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내가 누리는 행운

변두리1 2015. 2. 27. 21:25

내가 누리는 행운

 

  살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자신이 노력한 것이 아닌데도 큰 이득을 얻는 일이 있다. 횡재라고 해야 할지 행운이라 할지, 여하튼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 일이 내게 행운으로 오기까지 수고한 이들이 있음에도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혜택을 누리고 산다. 이번에 내가 행운을 누렸으면 다음에는 수고하여 다른 이들이 그 열매를 맛보면 좋겠다. 길게 보면 공평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일 것이다.

 

  형제의 가정이 함께 모여서 조상을 추모하는 기도를 하고 서로 세배를 했다. 가까운 산에 모신 부모님 산소로 성묘를 간다. 명절 성묫길은 항상 붐빈다. 산 아래에 차를 대고 걸어 오르다 보니 산을 타고 길이 꽤 넓게 닦여져 있다. 길의 끝 간 곳을 보니 부모님 산소 근처까지다. 산소주변이 멀끔 시원해져 있어서 돌아보니 부모님 묘소 위쪽에 약간은 허술했던 산소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고 예전에 보이지 않던 석물들이 무덤 앞에 서 있다. 남은 것들을 버린 듯, 한 쪽에 돌 몇 개가 무더기져 있다. 새로 치장하고 다듬으며 앞을 정리한 것이 부모님 묘소로 보면 뒤를 깔끔이 정리한 셈이 되었다. 그 일을 하느라고 차들이 왕래하고 중장비가 다녀서 길이 생긴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던 20여 년 전에는 밭길을 타고 오르고 길 없는 산을 헤치며 가던 곳, 부모님 묘소가 어설프게 모셔진 곳이 산뜻하게 정리가 된 것이다. 그분들에게 고마우면서도 얼굴도 모르고 있다. 서로 부딪칠 일도, 딱히 할 이야기도 없었다.

  지난날 유사한 행운을 누린 일이 또 있다. 1970년대의 끝자락에 대학생활을 했는데 바로 앞 선배들은 졸업학년까지 교련이라는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내가 삼 학년이던 해 시월에 박대통령이 죽고 그 전후로 수많은 시위가 있었다. 그 영향인지 다음해에 졸업반의 교련교육이 폐지되고 또 그 이듬해부터는 2학년까지만 교련교육이 시행되었다. 나로서는 아무런 한 일이 없이, 많은 이들의 시위와 외침과 구속과 고통의 결과로 주어진 달고 고소한 열매를 누렸다.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가 싶을 만큼 시대에 대한 아픔과 고뇌 없이 살았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이들, 그 누구를 향해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건네 본 적이 없다. 그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같고 죄를 짓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철저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 왔을 뿐 아니라 다시 그러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고 해도 같은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 갈 것 같다.

  수 없이 많은 행운을 누리고 살았을 테지만 한 번 더 크게 행운을 누린 적이 있다. 신학교의 졸업 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까지 군대(軍隊)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군대목회자로 군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오다가 길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에 어디서 알았는지 교수 한 분이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군종장교를 보충하는 시험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감시간에 쫓겨 간신히 접수하고, 합격하여 오 년여의 군복무를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우리 사회의 격변기여서, 1980년 전후에 군목 후보자로 합격했던 이들 가운데 시대적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항거하다가 규정에 어긋나 생긴 결원(缺員)을 내가 채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일 그렇다 해도 그것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사리(事理)에 맞는 일인지도 잘 알 수 없지만 내게 행운인 것은 틀림없었다.

  깊이 생각해보면 억울한 일보다는 행운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이 시대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복된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민족이 언제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이런 풍요로움과 국제적으로 높은 위상을 누리고 맛보았을까.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백여 년 전만 해도 점증하는 외세의 침탈과 어수선한 시국, 일제의 지배, 좌우의 혼란, 한국동란과 군사독재의 시절. 그 정치적 암울함과 경제적 가난을 비껴 태어난 것에 스스로의 아무런 노력이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류가 이 땅에 살아온 이래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 의료 과학 교육과 문화가 꽃처럼 활짝 피어났던 적이 없었다. 앞서 살았던 수많은 선조들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냈으니 우리가 누리는 행운이 얼마나 대단한가. 19세기만 해도 어느 절대 왕정의 권력자가 오늘의 우리들이 누리는 편리함과 혜택을 누리며 살았을까.

 

  이 찬란한 문화위에 내가 얹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역사의 단절을 막는데 조금 기여할 수 있는 인적 자원 셋을 더해 주고 문명의 이기(利器)를 덜 사용함으로 환경의 오염과 파괴를 약간이라도 늦추었다고나 할까. 주변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신문화에 한 줌이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늦은 저녁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유제품을 꺼내 먹으며 컴퓨터를 켜면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펼쳐든다. 이렇게 일상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이제는 안경을 쓰고 책을 보기가 불편해 벗어놓고 맨눈으로 책을 읽는다. 나는 참 행운아다.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망한 여인  (0) 2015.03.04
고달픈 행복  (0) 2015.03.04
봄 날 부는 아릿한 찬바람  (0) 2015.02.21
허방 치기  (0) 2015.02.12
수염(鬚髥)  (0)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