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흔적 속의 기억

변두리1 2017. 1. 4. 22:12

흔적 속의 기억

 

   계단으로 이층을 올라가다 보면 바닥에 명도가 다른 곳이 눈에 띈다. 주변보다 한결 밝은 열 개 남짓한 동그라미들. 수년 동안 일정한 곳에 화분을 두다보니 생긴 흔적이다. 일 년 중 서너 달을 빼고 그곳에 꽃 담긴 화분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희고 노란 국화가 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향기를 맡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지난달 중순쯤 날씨가 추워지자 추레한 것들은 버리고 몇 개는 실내로 옮겼다. 한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꽃들이 아른거리더니 이제는 살아있는 것 밖에는 제대로 기억도 못하겠다. 실내에서 햇볕도 실컷 못 받는 화분의 꽃들이 불쌍하다. 연민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니 더욱 기막힌 건 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다. 내내 무심하게 살다 반짝 관심을 둔다고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닌가보다. 긴급한 날씨변화나 있으면 실내로 들어 옮기기나 했을 뿐 정을 주지 못한 것이 민망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글쓴이의 따듯한 마음과 행동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출간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으니 널리 알려지거나 이름 있는 책은 아니겠지만 읽는 즐거움을 주고 삶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가끔씩 등장하는 익숙한 지명들도 독서의욕을 돋운다. 그의 사물에 대한 근원적 이해와 흐름을 꿰뚫는 안목 그리고 급소를 지르는 유연한 민첩성은 나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한 문장, 한 구절에서 주변을 향한 살뜰함과 정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내 기대를 뒤집는 숱한 반전을 보여준다.

   내 삶의 자세는 그와 판이하다. 지난날의 경험과 내 성격이 어울려 그리 되었겠지만 정에 인색하고 잘 드러내지 않는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함께 행동하기보다는 한걸음 떨어져 분석을 하다 기회를 잃는다.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 스스로 삶의 자세가 못마땅하고 후회를 남길 때가 많았었다. 그 글들을 읽으며 화분 속의 꽃들과 화단의 풀들에게 내가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정서적 이익만을 얻은 것이 미안하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킨 화분들이 바닥에 흔적을 남기듯이 내가 살아온 삶도 여러 곳에 흔적들을 남겼을 것이다. 어쩌면 나만 알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모른 채 확대재생산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관계에 민감한 영향을 줄까봐 피해를 당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속을 썩이고 지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꾸로 양해를 구하고 진지하게 다른 이의 단점을 지적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일들에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게다.

   우리 집의 꽃과 나무들의 상태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안다. 다른 곳의 꽃과 나무들은 성장이 빠르고 일찍 꽃도 피고 색깔이 선명한데, 우리 울안에 있는 것들은 그렇지 못하다. 입지 여건과 토양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그들에 대한 사랑과 돌봄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아내가 마음을 쓰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나 있었을까 싶다. 꽃들을 보는 것만 즐겼지 가꾸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게다. 그걸 모르고 만나는 이들에게 이상하다는 듯이 떠벌렸으니 듣는 이들은 얼마나 헛웃음을 삼켜야 했을까. 울안의 한 송이 풀꽃에서도 준엄한 경계를 듣고 보았어야 하는데, 어쩌랴, 아는 만큼 볼 수밖에 없는 것을.

   내 자신을 볼 줄 모르고 천방지축 겅중겅중 뛰기만 하는 것은 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글 한편에 다 드러나는 것을, 그래서 글이 곧 사람이라고 한 것을, 분수도 모르고 이말 저말 쏟아내기 바빴던 걸 이제야 알겠다. 다른 이들이 얼마나 조심해서 사려 깊게 글을 쓰는 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설고 떫은 글들을 오물처럼 토해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위안으로 여기기는 지나가는 과정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면이다. 우물을 파고 고인 물을 한번 다 퍼내듯이 내 속에 고여 있던 것들을 퍼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의 글을 대할 때 내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게다. 내 글의 흔적들이 눈에 잘 띄는 몸에 난 상흔처럼 수시로 스스로를 깨닫게 해 주리라.

 

  가끔 신문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담배꽁초나 음료수 병에 남았던 흔적 때문에 검거되었다는 기사를 읽는다. 흔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제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폐쇄회로 촬영기들이 있는가. 흔적을 혐오하거나 피할 일만은 아니다. 정겨움으로 미소 짓게 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흔적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감동적인 글들도 수고와 애씀의 흔적이다. 수시로 듣고 위로받고 힘을 얻는 칭찬과 격려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배려한 사랑의 흔적들이다. 세상모르고 코골고 침 흘리며 자는 건 어떤 일에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몰입했다는 흔적이다. 수고와 사랑의 흔적들은 따듯하고 감미로운 기억들을 불러온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살피면 기분 좋은 흔적들을 많이 찾을 수 있으리라.

이층 바닥에 하얀 동그라미로 남은 흔적에서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찐득이   (0) 2017.01.19
세월의 힘   (0) 2017.01.18
옹색(壅塞)함과 여유(餘裕)로움  (0) 2016.12.30
부실한 하객  (0) 2016.12.23
되었네, 이제 그만하시게  (0) 2016.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