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를 안다는 것은
엄마, 아빠를 안다는 것은
막내가 돌 하고도 네 달여가 지난 조카를 안고 몇 해 전에 찍은 우리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엄마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무엇을 아는지 정확하게 가리킨다. 내가 다시 아빠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반응이 없다. 그 사진에는 외손녀의 아빠가 없다. 다시 자리를 옮겨 사위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 어디 있느냐 물으니 정확히 가려낸다. 신기하다.
생명을 받고 이 땅에 온지 오백여 일에 사람다운 기능을 갖추어 간다는 게 경이롭다. 다른 이의 말을 이해하고 요구에 합당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청각기능이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걸 해석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음을 뜻한다. 적절한 반응을 보임은 요구사항을 바르게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할까를 내부에서 판단했다는 것이며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데 어떤 장애도 없음을 보인 게다.
서로의 소통에 사용된 언어가 한국어이니 우리말을 듣고 반응할 기본 구조가 갖춰진 한국인이라는 게다.
거의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오백여 일만에 이룬 성과로는 놀라울 뿐이다. 아이들이 다 그런 걸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 모두가 놀랍고 기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온 몸의 모든 기능들이 고장 없이 제대로 작동하고 생체시계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작지 않은 기적이고 생명체의 신비로움이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낯선 이를 보면 운다는 건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세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낯익음과 생소함을 구분하는 건 마음을 놓아도 되는 때와 긴장할 때를 구분한다는 게다. 찾는 대상이 없는 사진에서 아빠를 찾아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추측성의 부정확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의 진전과 선후관계는 모른다. 시험 치는 학생들처럼 모르지만 하나를 골라보자는 기능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일 게다.
이제는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것을 알고 스스로 골라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주기도 한다. 내 것을 구분하고 그것의 일부를 떼어내 자신이 아닌 누구에게 주면 그만큼 자기 것에서 줄어든다는 것을 알까. 아직은 그렇게까지 모를 수 있다. 자신 주변에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아는 듯하다.
아직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한두 단어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귀에 반복해서 들리는 것을 애써 흉내 내고 어른들이 상황에 따라 해석할 뿐이다. 언어 대신 사용하는 것이 표정이며 몸짓이다.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숨김없이 나타낸다. 부모에게 안겨 들어온 후에 찾아가는 순서와 빈도에 따라 자신의 친밀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속해서 두 사람 사이를 오갈뿐 다른 이들에게는 가지 않는다. 벙긋거리며 소리치고 뛰어다니면 몸 상태와 기분이 좋은 것이고 칭얼대고 고개를 내저으며 짜증을 부리면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고 편안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한꺼번에 발음할 수 있는 것들을 한 마디씩 해서 의사를 표현한다. 풀과 나무를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꽃”이라고 한다. 이파리와 줄기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냥 꽃이다. 이모들이 풀, 나무, 이파리를 여러 번 알려주어도 여전이 꽃이다.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은 모두 “짹짹”이다. 단순하게 입력이 되었다가 지능이 발달하고 경험치가 쌓이면서 분화되어 가는가 보다.
홀로 살아가기 위한 성장과 발달이 늦는 게 인간이라지만 아이 내부에서는 수많은 신체와 심리 그리고 지적 기능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성 분화 발전하고 있을 게다. 하루하루가 별다를 바 없이 그날그날인 내 삶에 비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의 연속인가. 한 평생 살아가기에 토대가 되는 기초공사를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게다.
집으로 돌아가는 헤어짐의 순간이 애틋하다. 차에 타기까지는 헤어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밝은 표정으로 차로 가서 안에 태워지는 순간에야 이모들과 헤어진다는 것을 눈치 채는지 고개를 흔들며 격렬한 몸짓과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면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산다는 게 다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보고픈 이들과 잠깐 만나고 오래 헤어져 있는 게다’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고통스런 경험들을 통해 몸으로 습득하게 되리라.
요즘은 아이의 엄마가 직장에 가고 아빠가 육아를 위해 휴직중이다. 엄마와 아빠가 늘 옆에 있어주겠거니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세상이 항상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유치원만 가도 알게 될 게다.
왕자 혹은 공주로, 세상의 중심처럼 대우받을 날도 이제 멀지 않다. 운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너의 일생에 가장 편안하고 순진무구한 때인지 모른다. 그 기간을 성장한 후에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들에게는 땅을 칠 일이지만 너에게는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살고 가끔 가슴에 못을 박는 말들을 할 수 있겠니.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숱한 진전들이 이루어지는 시기요, 외적으로는 네 중심으로 친인척들이 움직여주는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행복한 때를 마음껏 즐기려무나. 지금 받는 사랑과 배려가 평생을 사는 바탕 힘이 된단다.
엄마, 아빠를 바로 구분해내는 건,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편파적으로 너를 응원할 게다. 날마다 달라지는 네게 무한히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