실세계보다 더 넓은 세상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의 역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새로운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시대적 흐름을 주도해 간다는 것이다. “잊었단 말인가 나를”이란 속삭임은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서 역사가 나에게 보내는 절박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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