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삶
내 본업, 근본적인 정체성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다. 그러니 주(週)단위로 요일에 따라 하는 일이 정해지고 만나는 이들과 행동에 제약이 있다. 다행히 큰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어서 어느 만큼의 시간여유가 있다. 지역사회를 향한 사역으로 청소년 학습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어 평일 오후에는 그들을 만난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교회 구성원이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일로 효율성이 크리라 판단했기 때문인데 아내가 교육대학을, 내가 사범대학을 나왔다는 게 주요 이유이기도 했다.
한 해가 못되어 그 사역을 포기하자고 했을 때,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나와 아내가 그 일을 떠맡았다. 이제 20년이 넘었다. 이 사역으로 지역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고 알게 된 주민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교회의 성도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것에 만족한다. 믿음의 환경에서 수년을 매일같이 부대끼며 지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대학시절 내가 출석하던 교회가 예배는 열심인데 교육은 약해서 하나님께 교회교육은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네가 해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것을 부름으로 알고 신학교에 갔는데 그 곳에서 교회교육의 길을 잃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런 사역을 내게 맡기셨음을 깨닫는다.
오전과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 놓는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읽은 것이 기억나지 않아 회상을 위한 최소한을 적어 둔다. 또한 일상에서 감동이 있거나 어떤 깨달음을 느끼면 수필로 편하게 기록해 둔다. 내 본래의 정체성을 좇아 성경을 읽고 생생한 상상의 순간을 글속에 잡아두기도 한다.
이런저런 글들을 대할 때 모르는 어휘를 스마트 폰으로 확인하는데 그들을 표현하는 한자와 영어에 눈이 간다. 그것들을 붙들고 한참씩 상상의 세계를 드나든다. 영어와 한자를 긴 세월 붙들고 있어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그저 내 삶의 여유 공간으로 수시로 드나들며 별세계를 누릴 뿐이다.
목요일 오전에는 수년째 수필교실에 참여하여 강의를 듣고 선배 문우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그분들에게 배울 점이 많기도 하고 창작을 향한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곳에는 열정이 대단한 분들도 있고 습작이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신선함과 배울 것들이 가득하니 즐겁다.
일주일에 하루는 연세 많으신 목사님을 만난다. 오랜 세월 목회를 하고 성경을 읽으셔서 나름의 독특한 세계를 품고 계신다. 때로는 세상을 향한 울분과 개인적 취향이 드러나지만 그만한 스승을 어디서 찾으랴. 반복되는 얘기도 많아 뒷말이 짐작되는 때에는 간단히 내 할 일도 한다. 둘이 일대일로 마주보고 하는 일인데도 서로 이해한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이 시대는 스승은 많고 제자가 드무니 나를 봐 달라는 게다.
한 달에 두 번쯤은 교단을 달리하는 목회자 몇몇이 편하게 만나는 모임도 있다. 벌써 십여 년이 되어 서로가 익숙해 할 말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얼굴 붉히는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 외에도 중간 중간에 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새로울 것 없는 신문을 보는 일도 만만치 않다. 목회자로서 세상에 얼마만큼 녹아들어 살아야 하는 지는 답이 없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로서 세상을 알아야 하니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신문은 일반 전국지와 신앙 일간지 하나씩, 더하여 지역 신문을 구독하고 교단에서 발간하는 주간지가 있다. 서로 특징이 달라 큰 제목만 보다가 눈길을 끄는 기사를 본다. 가능하면 사설을 보려 하지만 내용이 딱딱하고 건조해 건너뛰기가 보통이다.
이렇게 늘어놓으면 무척 바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틈틈이 동네를 산책하고 생각을 비우고 멍한 채로 한참을 보내기도 한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매사에 한두 걸음씩 늦다. 특히 기계류에 적응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다. 이른바 잡기에 관심과 소질이 없어 다른 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 하는 게 전에는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방송대에 적을 둔지가 오래다. 방송대인인 셈이다. 그곳에서 한자공부에 자극을 받아 자격시험을 보았고, 수필을 만나 내 삶의 친구로 사귀었다. 방송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7년 만에 과정을 마쳤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목들이 만만하지 않았고 하는 일이 있으니 시간내기가 어려웠다. 초반에 열기가 약했는데 중반을 넘으니 졸업에 욕심이 생겨 약간 무리를 했다. 오랜 기간 해온 영어였지만 일정 과정을 이수했다는 것에 의미와 보람이 있었다.
내 스스로 평균 이하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어느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마음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내 일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 중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대단한 이들보다 평범한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내 시답잖은 일상의 고백이 몇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들이 모여서 한 평생을 이루고 아쉬움 속에 이 땅을 떠나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의 일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