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절실함과 성실함

변두리1 2021. 10. 10. 22:32

절실함과 성실함

 

큰집에 다녀오니 11시 조금 넘었다. 가을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계속하고 오가는 이 없는 명절이 따분해 최근에 찾아낸 가까운 시골길을 한 바퀴 돌아왔다. 심심함이 가시지 않는다. 맞은 편 아파트 벽에 햇살이 비치는 걸 보니 아직 하루해가 기울려면 멀었다. 이런 때, 그래도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게 TV.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채널을 돌려도 눈에 띄는 게 없다. 참 무료한 추석날이다. 웬 노래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채널 셋 중 하나는 노래인 것 같다.

대개는 재방송이다. 틀면 나오는 재방송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는 많이도 보았고, 이제는 그게 그거로 차별성이 없어 시들하다. 드라마는 한 번 얽히면 수십 회를 보아야 할 것 같아 엄두를 못 내고 그때그때 부담 없는 것이 격투기와 야인시대. 그것들이 없으면 그나마 눈길을 끄는 게 세상에 이런 일이. 리모컨을 눌러대다 한 곳에서세상에 이런 일이를 만났다. 언제 것인지 모르지만 제4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일흔일곱의 청년 문정남이라는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12,000 개가 넘는 산과 봉우리를 올랐다는 주인공, 남들보다 몇 년 늦게 고등학교에 다녔다. 직장 생활 중 한없는 성실함이 상사의 눈에 들어 야간대학을 보내주어 화학을 전공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28년을 근무했는데 마지막 두 해 학생생활지도를 하며 숱한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퇴직 후 좋아하던 산을 타며 지내다 직장암이 3기에서 4기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번 수술을 받는다. 항암 치료 중에도 산에 올랐다는 억척스런 사람, 수술은 성공이었으나 그 후로 간암으로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받는다. 수술날짜를 받아놓고도 산을 타다 수술 전 마지막 검사에서 암세포가 사라졌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죽을 곳을 찾는 심정으로 산을 탔다는 산사람이다.

2001년부터 산을 타서 2018년에 17,000 곳의 산과 봉우리에 올랐단다. 얼마나 철저한지 산을 오르기 전에 준비를 하고, 시간과 만난 이와 특징적인 것들을 기록하고 정상에 리본을 매달고 집에 오면 정리해 컴퓨터에 입력한단다. 한 달에 20, 일 년에 240일 이상을 산을 탄다는 그 일흔일곱의 청년은 방송사 PD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체력을 지녔다. 그는 산을 오르는 것은 인생과 같다며 성실한 노력이 불가능을 이루게 한다고 했다.

그 나이에 지도와 핸드폰을 가지고 등산로 아닌 곳을 타고 오르며 정상에 도달해서는 몇 번째 오른 봉우리라는 숫자와 광진구 문정남이 적힌 리본을 매달고는 미련 없이 하산한다. 한 곳 오르기도 벅찰 것을 연이어 몇 봉우리를 오르니 굳은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말릴 생각 말라고 선언했단다. 그만큼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성실히 살았고 죽을병에 걸려 살았으니 무엇을 말릴 수 있을까?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산악회가 만산회인 모양이다. 동호인들이 서로 격려와 경쟁하며 산을 오르기에 더 의욕적으로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제 20,000여 산과 봉우리를 올랐음직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수를 센다고 해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만 원권 지폐도 그 수가 모이면 2억 원이다. 한 달에 20일씩 20년을 그렇게 산을 탔으면 어림잡아 4,800일이다. 꼬박 13년 하고도 한 달 반 이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을 탔다는 것이니 그 한 가지만으로도 존경심이 인다.

그가 산에 쏟아 부은 시간의 절대량에 할 말을 잃는다. 그 앞에서 나는 할 만큼 했는데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그토록 산을 오르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초기에는 절실함이었으리라.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암에 지지 않겠다는 오기와 산에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산으로 불러냈을 게다. 완치판정을 받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체력을 갖춘 후로는 또 무엇이 그로 끊임없이 산에 오르게 했을까? 산이 주는 자유로움과 스스로 세운 목표를 이루며 느끼는 성취감이 아니었을까?

습관이 생겨 익숙해지면 편안하고 그렇지 못함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쯤 되면 주변 사람들도 그를 만나면 건네는 말들이 오늘은 산에 안 갔어?’ 일 테니 지속적 자극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산이 잘 맞았던 게다. 산이 좋고 편하고 오를 만하니 그런 결과를 이루었을 게다.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찾아낸 꼭 맞는 자신의 일, 그것이 건강을 회복하게 하고 친구를 만들어 주고 인정을 받게 했다. 삶의 의미와 만족을 산에서 얻은 게다.

그에게 산이 있었다면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개성에 차이가 있으니 그가 산이라 해서 나도 산일 수는 없다. 내 것이 아니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불편하다. 외적인 것은 알면서 내면의 것은 찾지 못한 것이 아닌지 돌아본다. 긴 세월 지내오며 웬만큼은 안다. 문제는 따로 있는 게다.

열정이 내게 없거나 습관이 되어있지 않아 가속이 붙지 않은 게다. 그분이 쏟아 부은 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은 거다. 성실함이 없이 늘 변명에 가까운 핑계거리만 찾아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던 게다. 내게 절실함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어느 소설가는 밖으로 문을 잠그고 스스로 글 감옥에 갇혔다지 않는가? 입을 열수록 그저 한 없이 커지는 부끄러움만 내 몫으로 남는다. 추석 늦은 오후에 본 재방송 충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는지?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유년의 그 바람  (0) 2021.10.20
다들 어디로 가는가?  (0) 2021.10.20
상처에 대하여  (0) 2021.10.05
귀뚜라미와 가을비  (0) 2021.10.05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0)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