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대단한 사람들(Super men)

변두리1 2018. 1. 13. 19:28

대단한 사람들(Super men)

 

   얼마 전 신문에서 한 취재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아 부정하고 싶었다. 책을 가슴에 안고 하늘로 뛰어오르는 사진을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서른아홉부터 직장생활과 가정 일을 병행하면서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를 여섯 해를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에 관한 책을 냈는데 초고 작성에 십칠 일밖에 걸리지 않았단다.

   학창시절에 공부에 취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책읽기를 즐기지도 않았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연애를 하고 스물일곱에 결혼했다. 남편은 실직을 하고 이런저런 일에 실패하면서 실의에 빠져, 할 수 없이 그녀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단다. 그 힘든 환경 속에서, 서른아홉에 책을 만나 닥치는 대로 독하게 읽었다. 이천여 권의 책을 읽으니 자신이 변하고 남편은 취직하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한다.

   그 여인에 관해 다른 건 큰 관심이 없다. 어떤 면이 얼마나 좋아졌나, 정말 책을 읽으니 건강해졌나가 궁금한 게 아니라 과연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을 육 년을 하루같이 해낼 수 있는가가 관심사고 궁금하다. 웬만한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여덟 시간 가량이 걸리고 독후감도 두어 시간은 걸린다. 잠을 줄이고 출근 전에 백여 쪽을 읽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악착같이 독하게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그 여인이 해낸 걸 왜 나는 하지 못한 건가.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범인과 확연히 다른 능력자로 몰아붙이는 게 마음 편하다. 건강, 의지, 독서능력이 보통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여인이다. 어쩌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초인적인 의지가 발휘된 건지도 모르겠다. 위안이 되지 않는다. 마치 정수리를 망치로 한 대 강하게 맞은 느낌이다. 그래, 못 오를 나무는 처다 보지도 말자. , 대단하다고 감탄할 수는 있어도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상대는 아닌 걸로 하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편치 않다. 적어도 책 읽는 일에는 내가 더 익숙했을 텐데, 책을 읽겠다는 의식도 뒤지지 않았을 것인데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가. 그 여인이 이천 권을 읽을 때 나는 몇 권을 읽었을까.

  18세기 중반에 청주에서 출생해 지금부터 이백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주당(師朱堂) 이씨(李氏)라는 여인이 있었다. 사주당이라는 당호(堂號)에서 알 수 있듯이 주자를 스승으로 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독학해서 유학(儒學)을 공부했다. 사주당의 명성에 그녀의 학문과 견해를 듣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태교의 중요성을 인식해 그 때까지 흩어져있던 글들을 모으고 자신의 경험을 보태, 태교신기(胎敎新記)라는 책을 저술한다. 그녀가 남녀유별이 행해지던 그 시기에 부친에게 기초를 배웠다고 짐작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책 구입이 자유로우며 도서관에 가면 자료가 가득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이다. 글을 써보겠다면서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자괴감(自愧感)을 떨치기 어렵다. 내 자신이 본래 야무지지 못한 걸 안다. 그래도 육년 동안 날마다 책 한 권씩 읽은 여인처럼 할 수는 없었을까.

   가까운 곳 증평에서 나고 자라고 죽은 백곡 김득신은 열 살에 글공부를 시작했고, 재능이 빼어나지 못했어도 꾸준함으로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다산 정약용도 독서에 부지런하고 빼어난 이는 백곡이 제일이라고 인정했단다. 만 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이란다. 그는 조선의 독서왕으로 불린다. 어찌 조선뿐이랴. 미욱하게 꾸준히 한 가지 일에 온 힘을 기울이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를 그가 보여준다. 그의 묘비에는 재능이 없거나 넓지 못하면 한 가지에 정진해 한 가지를 이루려고 힘써라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내가 위안 삼는 게 있다. 많은 이들이 육 년간 이천 권을 읽고, 혼자 독학으로 학문을 이루거나, 백곡처럼 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할 수는 있어도 똑 같이 하기에는 적지 않은 장벽들이 있다. 오히려 그들과는 견줄 수 없지만 내가 사 년여 만에 백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별 것도 아니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네.' 하고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한 이들은 대단하게, 나 같은 이들은 조금 느리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것 아닐까.

   백곡의 묘비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고 한다. “배우는 이는 재능이 남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말라. 나는 어리석었지만 끝내 이루었다. 부지런해야 한다.”다른 이를 보고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일뿐, 인생의 긴 여정을 가려면 자기 속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단지 염려스러운 건 내 능력에 비추어 게으르게 살면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적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가이다.

   이제는 스스로 삶의 반환점을 돌았음을 인정할 나이가 되었다. 번민과 갈등 속에 흔들렸던 젊음의 때를 보내고, 가야할 길을 알고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여럿 있다. 아스라이 저 멀리서 내게 손짓하는 깃발들을 향해 내 속도대로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가다보면 나도 괜찮은 삶을 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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