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답이다
장관 재직 시에 구속된 드문 수사와 대우를 받은 정치인이 쓴 책이다. 한국인이면 다 인정하는 어려운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013년 3월부터 1년여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고 2016년 9월부터 4개월 정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 책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18대 국회의원 때에 출간되었다.
다재다능한 재원으로 성장하고 문화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가 바탕에 깔린 듯하다. 어려운 대학에 들어가려면 어려서부터 완벽에 가까워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인지 인 서울(in Seoul) 대학을 나온 이들에게 기가 죽는다. 어린 시절부터 곱게 자라나고 좋은 교육을 받아 엘리트 과정을 거치고 사회지도층의 길을 걸었다. 정치 외교 경제 교육 복지가 문화 아닌 것이 없고 생활자체가 문화임을 설득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높고 도시건축이 새롭다고 선진국이 아니라 웅숭깊은 문화가 받쳐주어야 선진국이란다. 겉모습에서 한 꺼풀만 더 들어가면 그 차이가 곧 드러난다. 미국이 아무리 자랑하려해도 문화와 전통이 300년을 넘을 수 없다. 국가의 경쟁력도 문화에서 차이가 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각이 다른 이들도 문화를 통해 하나가 되고 협력할 수 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스포츠고 음악이다. 문화와 예술이 어느 날 갑자기 친숙해질 수 없다. 말 그대로 삶이 되어 자연스러워야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관, 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러 음악회와 공연을 접해 성인이 되어서도 시간을 내서 찾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닦아져 있어야 한다. 이미 수백억을 넘어서는 고가의 작품들을 구입해 소장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미래에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기를 수는 있다. 최근 들어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두텁고 높은 장벽을 실력으로 넘고 있다. 저자는 문화의 힘이 국력과 비례한다고 한다. 우리 국력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앞섰다고 하는 이들을 무조건 추종할 것은 아니다. 우리 것을 다시 돌아보고 다듬어 세계에 내놓을 것을 찾아야 한다. 판소리가 오페라처럼 공연되고 지구인들을 매료시킬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우리의 발효음식과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면 손색없는 세계인의 문화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갖지 못한 우리의 긴 역사에서 시각을 달리해 바라보면 다른 곳에 없는 우리만의 것들을 여럿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한국문화원을 거듭 언급한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것을 담고 있는 건물이 형편없으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한다. 문화원은 타국인이 상대국에 관해 접하는 첫 인상일 수 있고 그것은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영국문화원을 예로 들면서 수준 높은 영어강의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추억들을 얘기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한류열풍이 뜨겁다. 드라마와 가요와 정보통신기기들,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경험에 한국을 알려하고 우리말과 글을 익히려 한다.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많은 세계인들을 우리에게 호의를 갖는 우군으로 삼을 수 있다. 문화가 경제도 외교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활짝 꽃피우지 못했던 박항서라는 축구지도자가 베트남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 나라의 성인대표팀과 바로 아래 대표팀을 맡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성취하고 있다.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낼 때마다 그 나라가 들썩일 만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밤새 오토바이로 거리를 누비며 자국기와 태극기를 흔들고 코리아와 박항서를 외친다. 예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은원과 애증을 넘어서는 외교적 성과라 하겠다. 베트남에는 한류가 격류처럼 흐를 것이다.
정부주도의 정책들을 언급하며 모든 것을 주도하려 하지 말고 잘하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일깨워준다. 한식을 세계화한다고 해서 각지에 한식당을 새로 내고 운영하기보다 이미 잘 하고 있는 곳들을 지원하면 마찰이 적고 효율성도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하는 일들은 유연성이 약하고 시의적절한 일을 벌이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본래 하려는 일보다 뒤처리가 더 힘을 빼기도 한다.
외국 손님들을 맞을 때에 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하고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우리의 것을 체험하게 하자는 제안도 공감이 간다. 외국식으로는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최고의 환대를 많이 받아본 그들을 감동케 하기 어렵다. 차라리 오래된 고택에서 전통의 멋을 살려 접대하면 다른 곳에서 경험하지 못한 한국만의 추억과 문화를 맛보게 될 것이니 인상 깊게 남으리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자랑으로 꼽는 템플스테이도 의미 있는 일이다. 종교적인 것에 기울지 않는다면 물소리 바람소리 고적하고 호젓한 환경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인재를 망가뜨리기는 쉽다. 한 사람을 쓸 만한 인재로 양성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부수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하지 않지만 세우는 데는 수십 년이 든다.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에 정통한 인재라면 더욱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