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아브라함

무의식의 영향력(롯의 아내)

변두리1 2014. 7. 30. 21:02

무의식의 영향력(롯의 아내)

 

  내 남편 롯은 소심하며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가정적이다. 남편은 백부(伯父) 아브라함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고 그분을 많이 의지한다. 재산과 하인들이 적지 않으나 대인관계가 익숙하지 못해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다. 전통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손님접대에 많은 힘을 쏟는다. 그러나 소돔 주민들의 생활상에는 대단히 비판적이어서 이대로 간다면 하나님께서 곧 이 땅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거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딸들은 아버지가 현실인식이 없다고 불만이고 남편은 딸들이 너무 세상을 따라가려 한다고 원망을 한다. 남편이 현실적인 면이 어두우니 자연스레 내가 관심이 많고 예민하다.

 

  어제도 저물녘이 되자 남편은 성문주변으로 가서 소돔을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지 살피다가 두 외지인을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가 유목민이니 손님접대가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지나치다. 항상 손님을 데려오는 것은 자기 일이고 그들을 접대하는 것은 내 몫이다. 어제도 그들을 데려와서는 양고기를 준비하라, 무교병을 구워라 하며 난리였다. 외지 출신 손님들에게는 큰 관심을 가지고 극진히 대우하면서 소돔사람들에게 지극히 무관심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것이 이곳 사람들의 오해와 따돌림의 주된 원인으로 이웃들로부터 언젠가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으니 신경 좀 쓰라는 충고를 나는 여러 번 들었다.

  어제 밤에 그토록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마음먹고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소돔 땅의 남자들이 거반 다 몰려와 그들은 의기양양 여유가 있었고 남편은 크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외지인들과 변태적(變態的)인 짓을 하겠으니 외지인들을 내 놓으라고 남편에게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협박하듯 했다. 당황한데다 위기감을 느낀 남편은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내어 줄 테니 손님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말라고 사정했다. 남편의 무모하고 현실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저들의 목적이 우리 가문을 욕보이고 남편의 자존심을 꺾으려는 것이니 물러날리 없었다. 그들 중에도 저질인 자가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폭력으로 남편을 밀치고 손님들에게 접근하려 했다. 그런데 그 손님들이 예사 손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놀라운 솜씨로 위기의 남편을 구하고 저들 모두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버렸다. 저들은 의도했던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남편은 손님들에게 가서 한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 밤에 서둘러 어딘가로 갔다가 두어 시간 후에 가던 모습 그대로 지쳐서 돌아왔다. 나중에 들으니 그 밤에 두 사위들에게 갔다 왔다고 했다. 내가 알았다면 분명히 가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남편은 어렵게 겨우 잠든 우리를 깨워서 서둘러 소돔을 떠나자고 했다. 두 딸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 땅이 곧 멸망할 거란다. 어린아이였으면 흠씬 두들겨 패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했지만 남편이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일단 한숨 자고 난 후에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 때 그 손님들이 우리에게 와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남편이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했다. 충격이었다.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생필품 몇 가지를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그들은 우리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는 것이 지연되고 있다며 우리 손을 잡아끌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우리가 나오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땅에 무서운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 땅을 차지하게 되어 좋아했던 순간들, 재산을 증식하느라 쏟았던 노력들, 그 땅 사람들에게 받았던 따돌림과 무시의 눈초리들, 날마다 보아야 했던 그들의 죄악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성적인 문란함. 이제 현실이 된 이 땅에 대한 심판과 멸망.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맞이할 그들의 비참한 최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도시경계까지 데리고 나온 후에 헤어지며 말했다. “명심하시오, 목숨을 보존하려면 서둘러 도망하시오. 뒤돌아보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도중에 멈추지 말고 산으로 들어가 멸망을 면하시오.” 그들이 우리와 헤어져 떠나고 우리는 휘청휘청 뛰며 걸으며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내 방 장롱 속에 넣어 둔 금붙이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을 처음 보고 갖고자 했던 순간들과 그것들을 얻고 즐거워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계속 뛰면서도 나도 모르게 떠나온 소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 여보.” 내 외침과 함께 온 몸에서 힘들이 빠져나가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땅으로부터 서서히 몸이 굳어오는 느낌이 아스라이 전해져 왔다. 남편과 딸들이 잠시 멈칫 하더니 무엇이 생각 난 듯 멈춰 서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흐려지는 눈앞에 불타는 소돔성이 보였다. 세상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결국 나를 세상에 묶어 놓고 말았다. 평소의 내 무의식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삶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없음을 오고 오는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유적(遺蹟)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