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나의 세기의 대결

변두리1 2020. 11. 3. 15:09

나의 세기의 대결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이었으니 1970년 무렵이었을 게다. 그 시절 나는 참 모범생이었다. 집과 학교를 왕복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도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다. 친구래야 학교 오가는 길에 만나는 같은 동네 아이들이 다였다.

육학년이 되었어도 그 모양이니 내게 시비를 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키도 작고 힘이 약한데다 전혀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니 또래들도 제쳐 놓았을 게다. 친구 따라 도장에 구경하러 갔다가 사범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언제부턴가 태권도인지 합기도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운동을 배우려했지만 세월이 가도 흰 띠를 벗어나지 못해 끝내 파란 띠 한 번 허리에 둘러보지 못하고 내 무도인의 생활은 끝이 났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서열에 민감한 이들이 있는가 보다. 내가 운동을 배운지 몇 달이 되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그들은 내게 싸움을 부추겼다. 상대는 별명이 빼빼였을 만큼 마르고 기운을 잘 쓰지 못하는 아이였다. 말하자면 반에서 싸움을 제일 못하는 둘을 붙여 보자는 셈이다. 날짜를 정하고 홍보를 했다. 정해진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흥행사들은 신이 났다.

학교가 끝나고 한 무리의 악동들은 산에 올라가 무덤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의 싸움은 단순명료해서 코피가 나거나 울면 끝이 났다. 우리 두 선수는 진지하게 싸움에 임했다. 심판의 신호와 함께 서로 자세를 잡고 묘지 앞 무대를 두세 바퀴 돌았다. 둘 다 한 번의 공격도 없이 빙빙 돌기만 하자 심판은 끝을 외쳤다. 심판진들이 어떻게 판정을 내렸는지 기억에 없다. 그 후로 그 친구가 나를 무서워하는 빛이 역력했으니 현실은 내 판정승이었다.

이제까지 누구와 맞싸워 본적이 없다. 그날이 내 생애 유일한 대결이었으니 내게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때의 악동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오히려 그 때는 내가 잘 싸우지 못한다는 것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티브이 방송에서 이종격투기 경기를 자주 보여준다. 그 방송을 보면서 가끔 내 몸이 전후좌우로 기울고 움찔움찔하는 것을 느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논리가 마음에서 솟아오른다. ‘내가 누군가를 이길 수 있다는 신체적 확신이 자신감의 원천이라는 유치한 발상이다. 그것을 조금 다듬어 표현한 것이 제 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몇 년 전에 온 가족이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출발하기 전에 간단한 운동을 배워둘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나 말고는 가족 모두가 여성이었으니 외국에서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눈앞에서 우리 물건을 낚아채 도망가면 쫓아가 찾아올 만큼의 힘과 근력은 필요할 것 같았다. 세계에서 소매치기가 많기로 이름난 도시 중 세 곳을 갔었다. 두 곳에서 누군가 지갑에 손을 댔는데,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다행이 현금이 없어 바닥에 버린 것을 챙길 수 있었고, 여권만 잃어버려 곧바로 임시여권을 재발급 받았다. 남자들 세계에서 힘은 여성들에게 미모 같은 건 아닐까.

요즘 어린이들은 예전과 다른 것 같다. 전자기기를 잘 다루고 집에서의 위세도 대단하다. 그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험악하고 영악하다. 어린이 노래인 동요는 어디가고 유행가와 팝송을 줄줄 꿴다. 풍요로워진 덕이겠지만 한 편으론 아이다움을 너무 일찍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어린 시절에는 또래들이 산으로 들로 냇가로 몰려다니고, 친구네 집에서 숙제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모두가 힘들고 어렵던 시절, 함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치된 듯 자랐지만 친구끼리 어울림은 더 잦았다. 지금은 자녀가 하나인 가정이 많아 왕자와 공주처럼 대우받으며 자라니 좋은 점도 많지만 폐단도 적지 않을 게다. 학교가 멀지 않은 데도 차로 데려다 주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순례에 바쁘다. 집에 돌아와 제 방에 들어가면 가족과 별반 교류가 없다. 실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전자기기와 노는 것에 더 익숙하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방송으로 이런저런 세기의 대결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얼마 전에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이 벌어졌다. 결과는 인간의 완패요 인공지능의 완승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더 어려서부터 한 곳에 집중해야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점차 우리는 사라지고 개인만 강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면 몇 명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당시에는 한 반이 80명 가까웠다. 아마 대여섯을 넘을 수 없을 게다. 내 슬픈 지난날의 자화상이다.

다시 만나 함께 할 기회가 온다면 이제는 무엇으로 세기의 대결을 펼칠 수 있으려나. 어디선가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 그날의 악동들이 보고 싶고 대결을 펼쳤던 친구는 더욱 보고 싶다. 내 자녀들마저 훌쩍 커버렸으니 손자 손녀들이라도 친구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그들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어떤 세기의 대결거리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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