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과학자의 서재
책 전체가 저자에 관한 이야기여서 저자소개는 따로 필요하지 않다. 그는 ‘탐험을 떠나며’ 라 이름붙인 저자의 글에서 과학자의 서재란 한 과학자의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자라온 ‘성장의 집’ 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한 번도 과학자를 꿈꾼 적이 없고, 시인이 되고 싶어 습작 노트를 끼고 살았고, 조각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무작정 내달리기도 했는데, 동물행동학자, 생태학자, 사회생물학자, 통섭학자라는 과학자가 되었고 그 안에 자신이 꿈꾸었던 것들이 들어있으니 시인의 꿈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을 지닌 과학자’가 된 것이라며 가슴속에 자리 잡은 꿈은 내쫓지 않으면 끝까지 남는 것으로 자신이 깨달은 성공철학은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한 삶’이라고 언급하며, 방황은 실패가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길’을 찾는데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의 삶과 책을 몇 개의 주제로 재구성하여 살펴보자.
Ⅰ.다양한 재능
그는 놀이에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 처음에는 수집과 관찰에 몰두했고 초∙중학교 때에는 구슬치기에 재능을 보여 게임만 하면 이겨서 동네 최고의 구슬재벌이 되었고 그때 구슬재벌이 되면 점점 더 구슬을 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글짓기, 특히 시에도 재능과 관심이 있었는데 중2 때에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으며, 심사를 맡았던 시인에게서 탁월하다는 심사평을 들었고 한동안 문예부활동을 할뿐 아니라 대학시절에는 문예부장을 맡았다. 또한 고3 초기에 조각으로 후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미술원장을 하신 당시 미술선생님께 극찬을 받고 미술반활동을 하면서 미대진학을 꿈꾸기도 했다. 대학입시를 위해 재수, 삼수를 하던 때에는 음악에 심취해 당시 듣던 팝송을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당구와 볼링에도 실력을 드러낸다. 고교시절의 농구실력을 바탕으로 대학 1학년 때에는 교양과정부 농구팀으로 농구에 빠져 살고 유학 중 하버드에서 박사과정과 기숙사 사감을 할 때에는 대학생들과 농구로 소통하기도 한다. 리더쉽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보여, 대학시절에 1학년 때부터 독서동아리를, 3학년에는 사진동아리를 맡아서 성공적으로 이끌고, 3학년에는 전체 과대표와 학교의 문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삶에서 보여주는 팔방미인다운 재능은 문예부흥기의 천재들을 보는 듯하다.
Ⅱ.부모님의 사랑
저자의 아버지는 육사를 졸업한 육군 장교였다. 자녀에게 직접 글자를 기록한 딱지를 만들고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그 글자를 알려주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연관된 딱지의 글자로 글을 익힌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 서울로 전학을 가고, 첫날 시험을 봐서 성적에 따라 매를 맞자 이튿날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에게 항의를 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으로 온갖 수모를 겪으며 형편에 부치는 과외를 시킨다. 대학의 선택도 장남에 대한 기대로 아버지는 법대를 고집하다가, 적성검사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는 아들에게 꼭 맞는다는 의대를 택하게 한다. 대학시험에 실패한 아들의 성적을 모든 방법을 통해 확인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염려해 강릉으로 요양을 보낸다. 그후 회복이 됐다고 느끼자 다시 편지로 아들에게 자극을 준다. 아버지는 저자가 방황을 끝내고 유학을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장을 사직하여 퇴직금으로 유학비용을 마련하고 아들과 함께 추억을 쌓는 기간을 마련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저자부부는 그 사랑을 다시 자녀들에게 대물림한다.
Ⅲ.학습의 천재성
초등학교 6학년 때 과외에 넣어주기를 꺼릴 만큼 수업결손과 학력차가 있었지만 짧은 기간에 따라잡고 과외를 그만두고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명문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자연으로 향하는 일탈(逸脫)과 방황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학년,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면 앞서가던 동료들을 따라잡는다. 언제나 공부외적인 활동에 열정을 쏟다가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빼어난 학습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여겨진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지나놓고 보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하려고
마음먹고 덤비면 그런대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듯싶다.
아마도 공부하는 요령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요령을 알게 된 것도 사실 공부가 하기 싫으니까 가장 적은
시간을 들여서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얻게 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대학에서도 4학년이 되어서야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데 그 출발이 유학이었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공부에 집중하여 낮은 평점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과목을 수강해 유학의 기준을 충족시킨다. 유학시절에 그가 보여준 학습의 태도는 놀랍다. 석사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를 얼마나 치열하게 했던지 심사위원들이 박사학위를 주어도 충분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부족한 한 과목을 더 듣는 것으로 하고 박사학위를 수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학위를 빨리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 수단이나 방법으로 선택하는 공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공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본인의 거절로 우여곡절 끝에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에서 7년째인 1990년 ⟨민벌레의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동물행동학’과 ‘인간생식생물학’, ‘사회성곤충’ 등을 2년여 전임강사로 가르치면서, 유학 생활 10년이 넘어서 또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미시간대학에서의 3년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공부한, 그리고 질적으로 가장 풍부한 지적 탐험의 기간이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명예교우회 특별연구원으로 선임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하버드 명예교우회 일원으로 추천되었지만 최종인터뷰에서 탈락해 좌절하던 중에 미시간대 명예연구원에 뽑혔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 덕에 관심분야를 더욱 확장하고 인간, 경제 분야의 책들을 폭 넓게 읽게 되었다. 바로 그 명예연구원 경험이 이화여대에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원’을 가능하게 했다. 저자의 연구실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한 분야의 학문이 아니라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토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가 원하는 통섭이었다. 그는 여전히 학문의 교류와 소통을 위해 지속적으로 방법과 내용을 보완해가며 통섭원을 이끌고 있다.
