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머뭇거림
흐르는 날들 속에 또 하순이 되었고 신문구독료를 낼 때다. 수금하는 이가 큰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나는 돈을 건넨다. 오늘은 반드시 얘기를 해야지 각오를 하고 전국지 하나를 그만 보겠다고 한다. 왜 구독을 중단하려는지 궁금한 표정이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도 이런 땐 말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 벌써 두세 번이나 겪는 일이다.
신문을 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는 것 같고 그 면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신문을 그만 보려는 것이라 했다. 신문 면수가 오십 쪽을 넘나들어 대충 보려 해도 적잖은 시간이 들고 관심이 가는 것이 많아 시간관리가 잘 안 된다. 또 하나 짜증나는 것은 삼분의 일 정도는 전면광고라는 게다. 기사나 정보 혹은 어떤 견해를 살피라는 건지 광고를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 말에 그 분은 뜬금없이 정권교체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사설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있다고 한다. 그 분과 나눌 이야기가 아님을 나도 알고 있었다. 말끝에 구독료가 올라 적잖은 부담이 된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앞으로 반년을 무료로 넣어 줄 테니 그냥 보란다.
이십대 이전부터 구독하던 신문이라 깊은 애정을 갖고 있긴 하다. 결국 이번에도 분명하게 자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말았다. 끊으려 했던 전국지에 내 신앙과 궤를 같이하는 전국 일간지, 지역신문 두 개를 더하면 네 개의 신문을 구독하는 셈이다. 아내는 내게 신문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아닌데 줄이라고 한다. 구독료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쉽지 않다. 지역신문은 실제적인 생활정보를 얻는다. 내 사는 곳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고 얼굴이 익은 이들의 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내 일이 말을 많이 안 해도 여러 분야의 최신정보에 지나치게 낙후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판단도 있다.
어떤 정보를 접하는가에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결정된다. 그가 읽고 들은 정보의 총합이 그 사람의 견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목소리가 크거나 분명하지 못하다. 판단이 명쾌하지 않아 스스로 민망할 때도 많다.
정보와 지식을 접하는 수단이 주로 신문과 방송 그리고 서적이다. 현 시점에서 방송의 차별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로서는 방송을 신앙 스포츠 뉴스와 기분풀이로 나누고 싶다. 어떤 분야에 보다 집중하는가가 다르고 특정 종편이 한쪽에 치우칠 뿐 여타 채널은 정치색이 모두 유사해 보인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은 겹치기 중계가 흔하고 다루는 화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게 신문일 터인데 내 사고의 틀과 전혀 다른 것은 오래 견딜 지신이 없다. 익숙한 것을 계속 접하는 것은 같은 부류의 정보와 해석을 누적해 가는 것이어서 내 사고에 어떤 진전과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로운 것들과 부딪쳐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그나마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서적은 더욱 자신이 없다. 신간을 지속적으로 구입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고 적절한 서적 정보를 전달받기도 어렵다. 자주 중고서점에서 조금 낮은 가격으로 책들을 구입하는데 때로는 그 책들마저 제 때에 읽지 못해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책읽기를 통한 지식의 습득이 마음이 가는 분야로 자연스레 치우칠 염려가 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가 독서회 활동이었는데 계속되는 질병의 여파로 그마저 쉽지 않다.
저만치 앞서가는 세월 속에 현실 판단이 어렵고 불만이 늘어 가는 내 자신을 본다. 나라를 오 년 동안 이끌어갈 대통령선거는 코앞에 다가오는데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여야를 대표하는 이들은 흠결이 너무 많고 괜찮아 보이는 이는 지지하는 이가 적다. 길지 않은 경험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결과는 신통치 못하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된 적도 없었던 듯하다. 깔끔하고 확실한 내 판단의 틀을 가질 수는 없을까?
오늘을 사는 내 모습이 얕은 물에서 그 물을 이기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는 어린아이 같다. 하긴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해내지 못하니 무엇을 탓하랴. 신문구독 중단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을 머뭇대는 게 마냥 측은할 뿐이다. 그러니 한 때의 친구들은 현직에서 물러나 제이의 인생을 활력적으로 펼쳐가고 있는데 아직도 내 하는 일에 기본도 익히지 못하고 성과 없는 나날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는 게다.
언제까지 이 땅을 떠돌며 들러붙어 일상을 헝클어뜨릴지 가늠할 수 없는 역병의 공격 속에서 무엇 하나 시원한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한탄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모습에 연민이 인다. 그럴 테지…, 이 땅에 나 같은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 믿고 그 한 가지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며칠 전 수년간 이 땅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에게 중형의 확정선고가 대법원에서 내려졌다. 중심 추를 잡아줄 이들이 아직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내 머뭇대는 성격을 고칠 수는 있는 것인가? 아니, 왜 꼭 그것을 고쳐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불현듯 내 속에서 솟아오른다. 그게 진짜 내 모습 내 정체성은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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