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걱정이었어요
‘춘섬 여사’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많은 이들 앞에서 얘기해 본 적이 없어 많이 떨리네요. 잘 부탁합니다.
길동의 신분이 서자(庶子)라 어머니의 설움이 많으셨지요?
하찮은 제가 뭘 알겠는가만 길동이 태어나기 전년(前年)인가 제도가 바뀌었 대요. 저나 내나 원한 게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요. 시대를 잘 못 타고 났다고 해야 할지….
부인을 향한 홍 판서의 사랑은 어땠나요?
그런 걸 얘기해도 되나요? 원래 본부인은 연세가 있고 저 같은 시비들은 어 린 경우가 많았어요. 대감님은 가문의 하늘같은 어른이니 총애를 베푸시면 그 냥 좋았지요. 대감님이 손을 뻗치시면 거절하기 어려웠고요. 저를 아껴주신다 는 느낌은 자주 받았어요.
길동이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했었다지요?
제 아들 자랑이 될까 뭐하지만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어요. 인물이나 체격도 빠지지 않았고요. 글공부도 꽤 잘 했고요.
아이들이나 어른들 사이에 질투나 그런 건 없었나요?
출세할 수 없는 서얼들이 똑똑하면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많아지고 그게 행동 으로 드러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데다 까딱 잘 못되면 가문이 큰 피해를 당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잘난 것도 염려였어요.
길동이 나이 들수록 근심도 늘어났겠어요?
열한 살이 됐는데 체격이 어른이었어요. 칼과 활도 제법 다룰 줄 알았지만 어미가 볼 때는 여전히 어린애였지요. 그때 왠지 집안 분위기가 불안불안 했 어요. 하루는 길동이 내게 와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대요. 자기를 해하려는 이 들 때문에 죽을 뻔 했다더라고요. 자객이 들었대요. 어미가 막아줄 수 없으니 말리지 못했지요.
그 후론 소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으셨나요?
그랬지요. 뭔 길이 있겠어요. 남의 집 종이 되든지, 힘과 재주가 있으니 길 거리 싸움꾼이 될 것 같아 근심이 많았지요.
집 나가고 처음 들은 소식은 어떤 거였나요?
도적떼 대장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지요. 그 후로 ‘해인사’를 털었다고 하대요. 저를 대하는 눈초리들이 무서웠어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바늘방석 같고 잠도 잘 못 주무셨을 것 같네요.
하루하루가 그대로 살얼음판이었어요. 좀 지나니 아예 ‘활빈당’(活貧黨)이라고 별호도 가졌다대요. 불안 중에도 그 이름은 마음에 들었어요.
탐관오리를 비롯한 못된 벼슬아치들을 혼내주고 민중을 위한 ‘의적(義賊)’이 라 불렸어요. 서민들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줬지요.
어미 마음도 조금만 살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길동의 영향력이 커지니 나라에서 잡아들이라 했잖아요, 그때는 어땠어요?
소문듣기가 겁났어요. 잡혀도 안 되고, 안 잡혀도 불안하고…. 속이 까맣 게 바짝바짝 타들어갔어요. 어디서 잡혔다는 소문을 듣고 까무러칠 뻔 했지 요. 여기저기서 계속 잡힌다고 하대요. 아니구나 했지요, 마음이 놓이데요.
백약이 무효로 방법이 없으니 병조판서를 시켰어요, 안심이 되셨나요?
아니요, 임금과 대감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여전히 불안했지요.
율도국(栗島國)을 세우고 왕이 됐어요. 한을 푸셨나요?
걱정은 끝이 없지만 그나마 한숨 돌렸지요.
홍 판서가 죽자 찾아와 삼년상을 치러요, 감회가 남달랐지요.
물론 그때는 내가 저 세상에서 보았지만 기본이 있고 예의를 아는 것 같아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했어요.
아드님, 홍길동은 풍운의 한평생을 살고 길이 그 이름을 전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것만 기억하고 사세요.
감사합니다. 홍길동의 어머니 ‘춘섬 여사’와 함께 했습니다.
'가상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이 늘 허전했어 (0) | 2022.03.08 |
---|---|
인간답게 살아야지 (0) | 2022.03.08 |
미리 판단하지 말아요 (0) | 2022.03.08 |
번민 속에 살았지요 (0) | 2022.03.08 |
야성의 사람, 원시로 가다 (0) | 2022.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