그가 하버드에서 7년을 보내며 그 학생들로부터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는데 그것이 “미리 한다.”는 것이다. 미리하면 쫓길 이유도 없고 당연히 일의 질적 완성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저자는 그 습관으로 여러 가지 일을 허덕거리지 않고 소화하고 있다고 소개해 준다. 어찌 보면 어려서부터 그의 생활자체가 통섭의 삶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Ⅳ.고마운 사람들
한 사람이 제 역할을 다 해내기까지는 도움을 준 많은 이들이 반드시 있다. 그 중에서도 더욱 두드러지는 이들을 들어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그는 잊지 못한다. 한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집에서 저자를 무료로 특별히 지도해주셨다. 저자는 자신이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진학한 것은 선생님의 덕이 정말로 커서,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으며 항상 그분의 당당함과 속 깊은 따듯함을 존경해 왔고 닮고 싶다고 술회한다. 중2 때에 백일장에서 심사를 맡아 저자의 작품에 대해 “중∙고등학교 통틀어서 최재천 학생이 쓴 ⟨낙엽⟩이 가장 탁월하다. 하나의 이미지를 잡아 집요하게 따라간 기법이 좋다.”라는 기막히게 좋은 평을 써 주신 시인의 격려도 평생에 걸쳐 큰 영향을 주었다. 또 고3 초기에 숙제로 한 비누조각을 보고 미술적 재능을 높이 인정해 주고 사랑과 지도와 격려를 쏟아 부어 주셨던 미술선생님도 잊을 수 없다. 대학 시절에 교환교수로 와서 유학의 꿈을 불어넣고 훗날 큰 은혜를 입게 되는 에드먼즈교수를 소개해준 김계중 교수와, 함께 한 일주일로 삶의 목표를 확립해 주고 “내가 일주일 동안 일을 시켜봤는데 배우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뭔가 일 저지를 녀석처럼 보였다.”는 멋진 추천서를 써 주어 유학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에드먼즈 교수, 몇 번이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도록 개인적으로 보살펴준 위버교수, 그분 때문에 글 솜씨가 크게 진보하여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분으로부터도 ‘이 친구는 정확성과 경제성과 우아함을 갖추고 글을 쓴다.’는 최고의 찬사가 포함된 추천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분들로부터 평생을 지속될 큰 도움을 받았다.
Ⅴ.커다란 영향을 준 서적들
1.⟨모닥불과 개미⟩
이것은 솔제니친의 소설책 뒷부분에 실린 수필이었는데 반쪽짜리 짧은 수필이 저자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생물학자가 아닌 솔제니친은 그 상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철학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저자도 개미의 행동을 설명할 길은 없었지만 묘하게 그 작품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고 했다.
2.⟨성장의 한계⟩
저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으로 현재의 방식으로 성장일변도의 경제를 지속하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으로 아주 세부적으로 분석한 증거들이 제시되어 있어 훗날 환경문제와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공부의 출발점역할을 해주어서, 학자로서 기후변화센터, 생태학회, 환경운동연합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이끌어준 책이다.
3.⟨우연과 필연⟩
종로 골목에 있던 외국서적 책방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책으로 손에 잡는 순간부터 놓을 수가 없었던 너무나 매력적이고 기막힌, 생물학자가 쓴 철학책이라 할 서적으로, 생물학이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 저자에게 생물학에 몸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 현재 저자 인생을 출발케 해주고 막연하게나마 미래의 구상을 가능케 해준 책이다.
4.⟨이기적 유전자⟩
유학 시절에 “사회생물학”이라는 수업에서 발견한, 하루아침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엄청난 책으로 이 책을 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되던 것들이 유전자의 관점에서 가지런해지고 명쾌하게 분석되는, 저자의 시대를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갈라준 책이라고 한다. 저자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두 권의 책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책으로 그로인해 갈 길이 정해지고 개인의 삶에도 명확한 기준이 생겼다고 한다.
5.⟨개미제국의 발견⟩
저자가 귀국하여 우리말로 쓴 첫 번째 책으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 저자에게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작가’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주었고 그것을 계기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서평을 쓰기도 해 통섭의 책읽기와 글쓰기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었다,
6.⟨통섭⟩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뜻하는 "컨씰리언스(Consilience)"라는 제목의 책을 번역한 것으로 ‘큰 줄기를 잡다’ 라는 의미로 ⟨통섭⟩의 제목을 달고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학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크고 깊게 통합된 학문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저자는 학문과 사회적인 면에서 큰 사명과 그에 필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저자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살아온 삶 자체가 그가 최종적 목표로 삼고 있는 통섭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자처럼 살고 싶어 부러운 사람이 한없이 많으리라. 주어진 삶에 혼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고 치열하게 연구하고 가르치고 저술하는 삶이 멋있다. 때를 따라 좋은 이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저자의 성품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와 유사한 삶을 살려는 이들만 아니라 모두에게 큰 본이 되는 이 시대의 과학자의 삶을 본 것 같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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