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큰개불알꽃

변두리1 2015. 5. 15. 14:35

큰개불알꽃

 

 

  풀들이 빼곡히 자라난 냇가, 그 바닥에 핀 작고 파란 꽃들에 홀려 눈을 떼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보고 있는 중이다. 낙엽과 다갈색 풀들 사이로 푸릇푸릇 새 생명들이 돋아나 있다. 위로는 노랑나비와 벌들이 날고 그들 사이로 개미들, 딱정벌레, 이름 모를 곤충들이 바쁘게 오간다. 토끼풀과 쑥이 지천인 풀밭 바닥이 작은 별들을 뿌려 놓은 듯 영롱하다. 앙증맞은 풀잎과 짙푸른 네 장의 꽃잎, 선명한 검은 줄들, 한참을 보고 있으면 나타난다는 희미한 사람의 얼굴. 그로인해 얻은 이름이 베로니카다.

 

  이 꽃을 피우는 큰개불알풀은 유럽과 서아시아대륙 그리고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두해살이 귀화 식물이다. 이름과는 달리 아무리 보아도 크지 않다. 아기의 새끼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꽃을 크다고 한 이유는 무얼까. 게다가 이토록 예쁜 꽃에 왜 어울리지 않는 상스런 이름을 붙여 주었나. 꽃은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힐까. 자신을 너무도 몰라주는 이들이 한없이 야속하고 미울 것 같다.

  꽃이 진 후에 맺히는 열매 모양이 개[]의 무엇처럼 보여서 일본 사람이 지어 부른 것을 번역해서 그대로 쓰고 있단다. 큰개불알꽃을 민간에서 는 봄까치꽃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이 꽃이 봄이 오기 전부터 피기 시작하여 봄까지 계속해서 핀다고 해서 봄까지꽃 이었다가 봄이 옴을 알리는 기능에 언어적 유사성까지 가미되어 봄까치꽃이 되었으리라고 풀이한다. 꽃말도 기쁜 소식이다.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인가. 문화권에 따라 꽃의 모양을 흉내 내새의 눈’(Bird's eye), 땅을 수놓는 비단 같다 하여 지금(地錦)이라고도 불린단다. 한동안 쉬지 않고 피어나 봄을 알려 사랑을 받고 나머지 세월은 잊혀진 채로 죽은 듯이 살아가는 풀꽃으로 어쩌면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는 그냥 이름 모를 야생화요 들풀일 것이다.

 

  이들은 늦가을에서 겨울에 싹이 튼다. 바람을 피할 수 있으면 햇볕 좋은 곳 어디든 가리지 않고 논두렁 밭두렁, 냇가나 길가에서도 때론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사람으로 치면 유복한 가정에서 귀하게 자라는 깜찍한 딸들 같은 모습이다. 그들이 가리는 곳 없이 볕 좋고 바람가릴 수 있는 곳이면 이 땅 어디서나 잘 살아간다니 마치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강인한 생활력을 갖게 된 이웃을 보는 듯 해 이중적이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편이 아리다. 그들이 봄을 지나 이른 여름 자신이 바싹 말라 죽을 때까지 이 땅에 지천으로 피고 지니 우리는 보석 같은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소복소복 무리지어 자라나 보석을 뿌린 듯 풀 속에 박혀 깜찍하고 영롱한 자태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령이 되고, 온몸을 땅에 내주어 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다른 이들의 성장을 돕는 퇴비의 역할도 한다. 꿀의 원료도 되고 산자초(山紫草)라는 약재로 쓰여 많은 이들을 여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큰개불알풀도 형제들이 있다. 선개불알풀과 개불알풀이 그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관계를 짐작하겠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에 의한 무시와 차별 그로인한 아릿한 설움이 느껴진다. 풀이나 나무들은 낯선 곳에서 살아갈 때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 같다. 차별을 받아도 항거나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저 오랜 세월동안 점차 스며들어 땅을 나누어 함께 살다가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된다.

 

  지구라는 초록별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활발한 교류로 더욱 긴밀해지고 지구 전체가 한 동네 한 가족이 되었다. 사람들만 아니라 동식물과 숲과 냇물들까지 모두가 사랑받으며 이 땅의 삶을 이어갈 귀중한 존재들이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열린 한 가족이라 부르면 어떨까. 서로를 이해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냇가를 지날 때 바닥에 붙은 듯 피어있는 그들에게 몸 낮추어 안부도 묻고 그 위를 날아가는 벌 나비들도 내 눈으로 따라가 보아야겠다.

 

 

 

 

 

'변두리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함없는 친구들  (0) 2015.08.02
장미지다  (0) 2015.06.19
비 오는 날에는  (0) 2015.04.20
녹색 잔치  (0) 2015.04.20
나리씨와의 가상(假想)대화  (0) 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