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통섭적 인생의 권유

변두리1 2020. 5. 11. 15:40

통섭적 인생의 권유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글 잘 쓰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썼다. 그는 다윈을 많이 생각하는가 보다. 다윈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그 일에 힘쓰는 인류가 호모 심비우스란다. 물론 동식물을 포함하는 모두다. 그는 인간도 동물적인 관점에서 본다. 그냥 동물답게 살았으면 좋겠단다.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지 모른다. 스스로 착각 속에 똑똑하니,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주절거리는 걸게다. 자신이 살아가는 집과 터전을 부수고 먹을거리들을 망가뜨리며 망할 짓을 골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지구의 막내란다. 어쩌면 우주의 막내인지 모른다. 46억년이라는 지구의 나이, 137억년 정도의 우주의 역사, 그에 비하면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은 20 ~ 25만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퀴벌레나 까치 돼지보다도 훨씬 늦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 인류가 이 땅과 동식물 곧 생태계에 부리는 행패를 생각하면 후레자식도 그런 후레자식이 없다. 마치 나이 지긋한 노인이 태권도 빨간 띠 쯤 되는 체격 좋은 초등학생에게 발차기와 주먹지르기로 얻어맞고 돈까지 빼앗긴 형상이라 할 수 있을 게다.

지구생태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단다. 그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인간임은 물론이다. 교통수단의 발달 때문에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와 온난화가 끼친 영향이 클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도시와 도로의 발달로 동식물의 서식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을 게다. 사람들에 의한 종의 단순화도 심각하다. 다양성이 무너지면 예상치 않은 자연변화에 살아남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인간의 삶의 자리가 위생적이고 깨끗해진다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가. 채소와 과일이 흠 하나 없이 보기 좋은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가. 그런 수확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농약과 살충제가 살포되고 무수한 생명체가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지 생각해볼 여지는 없는가.

생각 있는 착한 소비자들이 기업을 바꿀 수 있고 생산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시장 경제 사회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어떤 상품이 어디에 진열될 것인가가 달라지고 그 판매량에 따라 생산량이 맞추어 질 것이다. 그 길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환경과 생태를 지키는 길이다. 전에는 뒷전으로 밀렸던 환경과 생태가 코 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존재가 되고 타인에게 선택받지 못해 앞서가는 무리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나 뒤에서 따라가며 산다면 이류도 되기 어렵다. 언젠가는 따라갈 존재가 없는 맨 앞에 서는 때가 온다. 뒤에서 따라갈 때는 열심히 그들을 따라 하면 되지만 맨 앞줄에 서면 자신이 방향을 정하고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앞 사람의 등만 보고 달리면 되던 것이 갑자기 앞이 확 트이고 목표물과 초점이 사라져버려 스스로 시선을 정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통섭이고 기획독서다. 통섭형 인재가 아니고는 바른 판단과 방향설정이 어렵다. 살아가는 기술과 문명의 발전이 어느 한 분야만을 알아서는 여러 분야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해야 하고 한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함께 해결해 가는 과정이 융합이요 통섭이다. 문제는 그 바탕에 한 개인도 자신의 전문분야뿐 아니라 주변지식을 상식선까지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어떤 이들과 함께 해서 쌓여가는 문제들을 풀 것인가는 알아야 한다.

삶의 여건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 노령화사회로 가고 있다. 70년을 일해야 하고 평생 대여섯 개의 직업을 갖는 시대로 진입했다. 전공으로 익힌 것은 첫 직장에서 짧은 기간밖에 유효하지 않다. 한 가지가 아닌 몇 가지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관심의 폭을 넓혀야 선택의 여지도 늘어난다. 짧은 거리를 한순간에 뛰는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먼 거리를 오래 뛰는 장거리 선수가 되어야 하고 그런 자질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이과, 문과로 칼같이 나눌 게 아니라 두 분야를 함께 배워야 한다. 자연과학도에게 인문적 지식과 소양이 요구되는 시대에 벌써 우리가 살고 있다.

여성의 시대다. 거의 전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동물계를 보면 암컷들이 선택권을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게다. 역사적으로도 남성이 주도하던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단다. 남성들이 여성의 선택을 받는 시대에는 남성들도 화장을 하고 남성의 여성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힘과 근육의 시대가 가고 감성과 정보의 시대, 함께 살아가야 할 공생의 때에 진입한 것이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 가족적인 삶에서 남성이 제외된, 모두가 불행한 삶에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가 여성 시대일 수 있어서 남성들이 행복해 지는 때가 여성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획독서다. 되는대로 아무 책이나 취미로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반대편의 책들도 읽어야 한다. 그 거센 부딪침에서 창조적인 만남과 시야의 확대를 경험할 수 있다. 시작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도 한두 권의 책을 차분히 읽어내면 그리 못할 일도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폭을 넓혀놓는 것이 미래사회를 위한 투자다. 직업이 달라질 수도 있고 사실은 그런 분야들이 삶에 막대한 영향을 이미 끼치고 있다.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다. 지식도 한 분야만 굳게 설 수는 없다. 이제 호모 심비우스의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