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산다는 것이…
이 밤에 웬일이냐고 하신다. 연락을 드리지 않고 원주에 사시는 이모님을 뵈러 갔더니 하시는 말씀이다. 물론 밤이 아니다. 오후 한 시쯤 되었는데 주로 주무시다보니 시간 감각을 잃으신 듯하다. 좀 더 나은 수면을 위해 휘장을 내리고 책상 전등을 켜 두었으니 구분이 더 어려우셨으리라. 몇 마디 나누는 대화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황망하다.
반년 전만해도 덜 하셨는데 시시각각으로 달라지시는 것 같다. 모시고 있는 자녀들의 말을 들으며 설마 그렇게까지 나빠지셨을까 했는데 내 눈으로 확인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위로 내 어머니와 한 언니가 더 계셔서 삼남 일녀의 막내였는데 이제 모두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계신다. 한 해 전만 해도 모든 이야기를 다 알아들으시고 함께 지난 일들을 추억했었는데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을 듯하다.
1935년 출생이시니 연세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어떤 분은 백세가 넘었어도 사회활동을 다 하시지만 개인차가 있으니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으랴. 성경을 많이 암송하시고 기도의 용사이셨는데 세월 앞에 이겨내지 못하신다. 우리 가정과 교회를 위해 많은 관심과 기도를 쏟으셨는데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계속 잠만 주무실 수도 없는 일이니 텔레비전이라도 켜놓고 보시라 했더니 그런데는 별 취미가 없다하신다. 아직 시력은 괜찮아서 자주 책을 본다하시나 곧이곧대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짧은 대화에서 현실인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눈치 챘다. 사람이 자꾸 죽는다며 다 큰 사람들이 병든 것도 아닌데 죽었단다. 누가 그랬냐고 물으니 오래 전 돌아가신 이모의 어머니와 두 언니 이야기를 하신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요새는 죽은 이들이 자주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간단다. 11층 아파트에 사시는데 베란다로도 온다니 기가 막힌다.
활동이 어려워지고 밖에 나가시면 집을 찾기가 어려우신 모양이다. 몸이 편치 않기도 하고 자주 저리고 마비가 오기도 하지만 의식이 오락가락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2녀1남의 자녀 중에 중간인 딸이 서울에서 내려와 시중을 드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왜 그렇지 않으랴. 평소와 확연히 달라진 어머니 모습도 안타까우려니와 삶의 리듬이 완전히 달라져 도처에 주름이 가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힘에 겨운 모양이다.
출생입사(出生入死)라 하고 인지생(人之生)이 동지사지(動之死地)라 했던가. 나온 것이 삶이고 들어감이 죽음이요, 사는 게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지만 온전히 사는 세월이 얼마나 되려나. 결혼이 늦어지고 취직이 어려우니 독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삼십년이 부족할 게다. 자녀를 낳으면 그들 뒷바라지에 또 많은 세월이 가고 자녀들이 웬만큼 성장하면 노부모 시중을 들 때가 찾아온다. 고단함과 아쉬움 속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얼마가지 않아 현직에서 밀리고 이제는 자신들이 떠나갈 순서임을 확인하게 된다. 삶의 모든 단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생의 과제들에 눌려 허덕이며 살다보면 가야하는 게 인생인가 하는 연민을 금할 수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자녀의 처지에서 상황을 이해한 걸 게다. 그 말을 대하는 이들이 노부모를 모시는 이들과 그 또래들이 아닐까 싶다. 관점을 바꾸어 늙으신 부모 편에서 보면 서운하고 서럽기 그지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자녀들을 어떻게 애지중지해 키워내고 그들을 위해 삶을 온통 다 헌신했는데 자신들을 향한 자녀들의 배려가 마음에 찰리 없을 게다. 그러니 정신 줄을 놓거나 치매를 앓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모를 모시는 딸이 전화를 통해 하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아직은 어떻게 버텨낸다고 하지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하루 종일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하는 순간이 되면 그때도 어떻게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단다.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아야 하고 스스로의 건강도 자신할 수 없단다. 난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란 말인가. 현실적 어려움을 모르지 않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가지 않아 모두가 맞이할 미래가 아닌가.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의 갈피가 쉬이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대단한 게 무언가. 한 평생을 주어진 과제 해결에 허덕이다 자녀들 고생시키고 삶을 마감하는 것인가. 그 해결이나마 만족스럽기나 한 것일까. 그 일들을 생각하며 쫓기듯 이제까지 살아왔지만 이렇다 할 답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어려울 게다. 사람이 대단하다거나 만물의 영장이란 생각을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로 다른 존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게 진실에 가깝지 않으려나.
이모는 나하고 스물두 살 차이가 난다. 어림잡아 22년 후의 내 모습이 오늘 본 이모와 그다지 다를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기간이 짧아지지는 않으려나. 내 의지대로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닌듯하니 그 날이 늦게 찾아들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소중히 살아야겠다.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정리해 우선순위를 가려 꼭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려고 노력해 봐야지.
내 성격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 앞가림을 잘 하지 못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평소에 하던 기도에 이젠 하나를 더해야 할까 보다. 지나치게 오래 이 땅에 두지 마시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조 띤 병사 (0) | 2021.03.23 |
---|---|
도보다리 옆 굽은 소나무 (0) | 2021.03.23 |
겨울과 딸기와 막내 (0) | 2021.02.20 |
위 무위(爲 無爲)가 평안 (0) | 2021.02.16 |
우째, 이런 일이… (0) | 2021.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