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기다리는 것인가(아브람)
아내에게 지난번에 내가 한 말이 스트레스가 되었나보다. 며칠 전에는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데 내 몸에서 낳을 아들이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셨으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아들을 얻으라는 것이라며 이집트에서 데려온 자신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주시려 할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일축했지만 아내의 성격으로 미루어 그냥 한번 해본 말은 아닐 것이다. 아내는 자기 확신이 강하고 외골수다. 나도 곰곰 생각해 보니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닌 차차선책(次次善策) 쯤은 될듯하다.
그 후로 아내는 이야기가 자녀문제로만 가면 하갈을 통한 해결책을 노래 부르듯 반복한다. 그 생각에 몰두하여 현재로서는 가장 실현가능성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제는 당신 나이가 몇인 줄 아느냐고 몰아세운다. 내 나이 여든 다섯이 적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 않느냐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과 조카 롯을 구해 낸 일을 잊었느냐고 해도 이 문제는 그것들과 다르단다. 주변을 둘러보란다. 당신 나이면 아이들 나이가 사오십이어서 손자 손녀들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나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더니 그게 벌써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았느냐고 한다. 누구는 신나서 그렇게 하자고 하는지 아느냐 자신은 더 힘들다고 했다. 이집트 출신 하갈에게도 귀띔을 해놓은 눈치다. 아내의 그러한 성격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떤 결심이 서면 나에게도 계속 압박을 가하고 그 일을 한 단계씩 차곡차곡 추진을 한다. 때로는 주도면밀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갈은 하갈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아내의 말에 나도 조금씩 지쳐가고 말로는 아내를 당할 수가 없다. 마음 한 편에는 그래도 이 방법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있고 믿음의 확신도 들지 않는다. 아내는 아예 날을 잡아 놓고 일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한 두 번은 넘겼지만 매 번 빠져 나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아예 내가 빠져 나갈 길을 원천봉쇄(源泉封鎖)하고 자기의 방법을 밀어붙일 기세였다. 더 이상의 하나님으로부터 말씀도 없어서 그 방법을 택하기로 하고 하갈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과정 자체는 단순하고 복잡하거나 힘들 것도 없었다. 하갈도 철저히 준비를 해 왔던지 몸과 마음이 어색하거나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없었고 나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갈은 임신을 했다. 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자신은 수 십 년이 되어도 임신이 안 되는데 하갈은 곧 바로 아이를 가지니 하나님도 허락을 하시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예전처럼 긴밀한 것 같지 않다. 답답하다. 아내도 요즘 들어 신경이 많이 예민해졌다. 하갈이 전과 다르다고 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전에는 항상 공손함과 어려워함이 보였는데 이제는 불손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볼 때마다 인사도 하고 살갑게 굴더니 이제는 인사도 대충하고 더러는 자신의 배를 가리키기도 하고 살짝 두드리기도 하면서 아내를 향해 이죽거리는 모습이나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하갈의 행동은 차이가 없는데 아내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자신도 눈치가 있고 종들 한둘을 한두 해 대해 보느냐고 했다. 아내는 하갈이 종들 사이에서도 행동이 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들과의 대화나 행실에 있어서 자신이 예전의 하갈이 아님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다른 종들로부터의 불만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했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갈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아내는 하갈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나에게 말했다. 내 아이를 가졌으니 아내로서는 함부로 다루기가 조심스럽기도 하고 많이 힘들기도 한가보다. 당신의 종이니 내 허락을 구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더니 다른 종들보다 한층 심하게 다루는 듯하다. 한동안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다른 이들의 눈 밖에 나게 스스로 행동을 했으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 심하게 대했을 것이다. 하갈은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갔다가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왔으니 가나안에는 연고가 없어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었을 것이다. 안됐기는 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여주인 사래를 무시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갈이 내 아이를 가지므로 아내를 대하는 그녀의 잘못된 태도로 많은 문제들이 생겨서 우리가정에 회오리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일을 바르게 처리한 것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내와 나 사이에 아들을 주실 것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바른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어느 것이 잘한 것인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하나님의 방법이 밝혀질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언제까지일지를 모르고 기다린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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