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변두리1 2019. 4. 15. 15:00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혼돈과 깨달음의 나라 인도 여행 -

 

  류시화가 누굴까. 책을 읽으니 글쓴이에게는 아무 관심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충격이랄까, 혼돈이 찾아왔다. 간디와 타고르 그리고 싯다르타의 나라, 그래도 난 기회가 주어져도 그곳에 가지 않으련다. 무수한 노자들이 모여 사는 듯한 무작위한 모습에서 왜 극한 작위가 느껴질까. 자주 듣는 말,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알고 싶지 않아 그런가 보다. 신비한 나라, 감추어진 나라, 보이는 이에게만 보이고, 여타의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나라 인도에서 저자가 겪은 느낀 이야기들이다.

  노프라블럼, 그가 만난 많은 이들이 외치는 소리이자 깊이 있는 깨달음이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황당한 일을 만나도, 화가 머리끝을 뚫고 나갈 일이 생겨도 노프라블럼이란다. 노프라블럼이면 노프라블럼이다. 하지만 사회는 변화되지 않는다. 현 상황에 대한 불만과 더 낫게 바꾸려는 의지에서 개선은 이루어진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되어지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면 인간의 선택과 의지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정체된 채로 시간만 흐를 뿐이다.

  어느 곳에서나 오랫동안 기다려 온 듯 만날 것 같은 존재들, 그루, 정신적인 스승들이다. 저자가 만났다는 요기, 싯다 바바 하리 옴 니티야난다. 이름부터 길고 요란하다. 그가 행한 갑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속았다는 분풀이로 항아리를 박살내고 떠나오는 제자를 버스까지 찾아와 전해준 세 마디, 절창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희비사(喜悲事)도 곧 지나간다, 도와달라는 이를 도우라.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제자의 떠남을 지켜봐 주었다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듣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르다. 오래 이 말들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도에서 지낸 모든 세월들이 아깝지 않으리라.

  글쓴이가 미루고 미뤘던 인도여행,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마음으로 벼르고 있는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가 보았다는 영화 한 편이 무모할지라도 뛰어들게 했을 듯하다. 소가 새끼만 나면 떠나야지, 구두만 새 것으로 바꾸고 가야지, 기타 줄을 갈고 나서 출발해야지. 꼭 하고 싶은 일을 미루게 만드는 핑계거리들, 그들은 언제나 되풀이 되고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가 머리를 내민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앞뒤 재지 말고 저지르면 어떨까, 그게 빠르고 효과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내용을 돌아보며 가장 인도답다고 느낀 것이 음악회 사건이었다. 인도의 음악도와 식당에서 음악이야기를 하다가 산대에게서 그날 저녁에 인도의 대표적인 현악기의 달인이 펼치는 연주회가 있다는 걸 듣는다. 열시에 열리는 연주회여서 여덟시에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저자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 시간을 위해 집에도 들리지 않고 시간을 맞춰 약속장소에 가지만 상대는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몸이 달아 릭샤를 불러 전해들은 곳을 찾아가지만 허탕이고 막상 연주회는 어느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고 있었고 음악도는 이미 와서 앞자리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따져들었더니 왜 자신의 잘못에 당신의 감정이 상해야 하느냐고 하더란다. 연주회의 주인공인 대가는 현을 조율하는데 만 두 시간이 걸렸고 그 밤을 하얗게 새워 열 시간 동안 지속해 아침 열시에야 끝이 났단다. 구름처럼 모여든 청중들도 담요를 몸에 두른 채 모두 새처럼 쪼그리고 앉아 대가의 음악에 몸을 맡겨 지상의 시간과 무관하게 즐기니 평생에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한밤의 음악회였다고 한다.

  배탈로 급한 볼 일을 가릴 것도 없는 들판에서 공개적으로 치른 지은이는 화장실이 많으면 좀 좋겠냐고 불평을 한다. 곧 돌아온 응답, 자연 속에서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자연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뭐가 문제냐, 성냥갑만한 인위적 공간에 숨어 냄새를 맡아가며 처리하는 게 더 문제라는 것이다. 물로 닦지 않고 화장지를 쓰는 게 강이 더러워지고 나무들이 더 없어지니 더 나쁘지 않느냐는 게다.

  바라나시의 한 여인숙에 머물며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주인이 항상 오늘은 무얼 배웠소?”하고 물었단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말하곤 했는데 그 질문을 머무는 내내 날마다 받았더니 나중에는 그곳을 떠난 후에도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하루 무엇을 배웠나그 질문이 의식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크건 작건 날마나 무언가를 의식하며 배우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큰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게다. 바라나시의 여인숙 주인은 의도와 무관하게 훌륭한 스승이다.

  꼭 인도가 아니라도 여행은 삶에 깨달음을 준다. 불편함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낯선 곳에서의 익숙지 않은 경험들. 그러한 일들이 오히려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남이 여행의 특징이라면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겠다. 공간을 옮기지 않고도 멍한 공상을 할 수도 있고 음악이나 책에 한순간 몰두하는 것으로도 그 맛과 작은 깨달음에 이를 수 없으려나. 몸으로의 부딪침이 있어 더 생생하고 오래 간직되고 기억되는 것인지 모른다. 대가를 치른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것, 포기해야 얻는 다는 게 어느 분야나 적용되는 진리인가 보다. 인도 알쏭달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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