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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칠 만원

변두리1 2019. 12. 21. 14:08

삼십칠 만원

 

  한 달여 전에 차량 정기검사를 받았다. 생산시기의 배출 가스나 미세먼지 기준이 현재와 다른데다 오래 타다보니 기능이 저하되어 더 심할 것이 분명하다. 종합검사는 정밀하게 하는지 비용도 더 들고 시간이 길지만 정기검사는 간단하다. 전에는 검사가 불안했다. 소리가 크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 매연이 허용기준치를 넘는다고 할 것 같고 내가 무슨 큰 잘못이나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땐가부터 생각을 바꿨다.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반 없는 걸검사가 끝날 때까지 책을 보며 조용히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때는 담당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년 1월부터는 미세먼지 단속을 한다하고 적발되면 과태료가 10만원이라는데 계속 저차를 탈 생각이냐고 묻는다. 좋은 차를 탈만하면 벌써 바꿨지 누구는 시원찮은 차를 타고 싶어 타느냐 했더니 조기폐차가 마감이 됐는데 올해 대폭지원이 되어서 추가로 신청을 받는다고 하면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단다. 마감이 이삼일밖에 남지 않은 때였다. 솔깃했다. 그렇잖아도 오래된 경유차에 관한 얘기에는 귀를 기우릴 수밖에 없어 이리저리 들었던 것을 떠올리니 더 미루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겨울이 가장 문제다. 날씨가 차니 시동도 더욱 안 걸리고 연기가 많이 나 민망했다. 본래 형편이 그렇기도 하지만 검소하게 산다는 자세로 버텨왔는데 근래 들어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로 남들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있는데다 확인할 여지도 없이 5등급 차량이니 없어져야 할 존재가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본은커녕 피해를 끼치는 느낌이다.

  지정된 폐차장 중 한곳으로 갔다. 서류를 접수하고 나오는데 안내하는 분이 저차는 오래돼서 볼 것도 없이 폐차대상이란다. 다음 달 중으로 선정결과가 발표되면 연락이 갈 거란다. 새 차를 사서 그래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함께 했는데 폐차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그동안 큰 고장 없이 긴 세월 많은 일을 했는데.

  지난 달 중순이 지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더니 1차 선정결과가 나왔는데 내가 접수한 기간의 차량에 대한 발표는 이달 초에 하겠다고 했다. 발표문에는 지원금이 명시되어 있다. 어디선가 보험에서 정한 금액에 비추어 지원금이 정해진다고 하는 말을 들은 듯도 하다. 관심이 지원금으로 옮겨졌다. 꼭 그렇다고 할 수야 없지만 볼 것 없이 폐차대상이라 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지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월을 넘기면 한 달,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간다. 12월 초가 되어 다시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지난 달 말쯤 발표가 되어 있었다. 거의 2,000대 가까이 선정되어 있다. 접수순이 기준인지 처음부터 나란히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발표라고 긴장이 된다. 사생활보호를 위함인지 이름도 전화번호도 차량번호도 몇 자리씩 가려져 있었다. ‘이 눈에 띄면 자세히 확인하지만 쉽사리 찾아낼 수가 없다. 일처리 방식에 은근히 화가 솟는다. 지원인들을 배려한다면 차라리 가나다순이나 차 연식 그도 아니면 차종이나 신청업체 순으로 발표를 해도 짜증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보아가기를 1500여 칸이 되어서야 1499번에 이름과 여타사항이 일치하는 항목이 있었다. 자연스레 지원액수에 눈이 간다. “370,000.”‘소리가 절로 난다. 최근에 보험명세서를 보았더니 차량산정가가 백수 십 만원이어서 백만 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너무도 차이가 크다. 가격 산정기준을 보니 차종에 따라 가격이 공시되는 해에서 일 년이 경과할수록 25퍼센트씩 경감이 되었단다. 그래도 멀쩡하게 굴러가는 차를 삼십칠만 원을 주면서 지원금이라 하니 허탈하다.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적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정해진 기간에 폐차를 하고 적당한 중고차를 사자는 의견들이다. 찻값에 보험금에 등록비를 추산하면 만만하지가 않다. 이참에 차와 결별하고 나돌아 다니길 자제하고 칩거로 들어가 볼까. 한동안이야 불편하고 갑갑하겠지만 얼마안가 적응되지 않으려나. 가족들에게는 지나가는 말로 건넸지만 내 자신은 진지하다. 이제 차를 갖지 않는 게 나와 남 모두에게 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12월도 초순이 거반 지나가고 있으니 아침에 차 시동을 걸려면 쉽지가 않다. 한 달여 지나면 폐차를 할 거니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벌써부터 폐차장에 차를 두고 혼자 돌아오는 광경이 어릿거린다. 언젠가 우연히 내 어릴 적 살던 집이 포크레인에 허물어지던 모습을 목격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 기분이 참 묘했었지, 내 어린 시절과 추억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어지럽고 아릿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지. 함께 했던 긴 세월 속에 충직했던 모습들, 그동안 들었던 정을 조금씩 정리하며 스무 살이 된 삼십칠만 원짜리 내 차와 마지막 한 달을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