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한 밤의 일탈 -심야 영화

변두리1 2014. 6. 14. 11:23

한 밤의 일탈 -심야 영화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하고 요금이 절반 수준인 조조영화에 맛들인 친구들이 또 영화를 보자고 한다. 무슨 영화를 볼 건지도 모르고 그냥 하자는 대로 따라가 본다. 이번에는 아침 시간대가 서로 맞지 않아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예 하루를 잡아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놀아 보잔다. 그래도 스스로 반듯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무슨 호기가 생긴 것인지 반대가 없다. 여태껏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을 마음 맞는 편한 이들과 한 번 해보자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미뤄둘 수도 없어 점심까지만 함께하고 심야 영화에 합류하기로 했다. 대략 알아본 시간은 밤 열시 쯤 시작하여 두 시간 가량 하리라는 것이었다. 낮에도 생활과 밀접한 익숙한 곳 아니면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것이 내 성격이니 밤에는 더욱 집 외에는 다니지 않는 편이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 전화를 해 본다. 그때까지 찜질방에 다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심야영화는 열한시 사십분에 시작해서 한 시간 사십 분을 한단다. 그 목소리가 신이나 들떠있다. 그냥 헤어져 집으로 가자고, 나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계획했던 대로 끝까지 오늘일정을 진행하잔다. 이 무슨 일들인가. 열시가 넘어서 식당에서 영화관으로 향해 가고 있단다. 나 때문에 심야영화를 보자고 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아내도 상황을 아는지라 잘 갔다 오라고 한다.

  문을 나서니 눈발이 날린다. 늦은 밤에 눈까지 내리니 운전하기 꺼려지고 버스타기 힘든 시간이니 택시를 타야겠다. 평소엔 많아도 타려하면 잘 오지 않아 흩뿌리는 눈을 맞으며 적잖은 거리를 걷고 난후에야 택시를 타고 영화관까지 갈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한 시간 가까이 남아있다. 오십대의 중년 남자 넷이 앉아 주제(主題)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야말로 시간 죽이기. 대화는 중구난방으로 튀어 휴대폰과 가정의 통신비, 자녀들의 취직과 결혼, 늘어나는 수명과 정년, 음악과 여가생활 등 끝이 없다. 어느 새 팩 콜라와 팝콘을 사다 옆에 두고 아무 제한도 격식도 없이 우리의 화제는 온 세상을 누빈다. 꼭 반응을 보여야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푸념일 수도 있고 농담일 수도 있는 가벼운 일상들이 대화 속을 떠다닌다. 시간이 늦으니 사람들 별로 없어 눈치 볼 일 없이 부담 없는 얘기 끝에 툭툭 털고 일어나 상영관으로 가며 물으니 “토르”라는 외화를 본다고 한다.

  ‘피곤한 시간에 왜 말도 제대로 안 들리는 외화를 보나’하는 생각은 나만의 걱정인가 보다. 관객은 몇 되지 않아도 음향은 그대로. 영화가 진행 중인데 내용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은 내용을 파악해 가면서 보는가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빠져든다. 큰 화면에 시원한 액션, 활기찬 음향, 광대한 규모가 여러 볼거리들이다. 배우 구분도 제대로 안되니 답답한 일이긴 해도 내 전공이 아니고 오락거리니 부담스럽지 않다. 초반에는 이렇게 백 분을 어떻게 버티나, 이 늦은 시간에 돈 버리며 왜 이러나 싶더니 걱정 없이 기분전환 겸 눈을 즐겁게 하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도 같다.

  많은 이들이 보고 듣는 영화나 음악은 시대의 흐름과 고민을 제대로 짚어 낸 사회의 공감 언어인데, 남들은 이야기를 꾸미고 흥행작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을 보면서 이해도 못하는 것은 큰 괴리감을 갖게 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일에 너무 소홀했나 보다. 그렇게 친다면 그런 것이 어디 한 둘인가. 정보홍수시대에 정보의 획득과 생산 전파의 역량이 전무한 상태가 아닌가. 이런 일을 만날 때 마다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살아 아니지 아직도 살아갈 날이 무진장인데 지금부터라도 익혀서 시대와 호흡하며 살아야지.’ 매번 다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천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마음이 있으면 기회가 오겠지, 남들 하는 것 왜 나라고 못할까 재능이 없으면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부담을 떨치니 그래도 아쉬움 속에 영화가 끝이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영화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지 차가 다니지 않아 휑한 도로를 친구는 기교를 부리며 운전을 하고 한 친구는 이런 날도 필요한 거라며 거듭 강조를 했다. 밤 시간을 모르던 이들이 한밤의 심야영화까지 기분전환과 삶에 활력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면 생에 처음으로 시도한 것일 수도 있는 긴 일탈을 끝내고 귀환을 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집에 왔지만 조금 마신 콜라 탓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영화관에서 이해 못한 “토르”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토르 후기”를 읽어 본다. 역시 낯선 어휘들. 익숙해지기에는 만만치 않을 듯, 수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요구하는 것 같다. 두 시간 가까이 투자한 영화와 인터넷 검색에서 ‘다크월드, 아스가르드, 토르, 로키, 에테르, 지하 감옥, 컨버젼스, 다크엘프, 환타지“ 같은 조각난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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