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요
다시 시작해요
가끔씩 재방송으로 눈에 띄면 보게 되는 TV프로가 있다. ‘비긴어게인’인데 다시 시작하라는 게다. 그동안은 세계를 돌며 길거리공연을 하더니 코로나로 외국에 가지 못하니 국내를 돌며 버스킹을 한다. 나라 안 특색 있는 곳을 정해 방송사가 따라다니며 유명세가 붙은 이들의 공연을 하는 것은 이미 길거리공연이 아니다. 그 특색이 예고되지 않은 즉흥성과 무명을 향한 반응에 있는데 신청해 선정된 이들 앞에서 알려진 이들의 공연이라 좀 그렇다.
코로나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성격이 강한 이번 공연들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전 세계를 휩쓴 질병이 할퀴어댄 상처를 보는 게 너무도 안쓰러워서다. 어디서나 공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 뜻하지 않은 불편함이 언젠가 가시기는 하려나.
공연하는 이들이 이루어내는 내적 역동성을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그들 안에 나이도 있고 경력이 만만치 않은 중량감 있는 구성원이 있지만 그들은 무게를 잡거나 중심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들 중 막내라 할 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어느 공연이었던가, 먼저 현장에 도착한 이들이 분위기를 잡고 나중에 도착하는 나이와 경력이 있는 이들을 당황케 하는 연출을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 내기도 했다.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이 있으면 한곡을 더 하는 이도 처음 합류한 나이 어린 가수다.
젊다기보다 어리다고 해야 할 것 같은 구성원들도 전혀 주눅 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 인정받는 재능이 있고 그것들을 구김살 없이 펼쳐내고 있다. 선배들에게 불손하지 않으면서 친밀감을 드러내고 실력을 보여준다. 연령과 신구를 넘어 그들에게서 하나 된 모습이 보인다. 마치 단란한 가정이 보여줄 수 있는 내적 역동성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문화들은 아직도 경직되어 있다. 주변에서 연일 불거지고 있는 사건⦁사고들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연배가 있는 이들은 전제적 가부장식 문화에 익숙하다. 자신들도 그것을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어 했음에도 그러한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자기의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스스로를 발산하는 젊은이들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럼에도 세대와 함께 문화가 변해 어느덧 우리 사회가 오늘의 위치에 와있다.
오래전 불리던 노래들은 한 편의 시 같았다. 낱말도 음률도 품격이 있고 누가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의 노래는 외국어가 자주 섞이고 무척 솔직하다. 마음이 불편하면 비난과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어떤 것은 너무 빨라서 가사를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예전의 노래가 청각위주였다면 요즘의 노래는 시각중심인 것 같다. 노래 외에도 다른 요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젊은이들은 노래를 통해 자유로움을 드러내고 그들의 열정을 보여준다. 노소의 세대가 보이는 차이는 살아온 문화의 차이다. 군사정권아래서 살아온 이들과 문민정부에서 성장한 이들의 다름일 수도 있고 동양적 가치와 서양이 추구하는 것의 간격일지도 모른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게다. 서로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이다. 동서양의 사고방식에서 오는 숨김과 드러냄의 차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화의 특성이 나선형으로 다시 돌아올 수는 있어도 뒤로 후퇴하는 일은 드물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디디고 선 기반이고 젊은이는 어른들을 이어갈 미래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는 화합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아예 대화와 소통을 단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가정의 모습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한 가정에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가정이 아기 중심으로 재편된다. 아기용품이 늘어나고 그에게 가장 민감하며 대화의 중심을 아기가 차지한다. 청소년이 있다면 부모가 여러 면에서 그보다 능력이 있다 해서 청소년에게 군림하거나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약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아이나 청소년이 가정에서 주눅 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을 모두 당연하게 여긴다. 때로 가족 내에서 감정의 부딪침이나 다툼이 일어도 얼마 가지 않아 평상을 회복한다.
이 가정의 역동성과 문화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한, 약자가 존중받는 기풍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강자와 약자가 분명히 나뉘지 않고 힘없는 이들과 패자가 위축되지 않는 곳이 우리가 사는 나라이길 바라고 싶다.
그들의 노래보다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화합의 역동성이 먼저 내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들처럼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인정하여 과시하지도, 주눅 들지도 않게 표현하는 것이다.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에 깊어지는 것이고, 남과 비교하여 우월하기보다 자신의 독특성을 더해가는 것이다. 독특한 것은 비교할 수 없고 그 자체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로가 우리 사회의 상처를 싸매고 눈물을 씻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위기는 위험하긴 해도 또 다른 기회다. 우리 역사가 보여주듯 우리는 고난을 딛고 기필코 다시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