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한국의 문기와 신기

변두리1 2021. 3. 31. 20:53

한국의 문기와 신기

 

저자 최준식은 대학에서 사학을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만큼 관련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민족과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우리 민족이 기록에 관한 타고난 유전자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기록이 대단한 결과물로 드러나는 것은 갑자기 솟아오르지 않고 문화가 받쳐 주어야 한다는 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리의 여러 기록물들이 선정되어 있다. 이러한 문기도 대단하지만 문예를 진흥시키는 신기가 또한 우리 민족의 숨길 수 없는 특징이다.

기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록과 출판을 위한 도구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활자고 종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인쇄본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의 기록을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다. 한 왕조의 실록으로 엄청난 조선와조실록과 날씨와 천문까지를 세세히 기록한 일기체 승정원일기도 놀라운 기록이다. 이런 과거를 돌아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문학상 작가를 보유하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문학이 전달되는 언어 문제가 크다고 추측한다. 한국어와 한글이 세계 주류 언어가 아니어서 저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언어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글은 세계인들이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우며 가장 발음에 가깝게 기록할 수 있고 인터넷 기반에 적합한 발명품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우리 민족은 한글로 인해 날개를 단 듯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야말로 창제의 시기가 분명하고 정신과 원리가 확실한 유일무이한 걸작이다. 제대로만 활용하면 세계를 향한 최대의 상품이 될 것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문기에 이어 신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종교적 탁월성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전래된 지 130여년 밖에 되지 않은 기독교가 세계적인 성장과 교세를 자랑할 수 있는 저력의 근원이랄 하겠다. 단군을 한쪽에서 무당이라 할 만큼 무교의 영향력은 강하다. 우리 민족의 핏속을 흐르는 강한 기운 중 하나가 샤머니즘이랄 수 있다. 우리의 독특성은 다양한 종교를 지니고 있지만 그로인해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타당한지는 알 수 없어도 종교들이 호국을 앞세우는 특징도 있다.

한국인의 정서적 특징을 한()이라고도 하는데 그 응어리를 풀기에 용이한 것이 무속일지 모른다. 여성이 중심이 되어서 억눌린 여성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더욱이 친정의 아픔을 달랠 수 있기도 하다. 민족의 특성이 무교적 황홀경에 쉽게 빠지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주와 가무에 능하면서도 그것을 지극히 즐기는데 그 근본이 무속적이라 하겠다.

무속의 과정이라는 것이 손님맞이와 같다. 손님을 청하고 함께 놀고 잘 보내는 것이다. 잘 놀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황홀경으로 들어감이다. 술을 독하고 빠르게 마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는 것이 그 길이며 노래를 한 맺힌 이들처럼 불러대는 연유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길거리 응원이었다. 모두가 신명나게 한판 놀아본 셈이다.

한류의 중심이 노래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노래를 온몸으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니 잘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즐기는 것이 때를 만나니 주변으로 흘러넘친 것이다. 전달매체가 개발되어 어디서나 전 세계를 상대할 수 있으니 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을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흘러간 것이다.

음주와 가무는 노는 것이라 하지만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신명이 나면 못할 것이 없고 신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말릴 수 없는 민족이다. 전에는 일을 잘하는 근면한 이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노는 것이 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와 문화를 맞고 있다. 우리를 위한 판이 깔린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최빈국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세계 10위권 안팎으로 도약한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하는 존재로 달라진 나라, 단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것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본래 문화선진국이던 나라가 잠간 동안 어려움을 겪었을 뿐 우리는 원래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유리한 판이 전개되었다 해도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것들은 어쩌면 우리로 나태해 지는 것을 막는 경고판인지 모른다. 남북이 나뉘어 있는 상태가 그러하고 초강대국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숱한 위기를 통과하며 더 강해진 풍부한 경험들이 있다. 자만할 수는 없어도 환경적 위기에 굴할지는 않을 것이다. 사방으로 갇힌 것 같고 작고 힘을 못 쓸 것 같지만 무아적 황홀경에서 거칠 것 없는 놀라운 힘을 발휘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찬란한 문화의 밑거름으로 삼아 온 것이 우리의 과거다.

자원으로 국력을 상징하는 시대가 가고 있다. 너나없이 정보력이 힘이라고 한다. 하루에 8시간, 일 주일에 40시간의 벽을 거뜬히 넘을 수 있는 신바람과 의기투합이 우리에게 있고 정보의 강자로 갈 수 있는 최강의 도구인 한글이 있다. 앞에 펼쳐진 무대의 주인공이 누구일지는 모르나 우리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충분하다. 세계는 우리의 무대요 앞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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