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작별하지 않는다

변두리1 2023. 1. 27. 09:18

작별하지 않는다

 

눈이 줄기차게 내리고 경하는 그 눈 속에 서울에서 제주로 새 한 마리를 살리러 찾아간다. 목공예를 하는 친구 인선이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절단되어 수술을 받고 3분에 한 번씩 찔러 피를 내고 신경이 깨어있도록 유지하느라 부탁한 것이다. 경하는 위경련과 혈압강화를 동반하고 구토를 일으키는 편두통을 않는다. 읍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또 걸어들어 가야 한다.

경하가 잡지사에 근무할 때 만난 동갑내기 프리랜서 사진가가 인선이다. 그녀가 관심을 두는 일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이다. 그녀의 영화는 호평을 받고 경비지원도 있었지만 자신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주변인들의 기대를 저버린 후로 목공예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경하는 봉분과 묘비가 바다로 향해 있고 낮은 곳의 뼈들이 쓸려 가는데 눈송이가 내려앉은 검은 나무사이를 달려가는 꿈을 꾼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꿈을 꾼 후 인선에게 많은 통나무를 심고 그 몸에 먹을 입혀 흰 눈이 덮이게 하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인선은 흔쾌히 찬성을 한다.

서로의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수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포기하자는 경하의 제안을 인선은 거부한다. 벌써 많은 부분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공방에서 확인하니 많은 나무를 확보했는데 사람의 몸보다도 더 컸다. 검게 칠해진 나무를 연상하며 왜 관이 생각나는 것일까? 제주 4·3사건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 친지들과 마지막 이별을 하지 못한 채 70여년의 세월을 보낸 이들의 혼령들을 모시려는 의도로 그 검게 칠한 커다란 나무들이 다가오는 것일까?

경하가 눈 속에 추락을 겪으며 공방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버스를 갈아타기 전 인선과의 통화는 이따 전화하세요, 이따가라는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눈 속으로의 추락과 함께 휴대전화는 사라지고 인선과 연락할 수 있는 경로는 차단되었다. 인선은 죽은 새 아마를 정성스레 묻어준다. 손수건으로 싸고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로 두르고 알루미늄 상자에 넣어 수건으로 다시 감싸서 나무 아래 땅을 파고 평평하게 다듬어 새가 든 상자를 묻고는 흙으로 봉분을 쌓고 눈으로 덮었다. 새가 살아난다 해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나무 아래 묻은 새가 돌아왔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려 삼 주 동안 치료를 해야 한다던 인선도 아무 상처자국이 없는 모습으로 찾아왔다. 죽은 새가 울고, 다급한 목소리로 통화가 끊긴 인선이 나타났다. 인선과 새의 그림자가 불빛에 일렁이고 인선 가문이 지난날 겪은 비통한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인간이기를 거부한 이들이 펼치는 형용하기 끔찍한 일들이 증언형식으로 펼쳐진다. 이성을 잃은 일들이 행해지는 데도 적잖은 기간이 필요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힘든 위안과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긴 세월이 흘러 4·19혁명과 함께 진실이 드러나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듯 했으나 얼마 후 들어선 군사정권으로 다시 30여년의 암흑기를 맞는다.

매장된 곳 위에 다시 묻으므로 앞서 죽은 새의 뼈가 다치지 않았을까 염려하지만 한 번에 살해된 수많은 이들의 뼈는 서로 얽히고설키어 분간이 어렵고 온전한 발굴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촘촘한 관계의 끈과 그리움으로 연결된 이들의 상처는 흐려져 갈 순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곳곳에서 보여주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에게까지 가해졌던 죽임과 잘잘못을 가리지 않은 대량 학살은, 그 진상이 드러나 남아있는 이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짧은 세월 함께 한 새 한 마리도 아쉬움 속에 정성껏 작별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해 무엇 하랴. 살아남은 서러운 이들이 그들을 보내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작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그들이 우리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을 관통해 나타나는 눈과 새와 나무와 그림자, 죽의 이중적 이미지가 다가온다. 물이 순환하고 대기가 돌고 도니 그 어느 날 슬픔 속 비명에 간 이들의 얼굴에 내려앉아 녹지 못한 눈송이가 70여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 눈비 되어 내리지 않으리라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 긴박했던 순간 절망적으로 들이마셨던 공기를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집나가 열흘이 된 딸아이 인선이 공사장에 추락해 병원에 있을 때에, 어머니는 그 딸이 집에 돌아와 밥상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본다. 그에게 죽을 내어주고 딸은 죽을 바라만보고 있었단다. 그렇게 혼과 영으로 통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죽은 존재들이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세상, 인선이 찾아와 못 다한 얘기들을 쏟아놓고 죽은 새들이 날아와 그림자놀이를 하는 일들은 소설 속에서나 벌어져야 한다. 소설 속 화자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별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 제주 4·3사건과 전국적인 보도연맹사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 사건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상하게도 밥을 먹지 않고 죽을 먹고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밥과 물의 중간 형태로 고기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 속 한 증언자는 살만해진 다음부터는 바닷고기를 한 점도 먹지 않았다고 진술하며 그 이유로 죽임당한 이들의 살점을 바닷고기들이 뜯어먹지 않았겠냐고 반문한다.

그래도 인선의 어머니는 강인했다. 딸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족과 친지의 생사를 끝까지 찾아내려 노력을 아끼지 않고 관계된 것들을 모아두었다. 역사는 집념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이 드러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끈질긴 추적에 18년 만에 체포되어 20년 만에 형이 집행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2년이 걸려 진실이 가려졌다. 집념과 용기를 가진 이들이 위선과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밝은 햇살 아래로 가져와 보여준다.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고 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있다. 그 동상과 건물들은 수시로 우리의 시각을 자극해 그들을 생각하게 한다. 민족과 국가의 거짓에 가려진 진실들이 드러나 눈앞에 펼쳐지길 바란다. 나는 오래전에 학창시절을 보내서인지 제주 4·3사건과 보도연맹 사건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는 가리고 덮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 보이는 것이 그런 일을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다.

그 시절 억울한 혼령들과 작별할 수 있도록 억울함을 풀어줄 길을 더 많은 이들이 다각도로 찾아봐야 하겠다. 이제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은 적어도 70이 넘은 노인들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노년이 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와 온 국민이 미루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 한 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 빗속에 그들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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