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고대제국과 전쟁

변두리1 2020. 8. 24. 17:34

고대제국과 전쟁

 

언필칭 통()박사라는 조병호 성경통독원장이 썼다. 빼곡하게 기록된 주()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나를 알게 한다. 저자의 두 권의 책, <성경과 5대제국>, <성경과 고대전쟁>을 읽었다. 성경을 읽을 때, 늘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이 이사야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선지서 부분이었는데 깔끔하게 해결됐다고 할 수는 없어도 조금은 숨이 트이는 느낌이다.

잘 쓴 책들은 거듭 읽으면 좋을 게다. 저자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한번 읽고 밀어 두기엔 미안하다. 여러 번 읽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책이 내게 영향을 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가끔 다시 꺼내 보고픈 책이다. 나는 유달리 지리개념이 흐릿하다. 실생활에서 길눈이 어둡기도 하다. 비슷한 것인지 역사에 대한 이해와 기억이 시원치 않아 늘 아쉬움을 가지고 산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지식이 더욱 필요함을 느낀다.

저자는 이집트를 예비지식으로 해서 앗수르, 바벨론, 페르샤, 그리스, 로마를 고대의 5대제국으로 다룬다. 고대의 역사라는 게, 언제 제국이 생기고 망하는 것으로 분명하지 않을 수 있고, 서로 겹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집단이 세력을 불려 나라가 되고 전쟁을 거치며 나라들을 합병해 제국이 된다. 그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알랙산더 같은 인물은 아버지 필립2세에게 왕위를 물려받고 정복전쟁에 나선 후, 정복 전쟁을 하다가 죽는다. 전쟁과 정복이 그의 삶이고 모든 것이다. 알렉산더로 인해 고통을 당한 이들에 비하면 기쁨을 얻은 이들은 얼마나 되려나? 그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한다.

제국으로 나아가는 길의 대부분은 전쟁이었다. 인간살이에 있어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게 목숨을 건 싸움일 것 같은데 선행하는 모든 활동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듯한 전쟁과 그 승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장수들이 하는 일이 전쟁이라 하지만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성경의 역사도 사람들의 삶이 그 기반이니 세상의 역사와 분리되지 않는다. 전쟁에서 지도자, 특히 장수의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시대에는 무인들이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수에 속하는 약자의 처지로 제국의 통치자가 된 성경의 인물들이 있다. 요셉과 다니엘, 느헤미야와 스룹바벨 같은 이들이다. 그들 속에 하나님께서 귀한 뜻을 두고 일하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만들어 갔던 이들도 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이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제국으로 나아가기를 원치 않으시고 제사장 나라로 향해 가기를 원하신다. 힘을 소유하면 그 힘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그 결과는 자신의 소유를 확장하려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제국이, 나라가 개인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출발부터 잘 못된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무지한 말인가? 그야말로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잊을 때가 너무 많다.

전쟁과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다윗처럼 분명히 고백한 이도 드물다. 그가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설 때, 다윗의 승리를 예감한 이는 다윗밖에 없었다. 사울과 다윗의 형들, 심지어 상대인 골리앗조차도 다윗의 승리를 알 수 없었다. 인간은 과거에 근거해 결과를 예측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좇아 결과를 만들어 내신다. 왕들은 군사력을 근거로 전쟁을 준비하지만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외친다.

인간들이 열심히 전쟁을 치르고 군사적 행동의 총합으로 승패가 나뉘는 것 같으나 길게 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 생각지 않은 태풍으로 배가 뜨지 못하고 폭우가 쏟아져 전쟁이 중지된다. 인간들의 해석과 같지 않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세계사의 전쟁들을 통하여 인간의 잔악함을 본다.

힘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는 나라의 운명이 어린아이들의 전쟁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인류의 집단지성이 겨우 그 정도를 넘지 못함을 본다. 인류가 전쟁을 몰랐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한다. 현대에도 전쟁과 그의 억제라는 명분으로 쏟아 붓는 경제력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그 어떤 경우도 전쟁보다 낫겠다 싶다. 한 개인의 파괴를 넘어 가정과 지역 사회, 국가를 파괴하는 일이 전쟁이다. 전쟁이 추구하는 것은 힘의 논리일 뿐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은 사라지고 인간이 도구로 전락한다.

두 권의 책을 통해 페니키아와 그 도시 두로를 다시 보게 되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세계의 판도가 서서히 달라져 왔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하던 여부스가 다윗에게 함락되어 예루살렘이 되고 콧대 높던 두로도 방파제를 만들며 접근하는 알렉산더군대에 함락 당한다. 강대하던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하늘을 찌를 듯하던 바벨론도 70년을 넘지 못하고 페르샤에게 몰락하고 만다. 누가 앗수르의 십팔만 오천 군사들이 하룻밤 사이에 죽임을 당할 줄 알았으랴. 겸손할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귀히 여길 일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장군들과 다르고 제국의 왕들과도 다르다.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으로 그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 땅에 오신 다윗의 후손, 영원한 왕,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죽이고 제국을 이루시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이 죽으심으로 사랑의 나라, 제사장 나라를 이르셨다. 그 나라가 영원한 나라요, 그 왕 예수님이 왕 중의 왕, 영원한 왕이시다. 그의 장수된 이들이 전쟁하는 모습은 섬기는 것이요, 더 낮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