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하필이면…

변두리1 2022. 11. 1. 18:27

하필이면

 

시절 역병으로 몇 년 동안 해외를 나가지 못한 막내가 조심스럽게 동남아를 다녀오자고 했다. 그것도 기간이 꽤 길어 걱정이었는데 선교하는 일이 주여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게 망설여졌다. 아내가 분명히 가지 않겠다고 해서 설득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가지 않는 것으로 하고 맏이와 막내가 다녀오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회사에서 맡은 일 중에 급히 처리할 것이 있다고 하고 외국의 연락을 기다리는데 출국 날까지 소식이 없어 심란하더니 출발시점에선 가방 바퀴 하나가 빠졌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 같으면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고 할 테지만 우리가정은 그런 것과는 일정 거리가 있다.

예정했던 여행의 후반부, 선교를 다 마치고나서 감기기운이 돌고 목이 아프다고 했다. 증상을 들으니 코로나가 걱정되었다. 본인들도 함께 음식을 먹고 대화를 많이 한 선교사 한 분이 확진되었다며 의식하고 있었다. 당황스런 밤을 지내고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맏이는 확진, 막내는 음성이란다. 갑자기 예상 밖의 당황스런 일이 돌출한 게다. 계획했던 일정을 취소한 것은 물론이고 열흘간 자가 격리할 일이 캄캄했을 게다.

맏이가 내게 상의를 했다. 막내는 음성이니 문제가 없고 자신도 편법이라도 써서 귀국하고 싶단다. 그렇겠지, 낯선 곳에서 아픈 몸으로 열흘을 지내는 것이 어디 쉬우랴. 그렇지만 내 하는 일과 판단으로 법을 어기고 귀국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원칙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걱정이 되기는 밖에 나가있는 이들이나 집에 있는 이들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었다. 다음날에는 막내도 이상증세가 나타난다고 하더니 정밀검사에서 확진판정을 받았단다. 코로나19가 나라 안에서 이 년 반 넘게 유행하는 동안 위기도 있었지만 별 탈 없이 넘어가더니 왜 하필 열흘 남짓 해외여행에서 걸리는 것인가? 내 나라에서도 당황스러울 일을 낯선 곳에서 겪다니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해 보았다. 그 나라보다는 내 나라가 의료 면에서 선진국이고 우리 실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을 받았다. 본인들 마음도 내 나라가 편하고 가족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게다. 요즘도 해외에서 유입되는 확진자가 꾸준히 나오고 언젠가는 해외 동포들을 데려다 진천에선가 집단 치료를 했지 않은가? 현실법과 부딪치는 부분이 있으면 처벌을 감수한다면 귀국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타인과 접촉을 피하며 들어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다시 통화를 하며 내가 그 이야기를 했다. 여러 가지를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해보니 이러저러 하겠다고 설명하니 맏이는 당시의 흥분이 가시고 생각하니 일정의 주요부분이 선교였고 회사에도 연락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데 편법으로 입국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정당하지도 않다고 여겨 음성판정을 받고 귀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그래, 좀 더 고생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원칙대로 하는 게지’. 3자가 겪는 것을 객관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당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길게 평생의 관점으로 보면 열흘이 그렇게 긴 것도, 감당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대학진학에도 한 해를 늦추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열흘 동안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돌아보고 깨우치는 일들이 평생의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이후로 웬만큼 당황스런 일을 만날 때 이번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전화위복이요,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끼어드는 게 인생이고 그로인해 삶의 경로가 달라지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맞닥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통화를 마치고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삼십여 년을 더 살아 경험이나 다른 것들이 더 풍부한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무엇이었던가.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이었는가를 자문하면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 사람살이가 분명하지 않은 어설픈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전 인류로 확장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게다.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위험을 안은 채 걸어가고 있다. 인류가 그렇다면 그에 영향 받는 온갖 동식물과 환경의 경우야 말해 무엇 하랴. 처음 가는 길을 순간적 선택을 바탕으로 비틀거리며 가는 게 삶이리라. 그 길을 가며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줄 존재로 줄 끝에 서 있다는 내 자신의 일 처리를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책을 읽는다고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 모두 코로나에 한 번씩 감염이 되었다. 이제는 이 질병에 대해 안심인가하면 그렇지 못하다. 재감염사례가 늘고 있다니 언제까지 불편하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우리의 인생과 추억 속에 어떤 깊은 홈을 파고 길을 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보지만 알 수 없다.

한 가지 질병이 이렇게 오랫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창궐하고 괴롭힌 적이 있었던가? 21세기 최첨단을 살아가는 인류가 이토록 당황하며 철저히 무력하게 비행기가 없던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이 못할 게 없고 더 이상의 성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오만한 인간들에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던지는 네 자신을 알라는 강력한 종합 경고가 코로나19’ 인 것 같다. 아이들이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귀국해 눈앞에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밝은 곳에서  (0) 2022.11.15
태풍의 흔적  (0) 2022.11.09
풀과 나무, 이 땅의 성자들  (1) 2022.11.01
차라리 눈을 감네  (0) 2022.09.04
밤의 회복  (0) 20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