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마음으로
당당한 이들이 너무 많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빛이 없고 주눅 들지 않은 모습으로 큰 소리 친다. 약해보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국민들은 서글픈데 당사자들은 꿋꿋하다. 뻔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보는 이들이 민망하고 황당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일부러 강해보이고자 하는가.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인가?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을 생각하게 된다. 내게 그런 경험이 있거나 가까이에 대표선수가 없어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방송이나 신문매체에 소개된 것들을 보면 대충은 짐작이 간다. 그들은 대표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이들이다.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선놀음 같은 꽃길이라기보다 견뎌내기 어려운 체력과 정신력의 극한까지 가서 온몸의 땀을 쏟아내는 가시밭길이다. 상대하기 어려운 호적수들과 여러 차례 평가전을 치른다. 그들이 맞서야 할 막강한 상대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대단한 이들이 맞이하는 앞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세 다윗 이 그러했고 예수님도 다르지 않았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했다. 난지 육 개월 만에 공주에 의해 궁으로 들어가 타고난 재능에 당시 최선진국이었던 나라에서 왕의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니 그러했을 것이다. ‘그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스스로인지 위로부터의 깨달음인지 자신의 할 일을 자각하자, 곧바로 미디안 사막으로 쫓겨 가게 된다. 그곳에서 양과 모래바람과 보내야 했던 40년이 지난 후에야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그를 지도자로 다시 부른다. 마흔과 여든, 어떤 일이든 해낼 것 같은 시절과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 나이, 산산이 깨뜨려서 깨어진 마음으로 앞으로 주어질 일들을 하라는 것이다.
다윗도 그러했다.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사무엘조차도 몰랐던 기름부음을 받고 그는 다시 늘 하던 양치기로 돌아갔고, 얼마 후 온 이스라엘 군병들이 두려워하는 골리앗과 맞선다. 그 후로는 창을 던져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시중을 들고 얼마못가 도망자의 신세로 자연 동굴을 전전한다.
장자의 목계지덕(木鷄之德)을 보는 느낌 아닌가? 모두를 압도할 것 같은 투지만만하고 혈기왕성한 것을 준비되었다 하지 않고 자만심과 우월감 공격성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다고 느낄 때가 위험하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신하면 남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동정 연민 배려 이해가 어려운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한다. 자신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겪었으면서 그러한 이들을 야박하게 대할 때 하는 비난어린 표현이다. 그것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앞에 놓인 높은 장벽과 그로인한 좌절감이다. 실패와 병고와 고난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겪으며 무력감과 겸손을 익힌다. 자신이 초인이 아님을 알게 되며 주변에 아픔을 겪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력과 자신이 있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성공의 과정을 밟아온 지도자도 필요하겠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른 이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그것이 또한 힘겹고 서글픈 시절을 낮아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희망을 갖는 근거가 아닐까 싶다.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삶을 살아내고 배고픔과 목마름, 피곤과 억울함을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그 아픔과 고통을 체험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는 구속의 주가 되셨다. 공생애에 나서기 전에 유대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신 후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이해는 상대의 처지 그 아래 서는 것이다. 그 감정과 마음이 이해되어야 동정(同情)이 가고 연민과 사랑도 생겨나는 것일 게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무뎌지면 가끔 다시 숫돌에 마음 날을 갈기 원하신다. 날이 갈릴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프다.
자신이 크다 느끼고 다른 이들이 작아 보이는가? 위험하다. 좌절과 고통의 골짜기를 만나 날마다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은가?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깨어짐의 과정에 넣으셨다고 생각하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능력과 자신감보다 더 필요한 것이 깨어진 마음이다. 그 처지에 들어서도 깨어진 것을 모르고 위선과 허세로 일관하는 이들과 이해와 연민 없이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공격성으로 무장하여 힘자랑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겸손과 배려를 갖추도록 이끄는 그 지름길이 깨어진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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