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을 고쳐야지…
며칠 전에 과태료 납부통지서를 받았다. 시속 50km로 제한된 곳을 67km로 운전했으니 과태료 4만원 부과 대상으로, 기한 내 납부는 20% 할인되고, 이의가 있으면 제기하라는 것이었다. 모충동 충북대 병원 앞이라는 장소가 명기되고 사진이 있으니 내 잘못이 분명하다.
날짜를 따져보니 아내가 치과에 가던 날이다. 예약이 되어 있어 시간을 지키느라 미처 속도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게다. 확연한 사실을 두고 뭐라 말할 순 없지만 기분이 나쁘다. 괜스레 짜증이 솟는다.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억울하게 내보낸다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크게 잘못한 도덕적 문제도 아니고 운전 중 부주의한 결과니 납부하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국가가 내게 그동안 베풀어준 혜택을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을 요청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응해야 할 것을, 내 잘못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 마음 상해하는 내 자신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가는 내게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시켜주었고 또 지금까지도 수차례 교육적 도움을 받고 있다. 젊은 날에는 5년 동안 직장도 제공하고 월급도 주지 않았던가?
그런 국가의 도움을 받고 내가 한 것은 무엇인가. 몇 년의 기간을 제외하면 세금도 내지 않았고, 최근 들어 납부 대상자가 되었어도 급여가 적어 한 푼도 국가에 보태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로부터 근로 장려금도 받고, 비록 모든 사람이 대상이었지만 재난지원금도 수령했다. 이런 일들을 고려하면 국가에 크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아야 마땅하다.
내가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고 내 것을 하나 달라고 하면 노여운 게 솔직한 내 마음인가 보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심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돌아보면 더욱 민망하다. 우리 사회에 즐거운 마음으로 거액을 기부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자원봉사자들도 적지 않음을 안다. 평소의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내 자신이 이기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책임과 의무를 행하는 일에는 예외에 속하려 하고, 도움을 주기보다 받으려 한다. 내 근본적 바탕에 문제가 있지 싶다. 수신(修身)이 되지 않은 게다. 변명이라면 형들과 누이와 나이차가 많은 막내로 자라 많은 일에서 제외되고, 성장해서도 여러 외적인 여건으로 예외를 인정받아 온 것이 습관이 된 게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해야 할 일들을 주도적으로 감당하지 않으니 미안하기도 해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할 때도 많다. 능동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것 중 일부가 원망과 불평이 아닌가 한다. 책임을 맡아 열심히 하는 이들은 맡은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고생을 하고도 미안해한다. 한 발 물러나 있는 이들은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불만을 표출한다.
마치 바둑·장기에 실제 임하는 이들보다 훈수 두는 이들이 수를 더 잘 보고, 나라를 대표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TV로 보는 이들의 질책이 더 따가운 것이나 다름없다. 긴 세월 쌓여온 습관을 고쳐야겠는데 생각과 몸이 다르니 문제다. 일은 하지 않고 훈수만 두려하고 몸보다 입으로 하려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이제는 웬만한 곳에서 젊은 축에 들지 못하니 먼저 나서려하면 소매를 잡는 이들이 있다. 내 마음이 약해 거듭 나서지 못하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고 마는 형국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서양의 ‘윤리적’이란 말이 어원적으로 ‘습관적’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남의 눈에 안 띄는 곳에서부터라도 내 삶의 습관을 하나씩 바꾸어 가고 싶다. 남에게 미루고 핑계대기 보다 잘 못해도 내 할 일을 그때그때 하는 버릇을 들여야지….
스스로 꽤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이번 일을 맞고 보니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괜히 시간만 끌려는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과태료를 납부했다. 시원하고 후련했다.
내 삶에 과속으로 과태료를 내는 일이 생기다니…, 이럴 경우도 생기는구나. 운전하고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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