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수호지를 읽으며

변두리1 2019. 1. 7. 14:30

수호지를 읽으며

 

  술술 잘도 넘어간다. 5세기 전쯤에 완성된 8세기 전의 이야기 수호지다.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벼슬아치들과 간신배들을 혼내주고 충의를 내세워 하늘을 대신해 바른 길을 간단다[替天行道]. 냉정하게 보면 조금은 맹랑한 의적협객 소설류로 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일 만큼 유명하고 인기 있는 책이다. 어찌 보면 폭력성과 선정성이 도를 넘는다.

  이야기 바탕을 흐르는 반복적인 일들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드러나는 의도적인 과장과 허세가 있다. 웬만하면 다 영웅이고 호걸이며 오랫동안 우레 같은 이름을 듣고 뵙기를 사모해오다가 극적으로 만난다. 서로 나누는 예의적인 인사와 상하를 정하는 게 처음 만나면 반드시 거치는 통과의례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이들이야말로 이런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언어자체에 높임말과 낮춤말이 필수적이어서 그러한 관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서로의 대화가 거북살스러워진다. 그러니 관계가 지속되려면 나이나 선후배, 생일이라도 따져 위아래를 가려야 한다. 우리에게도 서로 빤히 알더라도 의례적 과장과 허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서로를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좋지 못한 면은 구태여 들출 필요가 없다. 인정을 받으면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행동에 조심하지 않을까.

  송강 일행이 양산박에 들어 주인이 된 후에 보여주는 틀에 박힌 행동이 있다. 명운을 건 싸움을 하고 사로잡은 적장을 묶어 끌어오면 송강은 허겁지겁 달려가 자기편 장수를 책망하고 적장의 밧줄을 풀어주며 엎드려 절하고 아랫것들의 무례에 대해 용서를 빈다. 극진한 예로 술을 따라 올리며 양산박의 첫째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한다. 싸움터에서 사로잡혀 목이 날아갈 걸 예상하고 수치와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그러한 예우를 받을 때 겪을 심리적 혼란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송강의 겸손과 자신에 대한 평가에 포로인 신분을 잠시 잊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그런 예우를 받은 대부분의 호걸들이 송강편이 되고 양산박에 합류한다. 두령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 마침내 108명에 이른다.

  하지만 매번 그러한 장면을 보아야 하는 두령들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개중에는내가 올 때에도 저 연극을 하더니, 저 양반은 질리지도 않나하고 불평할 이도 있었음직하다. 등장인물 가운데 감정 표현이 가장 솔직한 흑선풍 이규는 몇 번인가 그런 불만을 드러낸다. 다른 중간 두령들도송강이니까 우리가 대장으로 받들지 다른 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하지만 우두머리 송강은 지치지도 않고 그 연기를 되풀이 한다.

  주변에서 볼 때는 연기여도 송강 자신은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벼슬이라 해야 압사밖에 되지 않았고 살인을 저질러 얼굴에 먹자를 뜬 죄수가 되어 귀양을 가고 반역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 직전에 구출을 받는다. 외모도 키 작고 얼굴이 검어 귀한 인물로 대접받지 못한다. 싸움기술도 드러낼만한 것이 없고 전장에서 어려움을 자주 겪는다. 그러한 자신을 생각하면 상대가 위대해 보이고 적장일 경우에는 더 대단해 보였을 게다. 그렇다 해도 자기 정체감과 자신감이 지나치게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 송강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연기라 해도 겸손한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오만은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그런 이들이 없으면 많은 조직은 더 잘 운영되리라.

  양산박 무리들의 대의명분이 충의(忠義). 두령들이 모이는 장소를 충의당(忠義堂)으로 불렀다. 충의가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국가가 또한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그 존재목적이 있다고 할 때 충의의 중심이 백성이며 그들을 이루는 가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강의 무리들은 그들의 일상을 통하여 필요이상의 인명을 살상하고 가정을 파괴한다. ()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죄 없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그 일의 중심에는 거지반 흑선풍 이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수호지의 상징적 중심인물이 흑선풍 이규라고 생각한다. 가장 높은 두령인 송강에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이가 그였고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인물도 이규였다. 해결할 일이 있으면 열에 여덟아홉, 가겠다고 자원하고 그때마다 안 된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데려간다. 청중을 두고 낭독을 한다면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가장 시원하게 해주는 인물이 이규일 게다. 가면을 쓰지 않고 대의명분에 구애받지도 않고 천방지축 날뛰는 그 모습에서 파괴적 본능이 해소되는 후련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규가 등장해야할 만큼 그 시대가 원망과 한이 쌓인 것인지도 모른다.

  동조자들이 늘어나고 두령들이 모여드는 것이 양산박으로서는 역량이 결집되고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인지 몰라도 주변지역과 나라에는 적지 않은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공권력이 연달아 격파되고 심각한 피해를 입을 때 그 상대가 나라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처리해야 할 부담스런 짐이다. 그들은 소설 속에나 존재해야지 실재한다면 상상만으로도 결코 유쾌하지 않다.

  송강을 위시한 108명의 두령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정의 사면(赦免)과 관직(官職)을 받으려고 애를 태운다. 마침내 그 기회가 오고 그들은 제국의 신하요 군사들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뿔뿔이 흩어질 위기를 맞는다. 다행히 진압해야할 요()와 변경의 반란을 꾀하는 무리들이 있어 세력을 유지하고 제국의 군사로 정벌에 나선다. 생사를 건 전투로 많은 공을 세우나 그들의 운명은 너무나 비참하다. 주변이 정리되고 평화의 때가 되자 문신위주의 간신(奸臣)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죽음으로 내몰린다. 차라리 양산박에 머무름만 못하다. 그 시대의 충과 의에 대한 편협한 의식을 보는듯하다

  그래도 한때마나 독버섯 같은 악한 무리들을 박살내는 수호지의 통쾌한 이야기들은 무료한 현대인들에게 활력을 더하고, 부정과 비리의 유혹에 끌려가는 이들에게 경고가 되는 커다란 종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