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집이다.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951년 생으로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중학교에 다녔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충격을 겪고 뒷골목의 불량소년이 되었단다. 고교 졸업 후 20대를 야쿠자로 보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 중에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품었단다. 소설도 많이 쓰고 상도 많이 탔다. 그의 경험이 소설가로서 자산이 되었나 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사회의 한 구석에서 눈물 흘리며 사는 이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그 서글픈 삶을 위로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번듯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하는 일이 무엇이든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에게 죽음 너머에 있는 존재들도 찾아와 위로를 건넨다. 서늘하면서 하얀, 따사로운 햇살이 있는 슬픔과 만나는 기분이다.
45년 동안 조그마한 역에서 역장으로 살면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열악한 직장 환경 때문에 잃고 아내마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도 철도원이라는 자신만의 자부심으로 살아온 오토마츠. 탄광이 사양산업이 되며 도시가 시들고 인구는 줄고 아이들도 사라져 갔다. 평생을 해온 일이 철도원이니 다른 일은 할 줄도 모른다. 눈 내리는 섣달 그믐날, 다음날로 정년이 되는 그를 동료들이 기억하고 이런저런 정을 베푼다. 눈 내리는 밤, 시골 작은 기차역에 어린 여자아이부터 소녀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마치 세 자매처럼 오토마츠를 데려갈 사신(死神)이 찾아와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밥도 차려준다. 어려서 죽은 딸 유키코가 온 것이다. 그는 이튿날, 새 해 첫날 새벽에 삶을 마감한다. 그와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철도원들과 오래 된 열차에 실려 눈 내리는 한적한 시골에서 평생을 바친 기차를 타고 철도원으로 저승으로 간다.
일본에 팔려온 여인 파이란,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 시달리다 몸에 병이 들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런 여인들을 관리하는 사업을 하는 야쿠자 고로, 포르노 숍 전무, 그의 직함이다. 파이란을 한 번 본적도 없지만 합법 체류자로 위장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받고 법적인 남편이 된다. 그 돈을 받아 아무 생각 없이 며칠 만에 다 써버린다. 여인은 몸이 부서져라 일해 벌어야 할 돈이라는 것을 죽은 후에야 안다. 유치장에서 나와 그 여인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여인이 일하던 곳을 찾아간다. 죽고나서 경찰과 병원에 답하기 위해 외우는 법적인 아내의 인적 사항들, 남의 나라에 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묻히는 이에 대해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처리되는 일들이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 대단한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여인이 본적도 없는 자신에 관해 외우고 고맙다고 쓴 유서같은 편지를 본다. 자신과 결혼해 줘 남편이 되어 고맙단다. 여인의 시신 앞에서 고로는 정말로 서럽게 운다. 화장을 하며 뼈를 모으며 알 수 없는 동류의식과 친밀감을 느꼈나 보다. 환상 속에서 그 여인과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자신의 고향으로 그녀의 유골을 가져간다. 그녀가 쓴 모르는 남편에게 쓴 편지가 러브레터다.
백중맞이가 짠하다. 일본에도 백중이 있고 나름 성대하게 지내나 보다. 죽은 혼을 친척들과 이웃들이 모여 마중 불을 피우며 맞아들이고 새벽녘에 배웅불과 함께 보내는 의식이 이채롭다. 아이를 낳지 못해 시가로부터 구박을 당하고 남편은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당하는 억울한 일들을 담백한 수채화처럼 그려준다. 여인은 고아여서 친척이 없다. 많은 시가의 친척에 눌려 할 말도 못해 볼 처지에, 그 밤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친척을 대표해 찾아온다. 손녀를 위해 큰 소리를 치며 시가 사람들을 몰아 부칠 것 같았던 조부는 실은 손녀를 쫓아내지 말고 며느리로 받아달라고 밤새 몸을 굽혀 사정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새벽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간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는 슬프고 따사롭다.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집으로 가지 않고 감방 동료의 집으로 간다. 감방 동료의 부탁으로 성탄 전야에 그의 집으로 선물을 전달하러 간다. 종교와 관계없이 이름만 산타인 그가 만두 한 봉지와 시크라멘 화분을 들고 큰 스누피 인형을 들쳐 업고 허름한 아파트 사층에 찾아가 선물을 부려놓고 초인종을 누르고도 도망치듯 나온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듣는 환성 소리, “산타다, 산타가 다녀갔다” 그는 정말로 산타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고 다음에는 진짜 산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또 한 번 생각한다. 작가는 재능을 부여받고 태어나는 것인가 보다. 고교시절을 불량 청소년으로 보내고 20대를 야쿠자로 지냈으면서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을까.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느낌을 여러 번 받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본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는 것과는 무관하게 살아간다. 내 모습을 본다. 제대로 쓰지는 못해도 여러 책들을 읽으며 감동을 받기도 하고 질투를 하기도 하며 산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주 큰 은총을 받고 이 시대를 살아간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감사한 일이다. 받은 재능이 적으면 더 많이 노력하는 길밖에 무엇이 있을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선인들이 알려 주었으니 애써 볼 일이다. 내게 주어진 길을 눈치 보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