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솔로몬을 왕으로(다윗의 결정에 나단이)

변두리1 2014. 7. 1. 12:28

솔로몬을 왕으로(다윗의 결정에 나단이)

 

  왕자들이 문제다. 아도니야가 점점 압살롬이 하던 행동을 하고 있다. 다윗왕이 왕위도 물려주지 않고 심지어 후계자도 선정을 하지 않는다고 난리들이다. 반면에 왕은 왕위를 물려줄 만한 왕자가 업ㄱ다고 고민을 한다. 최근에도 나에게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만 확실하면 이제는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데 그런 녀석이 없다며 내가 보기에는 누가 신앙이 나은지를 물은 적이 있다. 왕자들의 신앙이 하나같이 기본도 되어 있지 않아서 나도 누가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왕자들의 자질문제고 또 한편으로는 제대로 신앙을 길러주지 못한 왕의 불찰이기도 하다. 왕은 이제 확연히 기력이 약해져 왕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도니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가끔씩 들려오기는 자신이 왕이 되어야만 한다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가 왕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게다가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데리고 다닌다고 하니 언제 왕을 자칭(自稱)할지 모른다. 그는 연차(年次)상 압살롬 다음으로 용모가 빼어나고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책망을 들은 적이 없는 유망한 왕자였다.

 

  그런 왕자 아도나야가 마침내 군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솔로몬을 제외한 모든 왕자들과 왕의 신하 중의 모든 유다 사람을 청하여 에느로겔 근방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스스로 왕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제사장 사독과 나 선지자 나단, 군의 실력자 브나야와 솔로몬은 초청하지 않았다. 그것은 왕이 인정한 것도 아니고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 붓는 것도 아닌 반역일 뿐이었다.

 

  나는 밧세바에게 사태가 긴박함을 알리고 왕에게 들어가 아도니야의 반역과 솔로몬으로의 왕의 계승을 요청하라고 조언하고 중간에 나도 들어가 왕에게 사태의 추이를 설명하고 왕의 결정을 촉구했다. 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선언하고 제사장 사독과 나 곧 선지자 나단 그리고 브나야와 왕의 신하들이 솔로몬을 왕의노새에 태워 기혼에서 기름부어 왕을 삼고 뿔나팔을 불어 솔로몬왕 만세를 외치고 돌아와 왕위에 앉아 왕이 되게 하라고 명했다. 왕의 명령대로 일이 진행되어 모든 백성이 솔로몬왕 만세를 외치고 왕궁으로 돌아와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갈라질 듯하니 아도니야와 그 일행이 의아(疑訝)해 하는 중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들어와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알리니 아도니야와 함께한 손님들이 놀라서 다 일어나 제각기 갈 길로 가고 아도니야는 새로 된 왕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고 왕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것을 맹세해 달라고 요청했다. 솔로몬은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이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고 경고하고 제단에서 끌어내니 그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하고 왕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긴 세월을 끌어온 왕위가 솔로몬에게 넘겨졌다. 다윗은 최후의 순간까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해했으며 대부분의 일들은 요식행위였고 관례적인 것들이었다. 아직도 나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재앙은 끝나지 않아 솔로몬의 즉위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징벌 속에 있는 것처럼 내게는 여겨진다. 솔로몬 자신이 다윗에게 큰 부담이 되었던 사건의 장본인 밧세바의 아들이어서 어느 한순간도 하나님의 경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다윗은 밧세바와 압살롬에게는 평생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대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밧세바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던 솔로몬을 왕으로 삼겠다는 맹세도 정상적인 판단력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윗왕이 왕의 선정(選定)에 가장 마음을 썼던 신앙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왕도 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왕은 결정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왕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왕도 백성도 고난을 겪을 것이다. 이전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을 부으심으로 왕을 선정하는 고민이나 잘못했다는 죄책감은 없었다. 하지만 다윗은 비난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누구도 그를 향해 확정적인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다. 서서히 역사와 함께 그의 공과가 가려질 것이다. 내가 알기는 다윗왕이 후계자의 선정에 더없이 신중했고 왕자 중에 제대로 된 적격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윗왕의 후계자 선정과정과 하나님의 경고로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민감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왕과 백성이 함께 고난을 겪어가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하나씩 몸으로 깨우쳐 가야 한다. 어느 때 보다 선지자의 역할이 크게 요청되는데 그들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신앙의 암흑기가 올지도 모른다. 새 왕이 갓 즉위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예상을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왕과 백성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더없이 복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사건이 될 것이다. 새 왕과 함께 이스라엘에 무한한 복과 영광이 있기를 빈다.